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어휘를 읽고
감정 어휘. 유선경. 앤의 서재. 2022.
유선경
세상과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에? 왜?"라고 묻고 그 근원과 영향에 대해 독자적으로 사유하고 음미하고 추론하기를 즐기며 책 읽기와 글쓰기, 음악 감상을 숨결로 삼고 있다.
『감정 어휘』는 세상과 사람에게 일어나는 거의 모든 현상에 '감정'이 결정적이며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해 세밀한 '어휘'로 표현할 때 마음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집필이 시작되었다. 나아가 스스로의 영혼을 후련하게 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비로소 행복이라는 태도를 지니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30여 년간 매일 음악, 문화, 시사 등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썼고 2014년부터 단행본울 집필, 출간하고 있다. 최근작으로 『어른의 어휘력』, 『나를 위한 신화력』이 있고 『감정 어휘』가 아홉 번째 책이다.
작가의 말 - 내 감정에 알맞은 어휘를 붙여주는 일
감정에는 선도 악도 없다. 옳고 그름 역시 없으며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마음의 고통은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생생하게 느끼는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고 부정하는 대서 생겨난다. 인간의 감정은 복잡해서 같은 일을 겪는다고 모든 이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일에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기도 한다.
나는 '행복'을 감정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다고 여기는 편인데 감정 어휘를 알맞게 표현하는 방식이 행복이라는 태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1장. 내가 갈 길을 알려주는 실마리, 감정
p24
한때는 그도 우듬지에 있었다. 보드라운 초록 잎사귀로 무성했고 햇살과 빗방울에 뒤덮여 반짝였다. 에너지로 바꾸어 고스란히 줄기에, 뿌리에 내주었다. 그 덕에 나무는 성큼성큼 성장했다. 줄기가 높이 자랄수록 그는 제자리를 지키는데도 자꾸만 아래로 놓였고 어느새인가 우듬지를 올려다보는 처지가 되었다. 새로운 우듬지에 난 이파리 사이로 햇살은 조각나 흩어져 부스러기처럼 떨어질 뿐이었고 나날이 빼빼 말랐다. 잎사귀들이 모두 떠났고 삭정이가 되더니 강풍 불어 후드득 꺾였다. 딱딱하게 굳은 심장처럼 밑동만 남아 고스란히 나무에 박혔다. 아무도 그가 죽은 줄 몰랐다.
2장. 온도로 신호를 보내는 감정
p50
미시감이란 기시감의 반대 현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갑자기 생소하게 느끼는 체험이다.
p51
지금도 이따금 미시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때는 원인을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자신을 속이며 "괜찮아, 다들 이러고 살아." 하면서 버티다가 어느 순간 내가 지금 여기에, 이 사람들 앞에 눈도 귀도 없는 사물처럼 그저 있는 느낌, 순식간에 모든 것이 낯설어 손에 쥐고 있는 펜조차 '이게 지금 왜 내 손에 있냐?' 출처가 불분명하고 나의 출처 또한 그러하다. 어디를 가도 바로 지금 여기에 나는 없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나 자신과 멀어지고 있을 때 찾아오는 신호이다. 내가 없는 여기에서 떠나고 싶은 욕구가 보내는 감정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맺음이 끝이 아니라 풀기까지가 끝이다. 열렬히 달구고 확실하게 맺은 것일수록 풀기가 주는 후련함의 쾌감이 크다. 개운하고 상쾌하고 시원하다.
3장. 통각으로 신호를 보내는 감정
p97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상처가 깊어도 붕대로 꽁꽁 싸매고 모르는 체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과거의 아픔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홀연히 돌아온다. 싸매둔 붕대를 풀면 고약한 냄새와 함께 상처가 썩어 깊이 병들어 있다. 과거에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아서, 아파야 할 때 아파하지 않아서 빚으로 돌아오니 인간의 의식이란 얼마나 지독한가.
p109
또 앞으로 벌어질지 모를 것을 걱정한다 하면 미래란 늘 예측불허이니 미리 걱정한들 소용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다 알아도 걱정을 떨치기 힘들다, 여기서 나온 지혜의 말이 "케 세라 세라" "될 대로 되겠지"라든가 "어떻게든 도ㅔ겠지."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만 담긴 의민ㄴ 이러하다.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지겠지. 그런데 미래란 알 수 엄ㅅ으니 설령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 모든 것에 대해 지금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케 세라 세라는 걱정하는 마음의 요동을 쓰다듬는 말이다. 그 요동이란 불안일까, 슬픔일까.
p128
같은 실수나 잘못이라도 마음결이 부드러울 땐 "그럴 수 있지~"가 되고 마음결이 거칠 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된다.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진다. 이러한 감정을 유지해서 기분이 되면 힘들거나 싫어서 미룬 일에 대해서도 "이제 슬슬해볼까?" 시동을 걸 수 있고 하고 싶어 참기 어려워 근질근질해질 수 있다. 그때 하면 된다. 하고 싶게 만들면 된다.
4장. 촉감으로 신호를 보내는 감정
p170
눈에 깃든 빛은 속일 수 없고 숨길 수 없다. 빛이니까. 빛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배어 나오는 법이니까. 말로 사람을 찌르거나 때리는 등의 언어폭력에 대한 경계는 이미 많은데 눈빛도 다르지 않다. 경멸이나 혐오, 무시 등의 눈빛은 분노나 증오보다 더 아프게 사람의 마음을 밴다. 눈빛으로 사람을 찌르지 말자.
반면에 부드러운 마음은 이러한 눈빛과 말씨, 태도로 은은히 배어 나온다. …… 부드러움은 아픔에 대해 타착불통방(매를 맞아도 아프지 않은 처방)이 되어줄 수 있다.
p206
자신은 항상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는, 틀린 생각을 가지면 분노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탓에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분노 유발자가 될 공산이 크다.
p212
간절히 희망하는 것이 있기에 절망한다. 절망의 고비는 희망을 품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체념으로 곤두박질쳐 무생물체가 되기로, 심장을 돌덩어리로 만들기로 만들기로 작정하면 슬픈 일이다.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은 '축복', 밖에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ㅇ르 버리고 내가 어떻게든 나를 끈기 있게 축복하는 것이다. 아직 끝장은 오지 않았으니 그토록 열망하던 것을 함부로 페기 처분하지 말자. 일단은 푹 쉬면서 내가 나를 축복할 수 있는 힘을 충전하자.
5장. 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감정
마음이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빛으로 환해질 때가 있고 모든 생명의 기운이 다 꺼진 것처럼 어두워질 때가 있다. 빛의 밝기를 좌우하는 요소로 낭만과 신비, 놀라움, 시간, 노력, 보람, 자부심, 신념, 관심 등이 있으며 밝음이나 어두움의 정도에 따라 희망/절망, 자신감/자괴감, 존경/시기·질투·부러움, 기쁨/외로움 등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어두움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으며 스스로 빛이 되어 주위를 환하게 밝힐 수 있다.
p251
자신감이 자존감에서 나온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닌 게 자존감 뿐이라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일뿐이다. 경험하고 습득한 지식의 힘이 더 중요하다. 여기서 '지식'이란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넘어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뜻한다. 그럴 수 있기까지 필 수 요소가 있다. 그것을 배우고 익히는데 공들인 시간이다.
p258
인생이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순간에 운명처럼 나타나서 나를 외로움에서 구원해 주는 이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극도로 피로할 때, 불안할 때, 사고를 당하거나 아플 때,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실패했을 때 등등 홀로 맞이해야 하는 일은 허다하다.
후기
앞 페이지 '작가의 말'에는, '자신이 감정을 '좋다', '싫다', '나쁘다', 정도로 뭉뚱그리지 않고 기쁨, 슬픔, 분노, 증오, 불안, 기대, 신뢰, 놀람 등으로 구별하고 그에 알맞은 어휘를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후련해진다'라고 적고 있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거나 믿었던 상대에게 배신감을 느꼈거나 해도 일일이 내 감정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가슴속에 있는 답답함을 상황에 맞게 설명이 가능하다면 목소리를 낮출 수 있어 극한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지 않을 수도 있다.
어렸을 때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로 다구침을 받았을 때, 억울하고 답답함을 설명할 수 없어 울음으로 폭발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었어도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려야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으며 실재 그렇게 하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의 재빠름에 따라가기가 버거워서다.
작가의 《어른의 어휘력》을 읽었을 때, 바른 어휘가 주는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나의 말 하기와 쓰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감정 어휘》는 우리의 감정이 모호할 때 뭉뚱그리지 않고 분명한 어휘를 통해 안개가 걷히듯 선명하게 표현하도록 한다. 말로 제대로 표현이 안될 때는 습관처럼 '우리 말은 어려워'라고 했다. 어려워서라기 보다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을 익히려고 하지 않았으며 공부를 하지 않다 보니 적재적소에 쓰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주인인 내 감정을 때에 따라 적확한 표현을 사용함에 있어 훈련하듯 해야겠다. 습관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조금씩 실행에 옮겨 내 감정을 반듯하게 전달하는 힘을 길러야겠다. 어른다운 어휘를 사용하기를 원하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