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를 먹다로 외우면 왜 안될까?
앞의 글에서 설명한 대로 영어 단어의 여러 의미들 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의미 나무라는 것을 만들어 500개 이상의 단어를 분석해 보고 그 중 10%정도를 발췌해서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책의 제목이 고민거리였다. '인지과학으로 본 영어 단어' 같은 다소 딱딱한 느낌의 제목이 떠오르는데 마음에 들지않아 이생각 저생각 하는 중 타일러 라쉬가 중앙일보에 기고했던 "떡국, 나이, 친구까지 '먹는다'는 한국말"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https://m.news.zum.com/articles/18281932). 이 글을 보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 eat라는 단어의 우리말 의미인 '먹다' 그들이 알고 있는 eat의 의미로는 해석이 안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암기한 우리말 먹다에 해당하는 eat라는 단어로는 eat가 가진 다른 의미들 즉, '황폐하게 하다'라든다 '괴롭히다' 같은 의미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 글에서 힌트를 얻어 책의 제목을 'EAT는 먹다가 아니다'로 정했다.
우리말의 '먹다'와 영어의 'eat'의 의미들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해 보면, 우리 말의 "먹다"라는 단어는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서서 "겁을 먹는다"든지 '친구를 먹다' 또는 '바지가 먹다'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되는데 구체적인 것이든 추상적인 것이든 '바깥의 것이 안으로 들어오다'라는 공통된 개념의 의미를 갖는다. 겁을 먹는다는 것은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그 마음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이고 친구를 먹다는 것은 낯선 사람이 자신의 친구의 영역으로 들어 온다는 의미가 된다.
영어의 eat라는 단어는 어떨까? 물론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에서는 우리말과 동일하게 쓰이지만 그 의미가 확장될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The forest was eaten by the fire.나 What's eating you? 와 같은 문장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우리 말과 달리 영어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먹는다는 행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외부의 음식을 가져다가 입에 넣고 씹어서 삼키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때, 음식의 입장에서 보면 없어지거나 형태가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첫 문장은 "숲이 불로 망가졌다" 또는 "황폐하게 되었다." 라고 해석할 수 있고 사람에 대해서는 망가뜨리다 보다는 괴롭히다로 바꾸어 "뭐가 너를 괴롭히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Eat의 다양한 의미를 의미나무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Eat가 음식을 씹어서 삼킨다는 의미에서 출발해서 그 과정은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내 것으로 흡수(The builder had to eat the cost of the repair.)한다는 의미, 씹어서 삼키는 과정이 무언가를 점진적으로 소모(The patient was eaten by disease and pain.)시킨다는 의미 그리고 (음식을 다 먹어서) 없애버린다(Unexpected expenses have been eaten up their savings.)는 의미 등으로 분화된다. 점신적으로 소모한다는 의미는 부식이 되거나 갉아서 없어진다는 의미이고 그 결과로 물건에 구멍이 나게 되고(to make a hole or passage)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물건이 파괴된다(a forest eaten by fire)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 써버린다는 것은 낭비(An old car eats oil.)를 의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