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온도

by 예일맨

저는 아이 업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이가 학교 가기 전 7살까지는 참 많이 업어주었습니다. 어깨가 아파와도, 날이 더워서 땀이 삐질삐질 나도, 엉덩이를 받치느라 손목이 꺾여서 저려와도 조금이라도 더 업고 있으려고 했습니다. 아이도 업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응석 부리고 싶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 자기도 걷는 것이 힘드니까 업어준다고 하면 고민할 것도 없이 제 등에 올라탔습니다.


어느덧 아이가 9살이 되었고, 이제 두 달 정도만 지나면 10대 소년이 됩니다. 몸무게도 30kg에 달하니 이제는 업어줄 일이 거의 없습니다. 밤늦게 어딘가에 갔다 올 일이 있으면 아이가 차에서 잠드는데, 자는 아이를 깨우기 미안해 업거나 안아서 집으로 데려갈 때 정도인 것 같습니다. 당연히 아이도 굳이 부모에게 업히려 하지 않습니다.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야생마 같은 남자 아이니 말할 것도 없겠지요...


어제는 저녁을 먹고 잠시 집 앞 공원에 갔습니다. 아이가 교회 달란트 시장에서 산 장난감을 밖에서 한 번 시험해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나갔습니다. 새총처럼 하늘 높이 쏘면 위로 올라갔다가 팔랑팔랑 예쁘게 떨어지는 이름 모를 장난감을 한참 갖고 놀더니 배드민턴 치는 부자 사이를 기웃거립니다. 아랑곳하지 않던 아저씨는 결국 배드민턴 라켓을 아들에게 뺏기고 맙니다.


8시가 다 되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해서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가 하는 시간입니다. 배드민턴 라켓을 다시 돌려드리고 집으로 향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저는 괜스레 아이를 업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새끼발가락이 아프다고 해서 업어준 적은 있지만 그냥 업어주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다행히 아이도 싫어하지 않아 묵직한 아이를 등에 태웠습니다.


해가 빨리도 져서 어두컴컴합니다. 날씨도 서늘한 데다 바닥에는 떨어져 부서진 낙엽이 사방으로 흩어져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떼기가 힘이 듭니다. 집까지 백 미터도 되지 않는데 이젠 버겁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제 등에 업혀 완전히 밀착해 재잘대고 있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옵니다. 괜스레 울적합니다.


집에 들어가니 삐빅 거리는 소리를 이미 듣고 나온 꼬마가 꼬리를 흔들고 현관 앞에 서있습니다. 아이는 들어가자마자 리모컨을 잡지만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를 먼저 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입이 댓 발 나옵니다. 하지만 무서운 엄마를 이길 재간이 없어 방으로 들어갑니다. 거실에는 땅콩이와 저만 남았습니다. 그는 쓸쓸한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제 품으로 다가옵니다.


거실 바닥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습니다. 땅콩이는 다리가 오므려져 생긴 작은 틈에 자기 엉덩이를 비비고 들어옵니다. 그러고는 꽈리를 틀고 자리를 잡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앉으면 일어날 생각을 안 합니다. 사료가 들어있는 서랍을 열거나 땅콩이가 더 좋아하는 아내가 나오지 않으면 아마 제 품을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쌀쌀한 날씨에 밖에 나갔다 와서 그런지 땅콩이에게서 전해오는 온기가 참 따뜻합니다. 38도로 항상 유지되는 살아있는 손난로에 손을 올려놓고 그의 몸을 쓰다듬으니 손이 녹습니다. 땅콩이도 좋은지 몸이 점점 늘어집니다. 땅콩이 눈이 안 보여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잘 움직이지 않고, 몸이 갑자기 한 번씩 들썩거리는 것을 보니 조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나옵니다. 땅콩이가 고개를 벌쩍 듭니다. 소파에 앉은 아내에게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아내는 무릎 위에 땅콩이를 올려놓습니다. 땅콩이는 이내 눈을 감습니다. 아내도 그런 땅콩이를 손으로 쓰다듬어줍니다. '목욕 좀 시켜줘야겠어' 말을 하면서도 계속 안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자는 땅콩이를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땅콩이에게서 저의 모습이 보입니다. 땅콩이가 어떻게든 저나 아내 품에 안기려고 애쓰는 것이 꼭 제가 걸을 수 있는 아이를 굳이 업어주려고 하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땅콩이의 마음이 조금 더 제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는 가족이 모두 밖으로 나가면 온종일 쓸쓸함을 느낄 테지요... 가족들이 아직 자기와 함께 있을 때 어떻게든 더 품에 안겨있고 싶을 테지요...


아이의 몸과 제 등이 만나 느끼는 온도와 땅콩이가 가족 품에 안겨 느끼는 온도는 "같은 온도"일 것입니다. 그 따뜻함이 식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차가움을 느끼지 않도록, 몸이 추움을 느끼지 않도록 더 자주, 더 많이, 더 오래 업어줘야겠습니다. 그리고, 안아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