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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ul 02. 2024

6월을 보내며

  유월의 마지막 날을 보낸다. 유월에는 한 달 동안 내내 입속에서 맴돌며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다. 유월 육일 현충일 기념 노래다. 

  고등학교 때까지 현충일이 되면 현충원 묘지를 참배하고 기념식을 위해 동원된 것은 당연히 학생들이었다.  그때는 식순에 따라 마지막 순서에 현충일 기념 노래를 불렀다. 따가운 햇빛 아래 서 있기가  힘들어서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노래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도 이제 부모가 되어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두고 보니, 이런 기념일이 되면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생각에 가슴이 울컥한다. 유월의 육일과 육이오는 좋건 싫건 우리의 아픈 기억을 소환해 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매스컴에서는 당일 뉴스 한 줄로 가볍게 지나가는 경우를 본다.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와 같은 전쟁을 겪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거나 역사가 주는 사실을 흐리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방의 준비가 안되어 무너지는 나라를 구하고자 전쟁 중 목숨을 잃은 군인들은 이십 전후반의 꽃다운 청년들이고, 총 자루의 생김새만 보고 소집되어 간 학도병들은 고교생들이었다.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과부가 되어 유복자를 키워냈고, 할아버지가 된 아들은 까까머리의 아버지 사진을 놓고 제사를 모셨다. 나라를 위해 바쳐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올 것이라고 눈물로 골이 패였던 부모들은 눈을 감지 못하고 땅에 묻혔다.

  학생 때 해마다 기념식에 참석하여 순국 영령을 위해 노래했던 우리 세대도 늙어간다. 전쟁을 겪어보지는 않았으나 유월이 되면 의무적으로 전쟁영화를 보게 하고 충혼 묘지를 참배하여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언제까지 효력이 있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식들은 세대 차이를 운운하며 걸핏하면 옛날 얘기를 하고 있는 아날로그 세대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도 않는다. 우습게도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우리도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던 적은 없었다. 부모님처럼은 안 살겠다고 했던 우리 세대는 어깨너머로 보아온 어머니 아버지의 처절하게 살아온 삶을 나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다.

  

  작금의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숨 쉬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어른들도 나서기 두려운 세상이다. 머리가 하얗고 등이 구부러져 있어도, 배움이 많은 노 학자임에도,  어른이 어른이라고 하기 무섭다. 이런 분위기에 나도 숨는다. 도덕이나 윤리는 실종되고 무질서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도를 넘고 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숨었던 곳에서 나와 우리의 자녀들이 멘토로 삼아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용기 있는 어른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 나의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각오 하나로 목숨까지도 바치면서 지켜낸 이강산의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고 있을 영령들이여.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임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아 그 정성 새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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