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쓰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딴짓을 합니다 -2

by 두부세모

첫 백수(2019년) 일 때 했던 딴짓 중에 정말 즐겁게 했던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매일 놀고 마시다 그렇게만 지낼 수 없어(사실할 수 있다!) 새로운 짓을(이 역시 술기운에) 시도했다.

옆 동네 독립서점에서 진행하는 워크숍 중 <모두의 작사>라는 무려 가사 쓰기 워크숍을 신청한 것이다.

워크숍을 마친 시점엔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시작 하루 전에는 과거의 나를 꾸짖어보기도 했다. 어릴 때 소풍 가기 전 날 밤처럼 기대되면서도 가기 싫은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다.


마음의 걸림돌은 다음과 같았다..

1.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

2. 한 곡의 노래를 완성해 마지막에 직접 부르는 것


하지만, 그 날은 왔고 선생님 1명과 학생 7명, 주 1회씩 5주간 진행된 워크숍도 잘 마무리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결국 그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불렀다는 사실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저 노래를 다른 일곱 명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물론 지웠을 확률이 93%)

그 끔찍한 일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이 써 온 글들은 흥미로웠다. 또 그 글이 가사로 변해가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자연스럽게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가사를 다듬었고. 선생님이 각 가사에 어울리는 반주를 주었고 우리는 모두 노래 하나를 완성했다.

마지막 날 순서대로 녹음을 했고, 이걸 한 앨범에 모아 보내줘서 뿌듯한 마음에 핸드폰에 모두 저장했다. ‘저장’이 ‘애플뮤직 라이브러리에 보관하다’와 동일한 뜻인 줄 깨달았던 순간은 음악을 랜덤으로 들을 때 내 목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였다.

핸드폰을 바꾸기 전까지 가끔, 힘없이 부르는 ‘민우-‘가 흘러나오면 깜짝 놀라 넘겼다. 아주 가끔 그냥 들을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는 … 뜨거워지는 귀때문에 어렵다….

내 노래와 달리,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긴 군더더기 없이 부르는 솔직한 목소리가 꽤 듣기 좋아서 종종 들었다. 이젠 그들의 생김새도 이름도 떠올릴 수 없지만 이렇게 각자의 노래로 남아있다.


워크숍 커리큘럼을 따라 매주 수업을 들은 후 쓴 글을 아래에 적었다.

(가사가 왜 이 분위기가 됐는지 변명을 썼다 지웠다..)


<1주 차. 간단한 소개, 가사의 본질과 개념, 주제와 소재, 화자와 시점 그리고 청자에 대해>

초등학교 2학년, 좋아하던 남자애가 전학을 갔다.

학교가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들 중 가장 먼 길을 골라 타박타박, 고개를 떨구어 바닥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바라봤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 대신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노래가 입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는 길. 쓸쓸한 마음에 세상에 없던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흥얼흥얼~. 너도 내가 좋다면서~ (이것이 이별의 노래인가요..)

한 삼일 정도 같은 길을 걸어 집에 가는 길 조금씩 다른 노래를 불렀다. 어제 부른 노래는 어제까지, 오늘은 또 오늘의 노래를 불렀다. 후후후~

이십년도 지난 지금, 사실 그 아이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민우였었던가. 민호였던가. 사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얗던 얼굴, 흐릿한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다. 내 멋대로 눈이 초롱초롱했다고 기억하고 싶지만.

그래도 기억하는 것은 어릴 적 소중한 친구와 헤어지는 그 아쉬움. 이렇게 그 때를 회상해보면 그때 느꼈었던- 바늘이 왼쪽 가슴과 옆구리 사이를 콕콕 찌르는 - 그 느낌을 느낀다.

그리고 또 기억하는 것은 그 길을 걷는 마지막 날, 맑은 하늘 쑥을 으깬 듯 짙은 풀냄새에 취해 노래를 멈추고, 가던 길도 멈추고 풀냄새 나던 곳에 앉았더니 귀여운 달팽이가 있었고, 달팽이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마음이 흘러갔다.


지금은 바늘 콕콕엔 따끔하기보다는 간지러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세상에 있는 노래조차도 부르지 않지만.


<2주 차. 각자의 글, 음악의 기승전결과 가사의 기승전결>

민우였을까. 민호였을까.

아홉살 인생. 좋아하던 남자애가 전학을 갔어.

그 아이가 전학가던 날

집에 돌아가는 길들 중 가장 먼 길을 골라 돌아가,

타박타박. 눈물은 흘리지 않았어. 눈물 대신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왔어.

빙빙빙.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노래를 만들어 불러.

너도 내가 좋다면서.

쓸쓸한 마음을 모아 세상에 없던 노래를 만들어 불러.

이것이 이별의 노래인가요.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내 멋대로 떠올려봐.

하얀 얼굴, 초롱했던 눈망울.

그 애는 기억할까?


그 애는 서걱서걱 소리가 나.


다음날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장 먼 길을 골라 돌아가.

쓸쓸한 마음을 모아 세상에 없던 노래를 만들어 불러.

어제 노래는 기억나지 않아.

어제부른 노래는 어제까지.

오늘은 또 오늘의 노래를.


이 노래는 짙은 풀냄새가 나.


좋아하던 네 마음에 닿아볼까?

노래를 불러.

풀냄새 나던 곳 축축한 달팽이

달팽이가 남긴 길따라

그렇게 마음이 흘러가.


이제는 못생겨진 내 마음

덤덤해진 내 마음

세상에 있는 노래 조차 부를 수 없어.


풀냄새에 네 생각을 해.

너가 전학가던날 쓸쓸한 마음에

세상에 없던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내 생각을 해.


내 마음에 서걱서걱 소리가 나.


<3주 차, 간결함과 여백>

A

민우였을까. 민호였을까.

아홉살 인생. 좋아하던

남자애가 전학을 갔어.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B

빙빙빙. 가장 먼 길골라

타박타박. 눈물 대신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왔어.


C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노래를 불러.후~후~후

이제는 기억 나지 않아.

내 멋대로 떠올려봐.

그 애는 서걱서걱 소리가 나아.


B

빙빙빙. 가장 먼 길골라

타박타박. 눈물 대신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왔어


C’

쓸쓸한 마음 모아 세상에 없던

노래를 불러.후~후~후

어제 노랜 기억 나지 않아.

오늘은 또 오늘의 노래를

이 노랜 짙은 풀냄새가 나아.


D

좋아하던 네 마음에 닿아볼까?

풀냄새 나던 곳 축축한 달팽이

남긴 길따라 마음이 흘러가.


이제는 못생겨진 내 마음

세상에 있는 노래조차 부를 수 없어.


풀냄새에 네 생각을 해.

너가 전학다던날 쓸쓸한 마음에

세상에 없던 노래를 불렀던 내 생각을 해.

내 마음에 서걱서걱 소리가 나.



<4주 차 발음과 압운, 제목 정하기, 반주 전달>

A

민우였을까. 민호였을까.

아홉살 인생. 좋아하던

남자애가 전학을 갔어.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B

빙빙빙. 가장 먼 길골라

타박타박. 눈물 대신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왔어.


C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노래를 불러.후~후~후

이제는 기억나지 않아

그 애는 서걱서걱 소리가나.


B

빙빙빙. 가장 먼 길골라

타박타박. 눈물 대신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왔어


C’

쓸쓸한 마음 모아 세상에 없던

노래를 불러.후~후~후

어제는 기억나지 않아.

오늘은 살랑살랑 풀냄새가 나아.


D

좋아하던 네 마음에 닿아볼까?

축축한 달팽이 남긴 길따라

내 마음이 흘러가네.


세상에 있는 노래조차 부를 수 없어.

못생겨진 내 맘. 풀냄새따라

네 생각이 흘러가네



좋아하던 네가 가던날 노랠 불렀던

내 생각을 해. 내 마음에

서걱서걱 소리가 나.

내 마음에 서걱서걱 소리가 나.


<5주 차. 글에서 소리로. 가사 점검 후 녹음!>

그렇게 저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완성됐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달리고 걸으며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