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늘 들어있는 세 가지 물건

by D작가

내 가방은 늘 무겁다. 필요 없는 물건을 줄이려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매일 같은 결론에 이른다. 꼭 챙겨야 하는 건 세 가지뿐이라는 것. 책, 이어폰, 그리고 작은 노트. 이 세 가지가 들어 있지 않은 가방은 텅 빈 듯한 기분을 준다.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고 살아가는 방식에 가까운 것들이다.


1. 책 ― 시간을 건져 올리는 도구


나는 이동 중에 손이 허전한 걸 참지 못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만히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책을 펼치면 흐르는 시간이 붙잡힌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다 보면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무의미해진다.


종종 책을 꺼내든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그때마다 나는 작은 우월감이 아니라,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적어도 나는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있다는 확신. 읽는다는 행위는 늘 내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어떤 날은 마음을 흔드는 문장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습관이다. 책이 가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언제든 그 습관을 이어갈 수 있다.


2. 이어폰 ― 내 공간을 지키는 장치


도시는 늘 시끄럽다. 신호등 소리, 사람들의 대화, 자동차 경적. 그 소음은 때로는 나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힘이 되지만, 많은 경우에는 집중을 방해한다. 그래서 이어폰은 나에게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도시는 멀어진다. 음악이 흐르면 나는 잠시나마 다른 세계로 옮겨 간다. 책과 함께 있을 때도, 노트를 펼칠 때도, 이어폰은 필수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낯선 공간에서도 나만의 리듬을 유지하게 한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더 그렇다. 낯선 언어와 풍경 속에서도 익숙한 음악은 나를 중심에 세워 준다.


3. 작은 노트 ― 사라지지 않게 붙잡는 기록


가장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자주 쓰는 물건은 작은 노트다. 휴대폰 메모 앱으로도 충분하지 않냐는 말을 듣지만, 종이 위에 글씨를 남기는 행위는 전혀 다르다. 연필이나 펜의 압력이 남긴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 물리적인 잔상 덕분에 노트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기억이 된다.


나는 그 노트에 하루 동안 떠오른 단상을 적고, 누군가의 말에서 얻은 문장을 옮기고, 심지어 아무 의미 없는 낙서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쌓인 작은 글씨들이 결국 내 삶을 설명하는 조각이 된다. 한 권이 다 차면 노트를 서랍에 넣어둔다. 몇 년 전의 노트를 다시 펼쳐 보면, 그때의 고민과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종이의 구겨짐과 번진 잉크가 그 순간의 공기를 전한다. 디지털 기록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질감이다.


결국, 삶의 선언


다른 물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화장품 파우치가 들어갔다 빠지기도 하고, 충전기를 챙겼다 빼기도 한다. 하지만 책, 이어폰, 노트만큼은 예외다. 세 가지가 없는 날은 일종의 결핍처럼 느껴진다. 책은 내 시간을 지켜주고, 이어폰은 내 공간을 지켜주며, 노트는 내 생각을 지켜준다.


이 세 가지는 단순히 ‘필수품’이 아니라 나의 태도이자 습관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배우고, 버티고, 기록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가방에 늘 같은 세 가지를 넣는다. 그것은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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