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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ul 16. 2024

찾아온 외사촌

  

  오늘 우리 가게로 외사촌 내외가 찾아왔다. 친정어머니 장례식 때 찾아준 사촌이 고맙고 반갑기는 한데 워낙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딱히 할 말이 없어  우리 가게 명함을 주며 길 안내를 해주었다.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정말 찾아온 것이다.

  사촌은 나이로 따지면 한 살 아래여서 내가 누나임을 은근히 내세웠다. 그보다는 어쩌다 외가에 갔을 때 우리가 사는 다른 환경의 모습을 보게 되어 주눅 든 마음에 더욱 뻣뻣하게 대했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 고등학교에 전학 온 사촌은 공부도 잘해서 공부라면 고개를 들지 못했던 나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아마도 그런저런 이유로 더욱 뻣뻣하게 굴었을지 모른다.

  그 옛날에 외삼촌이 포항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할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돌아와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어 살게 되었다. 새집은 예쁘게 지어졌고 주변의 무성한 나무들과 함께 어울려 멋스러웠다. 외삼촌은 부드럽고 자상했으며 항상 웃는 얼굴을 보였다. 어느 새해 명절에 외가에 온 식구가 인사를 갔는데 다른 애들에게 세뱃돈을 주다가 내 차례가 되자 준비해 둔 돈이 바닥이 난 모양이었다.  곧 주마고 했던 세뱃돈은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

  외숙모는 여장부 같은 모습으로 목소리가 컸으며 동네에서 맞설사람은 없었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되는 일이 있었는데, 연말이라 산적한 감귤과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육지로 가던 배인 남영호가 침몰되어 바다에 휩쓸려 갔던 일이 있었다. 당시에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탑승자 명단을 울면서 듣고 있었던 모습이 기억된다. 같은 반 친구 엄마도 그때 돌아가셨는데 살아남은 사람이 몇 안 되는 축에 외숙모가 있었다. 아마도 장수하시게 될 거라고들 입을 모았다.

  외가에는 큰오빠가 있고 둘째 오빠가 있는데 남자들은 다들 정스럽고 웃는 모습의 얼굴을 지녔다. 오빠가 없던 내게 '오빠'라고 불릴 수 있던 유일한 친척이었지만 어려서는 부르기 힘들어했다. 보기보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아는 사람이 멀리서 오는 것이 보이면 옆길로 피해 다녔을 정도였다. 

  여하튼 외삼촌 가족들이 외가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유년 시절을 보냈던 놀이터가 사라졌다. 할머니가 지내던 오래된 초가집의 냄새도 없어졌고 할머니와 같이 앉아 불을 지피다가 아궁이에서 꺼내 먹었던 군고구마의 냄새도 없어졌다. 밥 먹고 나서 그릇들을 씻어 넣었던 오래된 할머니의 그릇장도 없어졌고 부엌 뒷문을 열고 나가 비비대며 놀았던 커다란 동백나무들도 없어졌다. 이렇게 없어질 줄 알았으면 할머니가 쓰시던 그릇장 하나 정도는 챙겨두는 건데 아쉬운 마음이 있기도 했다. 

  어릴 때 살짝 불편했던 사촌이 우리 집에 방문해 주니 놀랍기도 했고 예전 같지 않게 나도 넉살이 생겨 자연스럽게 맞이하며 반가움을 표현할 수가 있었다. 사촌은 깨끗하게 조성된 우리 집 주변을 둘러보고 식당에 들어와 앉았다. 가까이서 본 사촌은 머리가 하얘진 모습으로 비껴가지 못한 세월의 흔적을 멋스럽게 보여주었다. 근사하게 변해간다는 칭찬에 주고받는 말들이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식당 안에 올케와 함께 따뜻한 분위기가 흘렀다. 마주 보는 서로의 얼굴에 지나간 시간들이 만만찮았음을 가슴으로 짠하게 와닿았다.

  사촌은 나이가 드니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다는 말을 했다. 사촌이나 나나 육지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다 고향이라고 돌아왔지만 주변의 사람 관계가 원만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짐작된다. 나 역시도 그랬지만 가까이서 잘 지내고 싶었던 형제나 오랜 친구들이 오히려 녹록지 않을 수 있음을 와서야 알게 됐다. 살아온 날들이 서로에게 알 수 없는 깊은 골이 되었기에 생각하면 벗들과 형제들에게도 골이 메워질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사촌 내외는 테이블에 앉아 인사를 하는 우리 애들을 바라보며 좋은 미소를 보냈다.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주문했고 잘 비벼진 들기름 비빔면과 만두를 맛있게 먹었다. 사촌은 애들과 같이 일하고 있는 우리가 부러운지 자식은 가까이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애들이 멀리 있어서 잘 볼 수가 없다고 살짝 씁쓸해했다. 자식은 때가 되면 독립하는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우리 애들이 소리 없이 주방으로 사라졌다. 

  먼 길을 찾아와서 그간의 시간 공백을 짧은 몇 마디로 채워질 수는 없겠지만 고맙게도 사촌은 나와는 다르게 정스럽고 살가운 느낌의 표정으로 몇 마디 날리고 돌아갔다. 

  손님들이 돌아간 테이블을 정리하며 순간적으로 이제 내가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에 낯가리고 어색해했던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나누며 그간의 안부를 묻기도 하게 된 것이다. 자라는 동안 부끄럽고 민망했던 일이 한두 번이었겠는가 마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프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애쓰지 않아도 돌처럼 단단하게 되어 기억 속에 사라져 갈 수 있으며 더러는 남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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