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걸으며 쓰는 글

- 도시산책 1

by 두부세모

2021.10.17 달리고 걸으면서 쓰는 글


바람이 매섭게 차다. 일주일 사이에 반팔에서 긴팔과 가을 외투, 다시 도톰한 겨울 옷으로 바꿔 입었다.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추위와 함께 내 아침 달리기도 시작됐다.

보통 밤 달리기를 때문에 아침 달리기의 풍경은 또 낯설었다. 선명하고 짙었다.

잠깐 툴툴 몸을 풀고, 저녁과 반대 코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한강의 맑고 찬 공기는 러닝메이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달리기는 버려야 할 생각을 지워내고 위로와 희망을 담아 내 어깨를 스스로 톡톡 치는 마음이었다면 아침 달리기는 그냥 활기찼다. 활발하고 생기있는 기분이 오랜만이라 낯설었다.

성산대교 쪽으로 달리다가 오른편 홍제천 쪽으로 빠졌다. 드넓게 푸른 하늘과 짙은 한강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녹빛이 가라앉은 좁고 긴 길이 나왔다. 천을 따라 이어지는 풍경은 달리기를 멈추게 했다. 솔직히, 달린 지 한 달 만이라 숨이 점점 헉헉 차올라서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멈춰서 멍하니 바라본다. 느티나무와 수풀과 억새와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 천 위로 듬성듬성 놓여있는 돌, 또 그 위로 새들이 있다. 사진을 찍고 다시 달리다 걷다 사진을 찍는다. 고가도로 아래로 햇살이 적어 한강변을 뛸 때보다 추웠고 3km만큼 달렸을 때 다시 도심 속으로 올라왔다.


코끝이 시려서 따뜻한 물 한잔과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어졌다. 핸드폰을 켜고 지도에서 내 위치를 확인했다. 음, 여기라면 근처 봐 두기만 했던 카페가 있다. 카페를 향해 다시 뛴다. 걸으면 춥기 때문에… 그리고 빨리 마시고 싶다. 커피.. 홀짝.. 폴짝.. 몸이 다시 가벼워졌다. 목적지인 카페는 동네에서 인기가 제법 많아 두 번이나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 8시이기 때문에 시도해볼 만하다. 작은 블록들을 휙휙 지나 도착했고 내부는 한가했다. 마스크 속에 가려진 함박웃음을 사장님은 못 봤겠지.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인사할 때와 주문할 때 유난히 밝았던 것 같아, 마스크 사이로 삐져 나간 내 작은 기쁨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주문을 하고 앞주머니에 꾸깃하게 넣어온 주간지를 꺼냈다. 여유있게 모닝세트를 먹으며 기사를 보다 나오고 싶었지만 몸을 녹이는 사이 식사는 나왔고, 우아하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손과 입은 허겁지겁 움직였다.

결국 한 장 정도 읽고 나왔지만, 든든한 샌드위치와 커피로 활기 하나가 더 더해졌다. 커피와 밀과 오이가 자란 대지, 또 그것을 키운 농부, 빵을 만든 제빵사, 이 음식을 만들어준 요리사의 기운이 모여 내 몸과 맘의 에너지로 치환됐다 생각하니, 오늘 하루는 잘 보내야 할 것만 같았다.


모두의 마음을 담고, 거리를 거닌다.

혼자 걷지만 함께 걷는 마음. 오늘만은 제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분들의 몫까지 유유히 산책할게요.

도시 속 산책은 한강과 하천 변을 달릴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고요한 도시를 목적없이 걷는다. 거닐다 못생긴 건물을 만날 때, 맛있는 냄새를 맡을 때, 제각각의 동네 사람들을 마주칠 때 조금씩 이 동네에 대한 애정이 쌓인다. 나는 걷고 걸으면서 그 장소가 좋아진다.


그래서 이 동네를 좋아하는 데 조금 오래 걸렸을 뿐이다

이곳으로 코로나와 함께 이사를 와서 한동안 발이 이 땅에 안 붙은 느낌이었다. 집에 대한 애착은 더 커지고 동네에 대한 무관심도 비례해 커졌다. 하지만 그렇게 집에서만 지낼 수도 없었다. 방바닥에 들러붙는 데 익숙해진 몸을 억지로라도 끌고 나와, 복잡하고 불규칙한 세상에 던진다. 다시 조금씩 산책을 하고 식당에 갔다.

지금 살고 있는 망원동은 평지라 산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보다 멀리까지 갔다 오게 된다. 전에 살던 경리단과 가장 큰 다른 점이다. 예로 경리단에서 해방촌을 가려면 언덕을 넘고 육교나 지하보도로 길을 건너고 또 언덕을 가야 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도 심리적 거리가 멀었다. 평지보다 운동에너지를 더 많이 쓰니까 신체적 거리가 멀었다고 해도 되겠다.

현재 내가 생각하는 내 동네라는 범위도 그때보다 훨씬 넓다. 지역상 망원이지만 성산도 서교동 일부도 크게 내 동네라는 느낌이다. 실제로 산책할 때 움직이는 범위가 꽤 넓지만 경리단 산책보다 운동에너지가 적게 든다.


하지만 오늘 산책엔 어쩌다 성미산(성미 언덕이라 불러야 할 것 같지만)을 넘어가게 됐다. 남산 산책하던 느낌도 나서 살짝 들떴다. 사실 나에게 산책의 으뜸은 강변, 천변도 아니고 도시도 아니고 숲입니다… 설레는 마음에 힘찬 걸음을 더해 두 팔을 훠이훠이 저으며 올랐다.

성미산 중간쯤, 벤치에 앉아 지팡이를 옆에 둔 채 무릎을 만지고 계신 할아버지 앞을 지날때서야 씩씩하게 걷던 나는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