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동안 쓰였다

밥상을 앞에두고

by 옥희

'견디는 동안 쓰였다'를 읽고

이경화


저자 이경화는 음악과 글, 강연을 통해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이모의 손에서 성장했으며, 서른 초반 갑상선암 진단을 계기로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다시 묻게 되었다.


이후 그는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삶의 중심에 두고 글을 써왔다.


현재는 제주에서 천주교 수도원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문화 ·사유공간 '더 세인트(The Saint)를 기획 ·설립 중이며, 신앙과 예술, 삶의 태도를 잇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견디는 동안 쓰였다』가 있다.



내용


아는 지인의 소개하기를 첫 작품을 출품한 작가라고 했다. 주문하고 배송까지 시일이 걸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배송된 책은 포장지를 끌러보았을 때 성공했다고 여겨졌다. 우선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주르르 훑었을 때 시각적인 편안함을 느꼈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이 책에 쓰인 문장 하나하나 쉽게 쓰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할아버지와 겸상하여 주고받았던 극히 단순한 대화를 찬으로 더 올려놓아, 내려다보던 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해준 특별했던 할아버지를 작가는 많이 그리울 것이었다.



프롤로그


살아오며 나는 자주 말보다 침묵에 가까운 시간을 건넸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말은 자꾸 어긋났고 붙잡을수록 감정은 더 멀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오래 머뭇거렸고 쉽게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어쩌면 말하지 못한 것들을 끝내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1부 나의 모든 말은 밥상에서 시작되었다

p29 밥은 말이지 먼저 마음이 앉아야 먹는 거란다.


밥 한 숟갈을 뜨는 것에서도 경건한 의식이 느껴져 급하고 서두르는 마음을 저지하여, 밥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생활에는 질서를 갖추게 된다. 밥상머리 교육은 곧 긴 인생의 걸음걸이를 바르게 잡아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2부 가르침은 말보다 먼저 도착했다

p64 같이 밥을 먹자는 말은 인간이 서로에게 내미는 가장 원초적이고 성스러운 초대다.


아무에게나 밥 먹자고 하지는 않는다. 밥 먹으면서 정을 쌓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정을 쌓아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셈이다.


3부 깨다에서 깨닫다로 가는 파열음


p123 나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면서 쌓이는 오해, 쌓인 만큼 풀기도 어려운 법이어서 우리는 마음을 내보여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4부 삶을 견디었더니 철학만 남았다

p212 허기는 나를 공격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유나 상황에서도 허기질 때는 아무 일도 하면 안 된다. 중요한 결정도 보류해야 한다. 예민한 감각이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5부 삶이 이끄는 대로

p235 나는 요즘 내 언어를 정갈하게 걷어낸다.


중언부언하지 않는 깔끔한 문장과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 같은 청량감을 느끼게 한다. 주변에 깨끗한 물을 주고받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밥상은 화해나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문학이 독자를 데려가야 할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무대가 아니라 밥상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완성된 생각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방식에 가깝다.



후기


이 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밥상을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를 통해 밥상머리 교육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장면을 그렸다.


서두르는 동작에는 "밥은 도망가지 않는다"라며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밥을 꼭꼭 씹어 삼켜야만 속이 놀라지 않고 천천히 자란다"라는 말로 시간이 주는 단맛을 알게 하면서 철학을 논하고 있다.



살면서 우리는 "밥 먹자"소리를 많이 한다. 하루 3끼 규칙적으로 먹는 밥일 수도 있고 모처럼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하는 "밥 먹자"일 수도 있다. 어떤 이와는 확실한 시간 약속 없이"언제 밥 먹자"라고 할 때가 있다. 십중팔구 언제는 오지 않는다.


직장인 중에는 점심시간이 지나기 시작하면 "밥은 먹이면서 일을 시키라"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밥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여 생존을 위해서이고 정을 나누기 위해서이며 중요한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 등등이다.


'밥'을 얘기하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밥 먹어라!"라고 시간당 몇 차례 말하곤 했는데, 딸년들은 다이어트한다며 매번 어머니의 밥을 거부했다. 지금은 옆에 계시지 않는데도 "밥 먹어라!"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여 환청인가 싶어 웃고 있으나 눈물이 난다.


나 역시도 삼 남매를 키우는 동안 3끼 밥을 거른 적 없이 먹이며 어머니처럼 키웠다. 다른 점이라면 어머니는 "밥 먹어라!"였고 나는 "밥 먹자!"였다. 같은 밥이라도 어머니는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순서가 먼저였고 나는 같이 먹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작가는 밥상을 펼쳐놓고 달달했던 그리운 가족을, 뜨거웠던 사랑을, 맵고 아린 상처를, 지나온 삶의 흔적을 펼쳐놓아 견디면서 살아온 시간을 문장을 젓가락 삼아 뒤적인다.


밥상 앞에서 우리는 할 이야기가 많다.


화려한 문장을 구술하지 않더라도 나의 외로움을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금요일 연재
이전 09화"넌 무엇을 기대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