2024. 10. 11 ~ 2024. 10. 12
굿을 할 때 조상신을 달래 드리는 과정 중 하나가 "군웅 풀기"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니, 신어머니께서 나는 신내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애기라서 굿을 배울 때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굿의 종류나 방법, 과정 등을 잘 모른다. 여기서도 군웅 풀기가 뭔지 잘 모르지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군웅 풀기는 조상신을 달래드릴 때 하는 것이다.
- 큰 대야 같은 곳에 밥과 돼지피를 섞는다.(어떤 곳은 내장도 섞는단다.)
- 섞은 밥을 무당이 먹는다.
- 보통 이 과정이 힘들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제자에게 시키는 곳이 많다.
- 어떤 무당은 먹지 않고 입에 넣었다 뱉거나 먹는 시늉만 하기도 한다.
나는 비린 것을 못 먹어 해산물이나 찰순대도 못 먹는다. 그런데 돼지피에 밥을 섞어 먹어야 하다니. 다행인 것은 신어머니는 제자에게 이것을 시키지 않는다고 하셨다. 제자도 때가 되면 하게 될 것이라 하시며 조상신의 심정을 풀어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심정을 느끼며 직접 먹는다고 하셨다.
세상에 맙소사. 나도 언젠가는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지? 먹다가 토하면 어떻게 하지?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다녔다.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시며 신어머니께서 껄껄 웃으셨다. 나중 일이니 벌써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나를 달래주셨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나는 신어머니께 업무에 관해 몇 가지를 배웠다. 명절 때 상차림, 촛불 기도, 무당으로서 마음가짐과 책임감 등...
그동안 나도 닦이면서 마음에 변화가 있었다.
신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 기도할 때의 간절한 마음,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 욕심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
아직까지 갈 길이 멀지만 뒤돌아보면 내 발자국이 이어져 내가 걸어온 길을 비추고 있었다.
나도 열심히 수행해서 신을 망신시키지 않는 제자가 되리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