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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May 05. 2024

반으로 나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3. 이혼이 죄는 아니잖아요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땅에서 일을 모두 마치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영원히 잠에 드셨다. 할아버지의 영면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장례를 치르는 시기가 엄마 아빠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도중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아빠는 먼저 병원으로 향했고, 우리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빠가 나와 동생만 장례식장에 머무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엄마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던 걸까? 엄마는 상주복을 입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아빠는 유일한 아들이었고 상주였다. 나는 빈소 옆 좁은 방에 사촌들과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고모부가 코를 골며 주무실 때도 있었고, 사촌 언니와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주로 앉아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끊임없이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뭐냐고, 어디까지냐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갓집에서 나 같은 어린애가 할 일은 없었다. 가끔 아빠 지인이 오면 불려 나가서 인사나 했지. 뭐. 

 어둡고 좁은 방에는 사촌 동생들이 게임을 하는 소리, 코 고는 소리, 방 밖의 시끌시끌한, 누군가 우는, 밥을 먹는, 반가워하는, 상을 치우는, 웃고 떠드는 소리만 울렸다. 그러다가 문에 상주 완장만큼의 틈이 생기고 빛이 들어오면 방을 빠져나가 이모, 삼촌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그 순간에 만난 아는 얼굴들이 참 반가웠다. 조문객으로 온 그들이 돌아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할아버지의 입관식을 마치고 빈소로 돌아왔다. 머리에 작고 하얀 리본 핀을 꽂고 의자에 앉았다. 조문객도 거의 없을 시간의 조용한 빈소였다. 엄마가 왔다. 검은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를 입고 와 향을 꽂았다. 그러고는 고모들, 할머니와 인사하러 갔다. 그 뒷모습을 봤다.


 눈물이 났다. 세상에 태어나 첫울음을 울었던 이래로 이렇게 불가항력적인 힘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이 대지의 밑에서 어떠한 절대자가 내 눈물을 밀어 올리는 듯했다. 아빠가 놀라서 나를 달랬다. 엄마라는 판과 아빠라는 판이 멀어진다. 화가 났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게 화가 났다. 화산이 폭발할 마그마와 약간의 물을 분출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활화산이었다.


 화산재 같은 물음이 빈소를 울렸다. "엄마가 지었어?" 

 그러니까, 나는 활화산인 동시에 그 주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뿜어낸 용암에 내가 상처 입은 셈이니. 


 그 이후의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나는 잠깐 울다 그쳤을 것이고 장례식은 다음날의 발인을 끝으로 잘 마쳤을 것이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 그 좁고 어두운 방에서 한 여러 생각들이 아직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아직은 이 짐을 풀어볼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언젠가는 이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래 걸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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