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를 읽고

by 옥희
스토너

존 윌리엄스(1922~1994)

존 에드워드 윌리엄스는 1922년 8월 29일, 텍사스 주 클락스빌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공군 소속으로 중국, 버마, 인도에서 복무했다. 윌리엄스는 덴버대학교에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미주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54년에 덴버대학교로 돌아와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 창작을 가르쳤다. 《오로지 밤뿐 Nothing But the Night 》(1948),《도살자의 건널목 Butcher's Crossing 》(1960),《스토너 Stoner》(1965),《아우구스투스Augustus》(1972) 총 4편의 소설과 두 권의 시집을 발표했으며. 영국 르네상스시대 시선집을 편집했다.1994년 3월 아칸소주 페이예트빌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승욱/옮긴이

성균관 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분노의 포도》《모스트 원티드 맨》《듄》《시인》《도플갱어》《살인자들의 섬》《사형집행인의 딸》《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퓰리처》 등이 있다.


내용

스토너는 미주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고단한 노동으로 살아간다. 어제도 오늘도 다를 바 없는 삶으로 스토너는 말 없는 소년으로 자란다. 농업대학을 마치면 자신을 도와 집안을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한 아버지는 없는 살림이지만 더 많은 일을 하여 학비를 충당하기로 하고 스토너를 농업대학에 보낸다. 오로지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입학한 스토너는 영문학 교수인 아처 슬론 교수를 만나, 학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기회를 얻게 됨으로써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농업이 아닌 문학을 하기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하겠다는 스토너의 결심에 아버지는 그저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마련한다.

이후 스토너는 대학에 몸담으면서 세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깊은 사랑을 만나 잠시 행복을 느끼지만 아픈 이별을 겪으면서도 학자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아내인 에디스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자랐으나 평범하지 못한 교육으로 인해, 편안한 환경을 원하는 스토너와는 다른 결혼생활을 만들어간다. 에디스의 예측불허의 성격으로 집안을 불안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스토너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 태어난 딸을 에디스는 거의 돌보지 않고 밖으로 돌며 시간을 보내고, 스토너는 자녀를 돌보며 양육하는 기쁨을 누린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에디스는 딸은 엄마가 돌보아야 된다는 명목으로 스토너에게 가까이할 수 없게 만들고 딸의 인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학 내에서 스토너는 이미 고집스럽도록 원칙을 고수하는 교수로 알려져 있다. 학과장인 로맥스 교수의 편파적인 시간표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중에도 스토너는 자신이 학생들에게 마땅히 전해야 할 지식을 위해 굽히지 않는다. 학자로서의 지식 전달을 위한 열정에 감동을 받은 강사인 캐서린과 스토너는 깊은 사랑에 빠진다. 둘의 관계는 학교에 알려지게 되고 스토너의 일상을 꽤 뚫고 있는 에디스도 듣게 된다. 모든 걸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던 둘의 사랑은 캐서린이 학교를 떠남으로 끝나고, 스토너는 여전히 학교에 남아 변함없이 가르치는 일을 하며 늙어간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

p562 그래서 그는 냉혹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인생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후기


이 소설의 문장은 수려하거나 장황하지 않다. 담백하여 오히려 감동이다. 인생의 모든 부분이 원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실패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최근,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생각하다가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남들 시선으로 성공을 저울질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고 자유해졌다.

책을 읽다 보면 스토너의 삶을 나타내는 것처럼 담백하다고 느끼는 짧은 문장으로 긴 생을 그려 넣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책을 가슴에 품었다. 스토너에게도 또한 내게도 다독거렸다.

"살아내느라 애썼다."


1965년에 출간되었으면서 거의 50년이 흐른 뒤에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주인공만큼이나 인내심이 많은 작품이다. 스토너는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지 못했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사랑을 쟁취하지도 못했다. 그는 기회를 틈타 출세의 반열에 오르거나 주어진 난관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의지나 용기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렸다. 스토너에게는 마지막까지도 역전의 기회가 오지는 않는다.

그가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되뇌었던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인 것이다. 긴 인생의 여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다만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 몫이다.

책은 짧은 문장으로 긴 여운을 남겨 오래 생각하게 하는 묘미를 준다. 주인공이 지닌 선한 인내심을 통해 행동이 없이 말이 앞서는 지금의 시대를 비교하며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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