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합니다. 아직도 밤인가 해서 베란다 쪽 커튼을 열어젖히니 하얗게 밝습니다. 올해 첫눈은 아니지만 많이도 내렸고, 또 여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하루를 여는 외출을 땅콩이와 함께 해야 하는데 그의 반응이 매우 궁금합니다. 처음 보는 물질일 텐데…
민감한 발바닥 패드에 차갑고 보드라운 눈이 닿으면 싫어할 것도 같고, 좋아할 것도 같습니다. 개와 어리 아이는 눈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과연…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은 눈을 비비며 눈색 패딩을 걸쳐 입습니다. 그리고 다이소에서 산 가성비 좋은 두툼한 점퍼를 땅콩이에게 입히고 딸랑딸랑 문을 엽니다.
부지런한 경비아저씨들이 깨끗하게 쓸어놓은 도보 위에 다시 가볍게 눈이 내려앉았습니다. 그 위에 땅콩이를 살포시 내려놓습니다. 역시 동물적 본능이 살아있나 봅니다. 분명히 처음 보고 처음 느껴보는 것일 텐데 탐색하거나 경계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에 첫 발자국을 냅니다. 쫄랑쫄랑 귀여운 엉덩이가 씰룩댑니다. 요즘은 평탄한 길보다도 나무가 심기운 화단(?)에 올라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작게 난 틈새로 가볍게 몸을 통과시켜 들어갑니다. 잠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낮고 안정된 자세를 취합니다. 소복이 쌓인 눈에 동그랗고 노란 구멍이 생깁니다.
맨손으로 눈을 만지면 손이 무척이나 시린데 땅콩이는 맨발로 잘도 다닙니다. 눈 때문에 더 도드라지는 여러 해소의 흔적들을 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오지랖을 부립니다. 아는척하다 보니 어느덧 넓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눈이 있어서 드러나지 않을 것 같지만 누군가 남겨두고 간 검은 덩어리들은 더 잘 눈에 띕니다.
그는 경쾌하게 눈길을 걷다가 어김없이 좌불안석 분주하게 엉덩이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고 이내 자리를 잡고는 힘을 줍니다. 저는 그의 거사에 방해될까 봐 잡고 있는 목줄에 최대한 힘을 빼고 다른 한 손으로는 미리 주머니에 넣어둔 검은 봉투를 힘겹게 벌려 흔적을 없앨 준비를 합니다.
물기를 얼마나 포함하고 있는지에 따라 처리 난이도가 결정되는데 눈 위에 떨어져 있으니 한결 편해집니다. 좀 차갑지만 눈과 함께 그 덩어리들을 싸잡아 통째로 비닐에 몰아넣으니 손 닿을 일이 없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치울 수 있으니 보다 위생적이기도 합니다.
가끔 너무 추울 때는 그 따뜻함이 좋을 때도 있지만 물컹할수록 썩 유쾌한 느낌은 아니라, 눈으로 한 번 더 벽을 치니 심적 거리낌이 덜합니다. 물론 비닐이 더 무거워지고 물이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간다는 단점도 있기는 합니다만 추운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온 저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 같아 고맙기까지 합니다.
날이 추워질수록 땅콩이는 볼 일을 마치면 신속하게 따뜻한 보금자리로 복귀하려 합니다. 산책을 좋아하는 그에게도 춥고 어두운 날 오래 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발과 입에 아직 얼음 알갱이를 묻힌 채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일어나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 보란 듯이 달려들며 외칩니다.
"왈왈!(나 처음으로 눈 보고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