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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Aug 20. 2024

문신


나는 아직 눈썹에 문신을 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혹은 외출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은 연필로 양쪽 눈썹을 그리는 일이다. 그런데 신경 써서 그린다고 하지만 항상 똑같이 그리기는 쉽지 않다. 주변에서는 문신하라고 성화다. 그래도 꿋꿋하게 연필로 그리는 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혹여 그려진 눈썹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변심해서 지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깨끗하게 지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들 모임이 있어 여남은 명이 대게가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몰려갔다. 우리도 큰맘 먹고 게를 좀 먹어보자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마들은 자기 얘기하느라 상대방이 듣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아 보였다. 인원수를 생각해서 한쪽 편에 모여 앉은 엄마들은  브레이크가 없이 떠들었다. 잠시 후에 대게를 먹기 좋게 손질해서 커다란 접시에 담아왔다. 엄마들은 잘 먹었다. 부드러운 게살이 입으로 들어갈 때는 애들 자랑 남편 자랑할 시간이 아깝다. 공금으로 먹을 때는 더욱 많이 먹는다. 본인이 계산할 것처럼 후하게 주문하고 선심 쓰듯 한다. 배불러 죽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엄마들은 "배불러 죽겠다"라고 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식당 밖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여 있는데 다시 듣거나 말거나 대화가 시작되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 서너 명이 식당 입구에 모여있었다.  아마 이들도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민소매를 입고 양쪽 팔에 갖가지 문신이 검정 시스루를 입은 것처럼 색칠이 되어있었다. 뒤를 보면서 발을 옮기던 일행 중 한 명이 동료 엄마와 어깨를 부딪쳤다. 남자는 "눈은 어디다 두고 다녀?"라고 하며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했다. 용인지 이무기인지 문신이 주는 위압감으로 동료 엄마와 일행은 숨도 쉬지 못했다. 남자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 문이 닫히는 걸 본 어느 엄마가 그제야 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문신 있는데." 모두들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동료 엄마는 자기의 눈썹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댁에 갔더니 시어머님이 문신을 하셨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셨다. 이미 그려진 눈썹은 내가 마음에 들거나 안 들거나 상관없었으나 가족들의 관심을 받게 된 어머니는 한껏 들떠있는 모습이다. 나도 덩달아 훨씬 좋아 보인다고 거들었다. 진심은 아니었다. 이미 그려진 그림을 지울 수도 없거니와 어머니가 저토록 해맑게 웃으면서 좋아하시니 깽판 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곧 아흔을 바라볼 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팔십이 지난 친정어머니도 눈썹 문신을 하셨다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팔십구십이 돼서도 눈썹 문신이 그토록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참고 사셨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지금 보다 더 젊으셨을 때는 낮은 거울을 바닥에 놓고 눈썹을 그려 넣으면서 한숨을 쉬던 모습이 생각난다.

  " 어이구. 눈꼬리도 쳐지고." 친정어머니가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눈꼬리가 왜 쳐지는지 알지 못했지만 시장에 가거나 특별한 외출을 할 때는 화장을 하고 눈썹을  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썹 문신을 한 친정어머니께도 잘 그려졌다고 할 수밖에. 그렇게 하고 싶으셨으면 좀 더 일찍 하셨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얼굴에 주름이 더 깊이 팬 까닭에 눈썹 라인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그려 넣은 것을.


  요양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주로 누워계신 노인들을 접하게 된다. 고령이다 보니 신체의 많은 부분이 노화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움직임은 주변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고 날마다 조금씩 사그라지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럼에도 선명하게 눈에 띄는 건 눈썹 라인이다. 신체의 모든 기관이 흐려져가는데 문신으로 그려진 눈썹은 더욱 선명하다. 그래도 젊으셨을 때는 멋을 부렸던 분들이 눈썹 문신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거울을 보면 눈꼬리가 쳐지고 생얼을 들고 밖으로 나가기에는 눈썹이 절반도 안 되는 나이가 되었다. 눈꼬리를 올리기 위해 양쪽 눈 끝부분을 조금 과장해서 칠하기도 한다. 눈꼬리가 쳐지는 이유를, 눈썹 라인을 신경 써서 그려야 하는 이유를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팔십이 넘어서야 문신을 했던 어머니를 대놓고 타박할 수는 없고 마음으로만 한심스럽게 여겼었다. 어머니가 누워계시기 시작하면서 거동을 못 하게 되자 눈썹 라인을 손가락 끝으로 따라 그리며 진심으로 말했다.

  "눈썹 선이 예쁘게 잘 그려졌어."

  백 살을 넘긴 시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시고 친청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왜 이제서야 팔 구십이 돼도 눈썹에 문신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가슴 아리게 다가올까. 한살이라도 젊다는 도도함으로 노인의 주름을 우습게 여겼던 내가 부끄럽다.

  거울을 볼 때마다 앞으로 이마주름, 눈가의 굵은 주름, 팔자주름, 목주름 등으로 한숨을 쉬기도 하겠지.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도 있다. 거울이 뽀얗게 먼지가 낀 것처럼 눈 또한 흐릿하여 시야가 선명하지 못한 덕분에 더러더러 잔주름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울은 공평한가 보다. 기울어진 한쪽을 채워주시니 말이다. 

  그때는 몰랐던 일을 주름이 더욱 깊어지고 새로이 생겨날 때마다 알게 될 새로운 일에 오히려 기대를 가져봄은 어떠한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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