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

반려견과 양말

by 예일맨

"땅콩아! 내 양말 내놔!"


거실에 있는 옷장 가장 아랫칸, 양말이 들어있는 서랍을 열었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땅콩이가 다가옵니다. 저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재빠르게 제 양말 하나를 물고 도망갑니다. 그러고 나서 거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인 싱크대 아래 발판에 올라가 물고 흔들어댑니다.


아이가 옷을 다 입고 세수, 양치, 로션 세트를 마친 뒤 양말을 손에 듭니다. 양말을 좋아하는 땅콩이는 어김없이 나타나 아이의 양말을 노립니다. 아이 손에 들려 달랑거리는 양말이 두 발에 쏙 들어가기 전에 빼앗아 달아나려고 틈을 보고 있습니다. 땅콩이가 이빨을 보이는 것이 아직은 무서운 아이는 이리저리 까치발을 들고 땅콩이를 피합니다.


방금 전에 양말을 신었던 것 같은데 벌써 벗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분명 모양은 같지만 좀 달라져 있습니다. 빳빳한 감은 온 데 간 데 없고 축 늘어져 있습니다. 온기가 감돕니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스멀스멀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감상할 새가 없습니다. 호시탐탐 노리는 자가 있기에 속도와 위치가 중요합니다. 방심하면 당합니다.


바닥에서 벗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에게 더 유리한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낮은 의자에 발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방에 아예 들어가서 하기엔 또 자존심이 상합니다. 어찌 됐든 거실에서 할 것인데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재빠르게 벗어내고 어딘가에 올려놓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빨래 정리할 때가 또 문제입니다. 양말은 빨랫감 사이사이에 잘 들어가 있습니다. 잘 마른 따뜻한 빨랫감을 가지고 거실로 오다 보면 꼭 한 두 개씩 흘립니다. 그리고 땅콩이는 그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소파 위에 올려놓고 게다 보면 두 발을 들고 양말을 강탈하는 땅콩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양말부터 사수합니다. 소파 구석으로 빨랫감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고 가장 마지막에 신속하게 처리합니다.


양말을 하도 좋아해서 잘 신지 않는 목이 늘어난 양말 몇 개를 땅콩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싱크대 아래 발판으로 가져가서 잘 모아놓고 전시를 합니다. 땅콩이의 이빨에 견디지 못하고 이제는 실밥을 드러낸 작은 수건과 심심할 때 물어뜯는 개껌도 함께 있습니다. 왜 저리 양말을 좋아하는 걸까요?


양말에는 반려견이 좋아하는 냄새가 많이 배어있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신고 돌아다니니,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보호자의 진한 향기가 가득 묻어있을 수밖에 없겠죠. 실제 발바닥은 우리 몸에서 가장 땀이 많이 나는 부위 중 하나이고 냄새 맡는 데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선수들이 그것을 지나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빨래를 해도, 향기로운 섬유유연제를 듬뿍 사용하더라도 양말에 스며든 이 강한 체취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니 반려견의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주 매력적인 물건일 것입니다. 게다가 반려견이 좋아하는 쿰쿰한 냄새... 곧 미생물 번식으로 인한 냄새가 양말에 많이 베어 들어 있으니 그들에게는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리고 양말은 신축성도 있고 반려견이 물어뜯기 아주 좋은 재질로 되어 있습니다. 반려견들은 원체 무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데다가 특히 이갈이를 하는 어린 월령의 강아지는 이가 빠지고 나올 때 가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이빨을 많이 씁니다. 그러니 좋아하는 냄새가 나고 이빨 쓰기 좋은 양말을 애써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일 테지요.


또한, 보호자가 신거나 벗을 때 흔들거리는 양말은 반려견의 놀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발은 반려견의 눈높이에 맞는 아래 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에 반려견이 접근하기에 아주 좋은 데다, (집사들이 깃털 장난감을 가지고 고양이들과 놀아주는 것처럼) 달랑대는 이 작은 물건은 마치 보호자가 반려견에게 '같이 놀자' 신호를 보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껏 지내면서 땅콩이가 사람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빼앗을 듯 달려드는 경우는 단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먹을 것을 손에 들고 있을 때와 다른 하나는 양말을 신고 벗을 때입니다. 먹는 것이야 다른 반려견들도 비슷하게 좋아하겠지만, 땅콩이의 조심성 많은 성격을 고려할 때 땅콩이가 양말을 특별히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땅콩이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땅콩이를 피해 양말을 최대한 빨리 신고 벗는 것에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는 좀 달라져야겠습니다. 같이 놀 친구도 없이 종일 혼자서 심심했을 땅콩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양말 놀이를 몇 분이라도 더 같이 해줘야겠습니다.


나조차도 내 손으로 만지기 싫은, 온종일 흘린 땀에 축축하게 절은 지저분한 내 양말에 입을 댈 정도로… 그저 나를 순수하게 좋아해 주는 땅콩이를 더 많이 아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