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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Jun 18. 2024

반으로 나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6. 1인칭 인생

 부모님이 이혼하는 것에 대해 내 의견을 물었을 때 선뜻 그렇게 하라고 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도 한 명의 사람이고,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삶을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년기의 기억 속 엄마아빠는 항상 회사에서 일만 하고, 퇴근하거나 휴일에는 나와 동생을 챙기느라 개인 시간이라곤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만 하더라도 아빠는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그때까진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으니까, 아빠에겐 일요일이 유일한 휴일이었다. 일요일만 되면 늦게까지 잠만 자는 아빠가 어렸을 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십분 이해한다. 

 엄마는 아빠보다 비교적 집과 직장이 가까웠기에 나와 동생을 챙기는 건 항상 엄마였다. 학부모 참관 수업도 엄마가, 아파서 학교를 조퇴한 날 챙기는 것도 엄마가,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는 것도 엄마가. 회사에서 눈치란 눈치는 다 보면서도 결국 우리를 챙기는 건 엄마였다. 게다가 퇴근하고 나서도 육아는 퇴근할 수 없었으니. 

 그러니까, 30대 중후반의 엄마 아빠의 삶엔 나와 동생, 가족을 부양하는 일 밖엔 없었다. 


 그러한 엄마 아빠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였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끼가 많았고 노래를 잘했다. 어렸을 때 가수 오디션에도 합격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앨범을 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런 엄마가 2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다시 음악을 시작했다. 본인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일과 육아에 지쳐 자신을 잃어가던 엄마의 눈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우리 집 예술가이자 나의 자랑이 되었다.

 고향을 떠나 젊은 나이에 상경한 아빠는 친구가 없었다. 주기적으로 동창회에 나가긴 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일 뿐. 다들 그렇듯 성인이 되고 나서는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기 어렵지 않은가. 아빠는 도시라는 섬에 서서히 고립되고 있었다. 그러던 아빠에게 친구가 생겼다. 동생이 다니던 어린이집 학부모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의논하고, 그러며 한두 잔 기울이기도 하고. 취미도 친구도 없이 주말에는 잠만 자던 아빠가 동생과 나를 데리고 주말마다 공원이며, 산이며, 바다로 떠났다. 농촌을 떠난 지 오래였던 아빠에게 작은 텃밭을 일구는 취미도 생겼다.


 엄마 아빠의 이런 변화를 지켜보며 나는 깨달았다. 엄마 아빠의 삶은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우리를 양육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엄마 아빠가 이혼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엄마 아빠는 나보다 서른 살이 넘게 많은 성인이고 본인의 삶엔 본인의 결정이 있어야 함을.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결국 내가 엄마 아빠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를 사랑하기에 그들의 불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괴로운 현실을 억지로 참으면서 사는 건 나도 싫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고, 그 목적지는 곧 행복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엄마 아빠를 보고 자란 나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 엄마 아빠의 남다른 선택으로, 내게도 또 하나의 선택지가 열렸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날 한 명의 사람으로 키웠듯, 한 명의 사람이 된 나도 그들의 1인칭 인생을 존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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