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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ul 23. 2024

천국과 지옥


  오래전에 읽었던 짧은 글 한 토막이 생각난다. 

어떤 남자가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섰다. 염라대왕은 명을 다하지 못했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돌아가기 전에 천국과 지옥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염라대왕은 쉽게 허락하고 지옥부터 구경을 하라고 보냈다. 

  

  지옥에서는 식사때 둥그런 밥상을 펼쳐놓고 몇 사람이 앉아 밥을 먹게 했다. 밥상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했고 보기만 해도 침이 흘렀다. 지옥에 간 남자는 여기가 지옥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며 이런 지옥이라면 얼마든지 오겠다고 생각했다. 밥상 앞에서 식사해도 좋다는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피골이 상접하고 두 눈은 퀭하니 말할 수 없이 허기져 보였다. 그런 모습이 의아해했지만 그 남자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사때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곳에서 주는 젓가락 끄트머리를 쥐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젓가락은 사람이 양팔을 벌려 놓은 길이였다. 식사를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기다란 젓가락으로 자기 입에 맛있는 음식을 집어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기다란 젓가락은 옆 사람, 앞사람 할 것 없이 부딪치며 찔러대고 어쩌다 집어 든 음식은 다른 사람이 낚아채다가 떨어져 서로 먹지 못하게 되어 싸우면서 주먹질이 오가며고 서로 피투성이가 되었다. 밥상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먹음직스럽던 음식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지고 아무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식사시간이 끝난 지옥의 사람들은 여전히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할퀴어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끔찍했던 시간을 보낸 남자는 다시 천국으로 향했다. 천국에서도 똑같이 둥그런 밥상에 산해진미를 차려 놓았는데 지옥과 같은 규정으로 기다란 젓가락을 들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런데 천국의 사람들은 살이 토실토실 오르고 화기애애했다. 지옥을 맛본 남자는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식사를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가 울렸으나 서두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에서는 긴 젓가락을 이용해 서로 상대편의 입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서로 부딪치며 싸우는 일도 없이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냈다.



  우리 가게 현관 유리문을 통해 조성해 놓은 마을 공터가 보인다. 나무 몇 그루를 심어 놓았는데, 가끔 풀이 우거질 때면 마을 어르신들이 제초 작업 외에  더 이상의 관리를 하지 않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들 왕래가 없는 편도 아닌 곳인데 방치된 것 같은 분위기는 자꾸 신경을 쓰이게 했다. 어쩌다 작업 차 나온 리 사무소 사무장에게 내가 조금 관리해도 좋다는 허락을 구한 뒤, 내년에 봄이 되면 화사한 꽃을 보리라 생각하고 철쭉꽃 묘목을 자비를 들여 사다가 군데군데 심어놓았다. 안쪽에는 수국을 심었다. 겨울바람은 온 동네를 삭막하게 하고 늦은 봄이 돼도 쌀쌀한 바람이 부는 이곳에 꽃이라도 피어있으면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동네를 더욱 정스럽게 보일 것이다.  작년 가을에는 몇 년 동안 방치되어 길바닥으로 흘러내리면서 지저분하게 보였던 다육이를 딸과 함게 제거 작업을 했다.  가려졌던 예쁜 돌담의 모습이 그제야 드러나 깨끗하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올해 장마가 길고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동산에는 풀이 어린애 키만큼 자라 무성했다. 내가 심은 철쭉꽃은 어느 게 풀인지 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을 길 조성할 때 어른들이 모르고 베어버리면 큰일이겠다 싶은 마음에 낫을 갈아 풀을 베어내고 너무 많이 자라서 흉해 보이는 소철은 묵은 이파리를 베어주었다. 낫을 들고 휘두르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일이 많아 온몸이 모기에 뜯기고 삭신이 아파서 저녁에는 뻗어버렸다. 

  다음 날 가게로 나온 딸이 "소철이 이발했네."라고 하면서 새로 돋아 나온 연한 초록빛의 이파리가 깔끔하고 이쁘다고 한다. 그래도 딸이 알아보는 걸 보면 지나기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도 예쁘고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을 줄 수 있게 되며, 더욱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내가 행 행복한 마음일 것이다. 암암리에 소유된 내 정원, 내년 봄에 찾아내기 위해 보물을 숨겨놓고 여기저기 점찍어 놓은 곳이 설렘과 함께 기대된다. 


마음으로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선물인 나의 정원을 잘 가꾸어서 아름답게 만들어 놓고 바라보는 내 눈을 즐겁게 하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들 수 있다면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천국을 만들기 위한 수고. 땀과 모기에 뜯기는 값진 수고를 기꺼운 마음으로 즐거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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