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경제의 과거 , 현재, 미래 그리고 우리경제와의 관계는?
20230819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제비 한 마리가 오는 것을 보고 천하에 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간단한 말이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모든 일에는 전조(前兆)라는 것이 있다. 즉 어떤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예시해주는 어떤 현상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큰 지진이 나기 전에 땅에서 이상한 냄새나 온천수가 나온다거나, 하늘에서는 새들이 떼지어 이동하고, 바다에서는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징조들은 물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또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는 이러한 징조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다.
나에게 있어 중국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중고등학교 학생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저 재미가 있어서 중국 소설을 많이 읽었을 뿐이다. 남다르게 교육열이 크신 부모님 덕에 당시에는 드물게 우리 집에는 책이 많았었다. 을유, 정음사의 세계문학 대전집의 상당 부분도 그때 읽었었다. 그러나 그런 책 이외에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책은 소위 중국의 ‘4대 기서’였다. 당시에는 4대 기서가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고, 그저 재미있어서 읽었다. 당시에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책은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였다. 만약 누가 나에게 영향을 준 다섯 권의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두 책은 그 안에 들어갈 것 같다.
서유기는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주었고, 삼국지는 그저 재미있어서 여러번 읽었다. 나에게는 삼국지가 4벌 있었지만 가장 삼국지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해 준 책은 어렸을 때 읽었던 무명씨의 삼국지였다. 특히 이문*씨의 삼국지를 읽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이 들어 중국을 방문하여 ‘화염산’의 열기를 느끼고, 양자강과 황하의 굽이치는 모습을 보며, 또 베트남(남만국)의 궁전을 보며 남다른 감회를 가진 적도 있었다.
다만 아직도 양산박은 방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거대한 호수는 진작 사라지고 작은 호소(湖沼) 정도만 남아있다고 한다. 급시우 송강과 입운룡 공손승, 흑선풍 이규와 과객을 잡아 만두로 만들어 팔았던 화화상 노지심과 손이랑 등이 생각난다.
나의 이러한 중국에 대한 관심은 그 후 김상협 총장님의 『모택동 사상』을 필두로 『주은래 평전』, 『모택동의 사생활』 등 여러 책을 읽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중국을 이야기 대상 이상으로 관찰하게 만든 분은 돌아가신 ‘이세기 장관’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분이야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중국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모두 갖춘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장관께서 중국에 가실 때마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 중국을 자주 방문하였다. 그래서 높은 분들도 많이 만났고, 또 17호각에서 식사도 하는 귀한 기회도 가졌었다.
그러나 어느 날 매우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중국으로 부터 이 장관께 책 한 권이 배달되었는데, 그 책 이름이『시진핑의 통치 철학』이었다. “제비 한마리가 오는 것을 보고 천하에 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순간이었다. 이 장관께서도 그 책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중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매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명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가 시진핑 제1기 집권의 마지막쯤이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자주 언급하지만, 중국의 99% 사람들은 정말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상식 밖의 추행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중국인들은 절대 대국(大國)인들이 아니고, 그야말로 치졸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위 1% 사람들의 문화 수준은 정말로 높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두보, 이백, 사마천, 황정견, 소식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1%는 나머지 99%와는 거의 별개의 계층 사람, 특수한 사람들이다. 중국 인민들도 그러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큰 오산이다.
나의 이와 유사한 일을 오스트리아에서도 경험하였다. 우리나라 상당수 사람들은 “짤즈부르크 모차르트 페스티벌”을 알고 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모차르트 페스티벌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짤즈부르크 시(市) 전체의 분위기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런 엄청난(?) 페스티벌 기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어디에도 행사를 알리는 그 흔한 플래카드 하나 없었다. 모차르트 기념 극장 위치도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극장을 찾는데 상당한 시간이 들었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극장 안에 들어가니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바로 그 모습들이었다. 뒤가 파진 화려한 드레스, 반짝이는 보석들, 너무나 우아해 보이는 신사, 숙녀들의 모습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그것은 큰 충격이었다.
중국 인민들에게 두보, 이백, 사마천, 황정견이 없듯이 서양의 일반 대중에게도 모차르트와 바하는 없었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니 우리가 아는 위대한 음악가들이 모두 궁전음악가였거나 아니면 성당 소속의 작곡가였던 것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시진핑의 통치 철학』이란 책은 나에게 다른 시각으로 다가왔다. 중국은 당시에 그리 큰 나라도 아니었다. 더욱이 시진핑은 중국 당서기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인이 알게 되었지, 그가 누구인지는 중국 내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공산당 입당 시험에서 8번 떨어지고, 9번째에 허락을 받은 사람이고, 그가 151번째(150 + 1)의 번외(番外)로 국무위원 후보가 되었을 때, 당시 실권자인 강택민은 “가가 누구야?”라고 측근에게 물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아버지 시중신이 혁명 1세대이기 때문에 태자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태자당원도 아니었고, 뚜렷하게 북경방도 아니었으며 더욱이 공청단원은 아니었다. 그의 출세는 어떻게 보면 기존 어떤 세력과도 깊은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발탁된 매우 특이한 케이스였다.
사람의 인생이나 관운(官運)은 정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런 시진핑이 서기장이 되고 『시진핑의 통치 철학』이라는 책을 지어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발송하였다?’ 이것은 정말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모택동을 사숙(師叔)한다는 소문까지 들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를 과대망상증이 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후 그가 진행하는 사업들을 조용히 추적해 본 결과 그는 ① 과대망상증과 함께 ② 황제의 욕심이 있고, ③ 중국 역사에 길이 남고 싶은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성향을 분석하는 것은 중국의 정책을 이해하고 미래 중국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를 분석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하게 시진핑 주요 정책의 제목만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일대일로, ②천하2분론, ③국진민퇴, ④공동부유론, ⑤신사회주의, ⑥신하방운동, ⑦내수진작사회, ⑧중국몽 등이다. 너무 많은 이름들이 있어 조금은 현란스럽지만 그것들을 연결하여 설명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러면 중국 경제발전사를 짧게 말해 보겠다.
중국이 지금과 같은 G2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경제성장 배경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971년 미국의 닉슨과 키신저는 중국 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중국 때문이 아니라 (구) 소련 때문이었다. 소련은 공산주의의 원조 국가로서 스탈린의 강압 아래 끊임없는 공산주의의 수출 노력을 전 세계에 시행하였다. 역으로 미국은 자본주의 대부(代父) 국가로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선봉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의 GDP는 2차세계대전 직후 약 50%에서 40%로 줄었지만, 아직도 어마어마한 경제대국이었다(현재도 약 24% 정도임). 그러므로 소련보다는 경제적으로는 훨씬 여유가 있었지만, 미국의 젊은이들이 전쟁에서 스러지는 것은 매우 큰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미국은 공산주의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었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나라가 어느 나라일까를 분석하였다. 결론은 간단하였다.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당시에 이미 모택동이 건국한 공산주의 국가였고, 인구도 세계에서 가장 많았으며, 국토도 가장 넓은 나라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산주의 맹주 국가인 소련과 국경이 인접한 국가였다. 만약 중국이 심각한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 그것은 미국에게 정말 큰 골칫거리였다.
또한 중국은 당시 아주 가난한 나라였다. 부자 나라는 공산주의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는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산(共産)주의라는 말 자체가 공(共)동으로 재산(産)을 나누어 갖자는 뜻이다. 즉 자본가 계급들이 독점하고 있는 재산을 빼앗아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좋은 희소식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칼 맑스의 플로로테리아 혁명과는 무관하게, 영국, 독일, 미국과 같은 잘 사는 나라가 아닌, 유럽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났었다. 아시아에서도 가장 못사는 나라 중국이 공산화가 된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도 이승만 정권의 2차에 걸친 토지개혁이 없었다면 6·25전쟁으로 거의 확실하게 공산화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을 개방하여 어느 정도 잘 사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또한 잉여 달러가 많아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던 월스트리트의 욕심과도 일치하였다. 그러나 더욱 반가운 것은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등소평의 등장이었다.
<< 등소평의 정책과 중국의 급속한 개방 >>
모택동의 뒤를 이어 중국의 맹주가 된 등소평은 정말 영웅이라고 할만한 사람이다. 등소평은 중국의 역사와 중국인들의 기질 그리고 중국왕조의 흥망성쇠에 대해 누구보다도 명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모택동과는 달리 ① 중국 인민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었으며, ② 경제발전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③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중국 미래의 권력자들 간에 ‘어떤 싸움이 벌어질까?’까지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을 개방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전 세계에 그리고 중국 인민들에게 세 가지 원칙을 공표하였다. 첫째는 선부론(先富論)이다. 중국 인민들이 한꺼번에 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부자가 될 사람은 먼저 부자가 되라. 그리고 그다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부자가 되자. 두 번째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검정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흑묘백묘론은 대단히 중요한 중국식 사고의 전환이었다.
직전의 지도자 모택동은 『영구혁명론』을 주장하였다. 영구혁명론을 짧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모택동은 “사람은 배가 부르면 나태해진다. 그리고 쓸데없는 종교를 찾고 자기들끼리 편당을 짓게 된다. 이것은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반대 세력이 된다. 그러므로 공산혁명의 순수성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설령 경제적으로는 가난해질지라도) 끊임없이 영구혁명을 일으켜 인민들의 공산주의 정신을 깨우쳐야 한다.” 이런 그의 이론에 따라 자기의 문화를 자기 스스로 때려 부수는 ‘문화대혁명’ 같은 일들이 십여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소평이 주장하는 선부론(先富論)과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얼마나 위험한 주장이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 등소평 최대의 걸작은 『차차기 정부까지 권력의 순서를‘미리’정하여 공포하는 것』이었다. 그는 역대 중국의 왕조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였다. “왜 그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왕조가 짧게는 몇십년, 길어야 200년을 넘기지 못하는가?” 그 결론은 매우 간단, 명료하였다. 바로 『부정부패와 탐관오리의 학정』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부패는 부정한 정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집권 세력과 그 반대 세력 간의 싸움이 근본 원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의 ‘잠재적 미래 권력 그룹’을 세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태자당이다. 아버지가 주요 혁명세력이었거나 아니면 최고급 관료들의 자제들이다. 다음은 북경방이다. 중국의 북경은 천여년 간 중국 권력의 중심지였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권문세가와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다. 이 세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기존 세력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공청단(공산청년단)이다. 즉 신진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아무런 백도 없이 오직 자신의 출중한 실력으로 입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만약 이들의 앞길이 막히면 반대 세력이 될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등소평은 이들이야말로 『중국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끔찍하게 애지중지하였다.
(나는 이런 측면에서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역사교육’을 입시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는 일부 교육부 사람들은 정말 그 사람들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공복인가가 매우 의심스럽다.)
그리고 그는 이 세 그룹 간의 권력순환도 결정하였다. 태자당, 북경방 그리고 공청단의 순서였다. 우선 자신 등소평은 공산혁명 1세대로 태자당의 맹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다음 순서인 북경방의 두목격인 강택민(장쩌민)을 불렀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받아냈다. “나는 너에게 권력을 승계한다. 그러나 약속해라. 너의 임기가 끝나면 공청단에게 권력을 넘겨라. 네가 공개적으로 약속하면 너에게 권력을 넘겨주겠다.” 이런 제안을 받은 강택민은 넙죽히 절하며 약속을 공개적으로 하고, 권력을 승계받았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넓은 중국을 통치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매력 있는 일인가? 그래서 강택민은 한번 잡은 권력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권력 이양을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공청단의 후진타오에게 서기장을 넘겼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실권인 군대통솔권과 경찰권은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 내에 깔려있는 자신의 옛 부하들을 동원하여 후진타오의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하거나 제동을 걸었다. 후진타오는 여기에 한(恨)이 맺혔다. 그래서 나름대로 강택민에게 물을 먹이려는 전략을 구상하였다. 그것이 바로 시진핑을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공청단의 다음 승계순위는 태자당이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신은 모택동과 같은 혁명 1세대다. 분명 시진핑은 태자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시진핑은 별로 알려진 존재도 아니었고,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는 평도 없었다. 어찌보면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국무위원 후보 150명 중에도 끼지 못한 그를 억지로 151번째로 영입하였다. 아마 후진타오도 강택민과 같이 어리버리하게 보이는 시진핑을 내세우고, 자신도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암ㅍ서 말한 바와 같이 시진핑은 공산당 입당도 여덟 번 미끄러지고 아홉 번째에 입당된 사람이다. 그리고 모택동이 벌린 ‘도시청년을 시골 농부로 보내는’ 하방운동(下方運動, 이 명칭은 기억하기 바람) 때도 아무런 저항 없이 시골에서 청년 농부로서 생활하였다. 그만큼 특징이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선임된 시진핑은 그야말로 발톱을 감추고 있었던 호랑이였다. 그것도 지독한 호랑이였다.
당시 중국은 매우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비단장사 왕서방’의 후예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돈에 대한 열망이 전 세계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지 수단의 정당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 사회에서는 “누구를 속여서 내가 이렇게 돈을 벌었다.”는 것이 오히려 자랑거리인 사회다. 어떻든 미국의 개방정책과 중국인들의 노력이 겹쳐 중국은 폭풍 성장을 하였다, 때로는 두자리 숫자의 성장도 하였다. 그 결과 중국은 G2, 즉 미국 다음의 GDP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성공 스토리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중국 쇠락은 시작되었다.
시진핑을 이해하는 데는 세가지 기본 패턴이 있다. 이것을 잘 꿰뚫고 기억해 두면 그의 정책과 중국의 미래를 비교적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지극히 잘못된 중화주의 ② 강한 권력에 대한 집착(황제의 꿈) 그리고 ③ 모택동에 대한 흠모』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일대일로(一帶一路)다.
하나의 띠(帶) 그리고 하나의 길(路)이다. 과거 중국은 가장 번성했던 국가 중 하나였다. 그 예가 바로 실크로드(Silk road), 비단길이다. 중국 서안에서 시작하여 로마까지 이르는 길고 긴 해상 및 육상 무역로였다. 그 길을 통해 중국의 문물이 서양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바로 이런 해상과 육상의 길을 연결하여 중국을 다시 세계의 중심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 바로 신(新)실크로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꿈을 더욱 확대하여 전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까지 연장하려고 하였다. 시진핑 중국몽(中國夢)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①과 ②의 현실판이다.
그리고 일대일로는 70여 개국에 1,50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추정 투자액은 무려 1조 7천억 달러였다. 2천조원이 넘는 정말 큰돈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었다. 서구의 투자와는 달리 중국만의 이기적인 투자방식이었다. 일단 투자할 때 부패정권과 의도적으로 결탁하여 투자액의 작은 부분만 실 투자되게 하였다. 그러면 그 투자는 명백히 실패하게 된다. 그러면 가난한 그 나라는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수 없다. 그러면 중국 정부는 돈을 더 투자해 주기로 하고, 그 시설(항만, 도로, 비행장 등)의 운영권을 중국이 갖게 하는 조약을 다시 맺게 한다. 즉 일대일로의 프로젝트는 새로운 중국 국토의 확장전략이고, 새로운 군사거점의 확보 전략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자재와 인력을 중국으로부터 가져왔다. 그러므로 거죽으로는 그 나라에 대한 투자였지만 실제로는 중국기업의 해외사업이었을 뿐이다. 즉 그 나라에게는 아무런 경제적 효과도 없고,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뻔한 프로젝트가 진행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나라는 엄청 난 빚과 땅 그리고 SOC 시설을 중국에 빼앗기는 꼴이 되었다. 이런 보도자료를 스리랑카, 미얀마 그리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보았을 것이다.
중국은 정말 조심해야 할 나라다. 중국 투자를 적극 유치하려 했던 과거 일부 제주도 지사, 인천 광역시장 그리고 강원도 자치장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진정으로 추적해 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중국을 개방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등소평의 개방전략 그리고 중국인들의 근면성(과거)이 결합되어 중국은 거의 30여년이 넘는 고속성장을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중국의 못된 중화정신이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즉 중국의 잘못된 중화사상의 부활이다. 즉 ① 모든 좋은 것은 중국으로부터 나왔고, ② 설령 아니면 중국에 그 뿌리가 있으며, ③ 소국은 대국인 중국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생각 등이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축구선수 손홍민은 중국 성씨인 손씨(孫氏)이기 때문에 중국인이고, 만리장성의 끝은 하북성 산해관이 아닌 평양(동북공정)이며, 김치, 한복, 스파게티, 빵도 모두 중국의 고유 산물이라는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 중국인의 창의정신이다. 중국을 잘 알고, 중국을 칭찬하자.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은 나도 모르게 망국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시진핑은 이러한 잘못된 중화사상을 크게 강조하였다(①과 ②).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등소평은 선부론, 흑묘백묘론 이외, 또 하나 중요한 전략을 후배 정치인에게 남겼다. 바로 도광양회(韜光養晦)다. 말 그대로 ‘빛(光,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참고 기다려라.’라는 뜻이다.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식객 노릇을 하고 있을 때 조조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번개가 칠 때 상 밑으로 숨는 등 일부러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는 행동을 했을 때 썼던 계책이다.
등소평의 이 말은 중국이 진정한 힘을 가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꿈(②)을 가진 시진핑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미 중국은 세계2위의 경제 대국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거의 영구집권이 보장된 황제이니 황제다운 행동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이 결과가 바로 미국과 중국이 천하를 2분하여 다스리자는 ① 천하2분론을 주장하고, ② 달라 패권에 도전하였으며, ③ 중국을 재무장화 하였다.
천하2분론은 세계의 패권을 중국과 미국이 2분하여 가지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의 발전은 중국 자력발전(自力發展)이 아니었다. 미국의 자본과 미국의 기술력, 그리고 미국과 서방에 대한 수출의 바탕 위에 이루어진 성장이었다. 즉 미국의 허락하에 미국과 세계의 공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러한 기본 메커니즘을 생각하지 않고, 세계2위의 GDP 국가가 되자 그것이 마치 자신(중국)의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미국에 도전한 것이다.
미국의 대처는 단호하고 명쾌하였다.
우선 중국에 대해 ① 최혜국대우를 철회하고, ② 중국상품에 대한 관세를 15~45%로 높여 중국상품의 가격을 올려 버렸으며, ③ 미국 기술의 사용을 금해버렸다. 그리고 ④ 미국 기술이 들어간 상품 특히 반도체 제조기계(ASML 등)의 대중 수출을 금하고, ⑤ 지금까지 눈을 감아 주었던 특허 사용 등 외국 기술의 불법 사용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그 결과는 참담하였다.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였던 통신장비 회사 화웨이는 순식간에 거의 문을 닫게 되었다. 최근에는 7나노 반도체 장비뿐 아니라 25나노 장비의 수출도 금해버렸으며, AI와 양자컴퓨터 관련 투자는 아예 금하거나 특별 허락을 받도록 하였다. 25나노 반도체라면 우리가 흔히 쓰는 TV나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일반 반도체 기술이다.
그리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⑥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디커플링(디리스킹)을 주도하고, 자유세계만을 중심으로 무역체제를 재구축하였으며, ⑦ 군사적으로는 AUKUS, QUAD를 구축하여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 중국을 포위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를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하여 중국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비어있는 북태평양의 출구 봉쇄를 시작하였다. 마치 불란서와 영국이 전쟁하였을 때 나폴레옹이 내린 ‘대륙봉쇄령’과 유사하다.
또한 중국은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여 전랑외교(戰狼外交)를 펼쳤다. 즉 싸우는 늑대외교다. 주위 약소국가에는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따라야 한다.“며, 끊임없는 영토 및 해양주권을 침해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구단선(九段線)이다.
바다는 당연히 당연히 국제해양법에 따라 영해와 경제수역 등으로 나뉜다. 그러나 중국은 인구비례로 바다를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자기 영해라고 주장하는 구단선(도련선)을 보면 그저 어처구니가 없어 입이 딱 벌어질 뿐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을 보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의 코앞 바다까지다. 과장하면 큰 배 하나도 지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 이것이 중국이다. 우리는 중국을 바로 알아야 한다.
시진핑의 황제가 되고 싶은 야욕과 모택동을 숭배하는 마음은 중국 내부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으며, 이것은 곧 중국 미래 경제발전의 발목을 확실하게 잡을 것이다. 또한 외국 투자심리에도 커다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1. 시진핑 황제 집권의 초기 성공 전략
시진핑은 가장 강력한 기존 세력인 강택민의 세력을 없애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철저하게 실행한 정책은 ① 부패척결이었다. 그 방법으로 강택민 옛 부하들의 집을 TV로 전국에 중개하면서 가택수색을 펼쳤다. 집안의 비밀 방과 연못에서 엄청난 달러 다발과 수백 킬로그램의 황금괴가 발견되었을 때 중국 인민들은 너나없이 환호를 저질렀다. 그리고 시진핑은 끝없이 그런 부패척결 행위를 지속하였다. 즉 부패척결 운동은 시진핑 권력 강화의 강력한 수단이 되었고, 역으로 강택민 권력 몰락의 시작이 되었다.
다음은 ② 국뽕정책이다. ”중국은 위대하고, 중국인민도 위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가서 어떤 행위를 해도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엉덩이를 드러내고 대변을 보아도 좋고, 설령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도 그것은 중국인이기 때문에 용납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는 공정(동북공정, 동서공정, 남부공정)을 펼쳐 중국에게 유리하도록 역사를 왜곡시켰다. 앞서 말한 손홍민도 손씨니까 중국인이고, 마카로니, 파스타, 빵도 중국인이 개발한 것이다. 김치도 한복도 중국 것이다. 등등 길게 열거할 수도 없다.
그래서 결국 영국과 독일 불란서의 일부 백화점에서는 “애완동물과 중국인은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국뽕정책의 결과는 참담하였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비호감 또는 매우 싫다.’는 비선호도가 80%에 육박하였다. 서구에서 중국은 옛날부터 매우 신비로운 국가로서 동양 제1의 선호국가였다. 그런 중국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변한 것은 너무 큰 변화이고,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다.
2. 모택동을 닮고 싶은 시진핑이 펼친 경제 실책(失策)
첫째는 IT산업 등 첨단산업에 대한 철퇴다.
중국은 알리바바, 텐센트 등 인터넷 또는 IT를 바탕으로 한 대기업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부와 함께 국민적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민간기업의 필요 이상의 성장과 인기는 두가지 입장에서 공산당은 바람직하지 않게 보았다. 하나는 민간기업의 지나친 성장은 공산당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자랄 것이고, 다음으로 부(富)를 쌓은 세력은 반드시 자유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맞는 관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세계의 관점이지, 공산당 일당독재를 희망하는 중국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성공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바로 국진민퇴(國進民退)다. 즉 국영기업은 더 커져야 하고, 민간기업은 적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공산당 일당독재를 희망하는 중국입장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잘나가던 마윈의 알리바바, 텐센트 그밖의 수많은 IT기업들, YMTC와 같은 민간기업들은 거의 국유화되거나 사라지게 되었다.
두 번째 철퇴는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공산당 간부’를 파견하는 정책이다.
그리고 그 기업들은 주요 정책 결정을 위해서는 파견된 공산당 간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과연 그들이 기업 입장에서 정책을 판단할까? 아니면 파견된 목적에 따라 정치적 입장에서 판단할까? 그리고 의사결정의 속도는 어떠할까? 내가 판단하기에 이 공산당 간부의 존재는 일견 작게 보일지 몰라도 중국기업들의 미래 목을 조이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정책은 다음에 설명할 『반간첩법』과 함께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를 크게 낮출 것이다.
세 번째는『반(反) 간첩법』의 시행이다.
반(反) 간첩법이란 ‘국내 및 외국인사를 불문하고 중국의 ‘안보 및 국가 이익에 위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는 행위를 하면 즉시 체포, 구금하고 벌금을 가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 위해 행위의 구분이 매우 모호하다. 시진핑과 당을 폄하하는 기사를 검색하는 것, 중국의 데모 현장을 촬영하는 것도 포함되고, 더욱 해괴한 것은 중국경제의 통계수치를 조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이제 중국 관련 경제통계는 ‘중국통계국’에서 발표하는 수치를 그대로 인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기업들이 자기 스스로의 경영적 판단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투자를 할 수 있겠는가? 그 결과는 너무 명확하였다. 매켄지 차이나는 2022년부터 컨설팅 업무를 대부분 중단하였으며, 베인 앤 리서치는 압수수색을 당하였다. 그리고 어떤 회사는 민간기업의 수주는 받지 않고, 정부 프로젝트만을 수행한다는 말도 있다.
이런 반간첩법은 명백히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가장 적극적으로 외국 정부에 대한 스파이 행위를 하는 나라다. 미국 워싱턴 DC 중앙에 있는 전신주에 비밀 카메라를 설치한 것이 최근에 발각되기도 하였다, 텍사스 중국대사관은 지나친 스파이 행위로 정식 패관 조치를 당하였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
그 결과 최근 중국 입장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일이 발생하였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올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87% 감소하여 25년 만에 최저치가 되었다. 특히 위험투자를 시행하는 모험투자자금은 거의 90% 이상 감소하였다는 조사 발표가 있었다.
네 번째는『부동산』에 대한 철퇴와 금융시장의 위기다.
이것은 많은 국내 분석가들도 지적하는 사항이다. 그 내용은 단순하다. 부동산값이 너무 폭등하고, 젊은이들이 돈을 저축하여 집을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한 푼도 쓰지 않고 약 30년 연봉 해당액). 중국은 그동안 부동산세가 거의 없었고 특히 부동산 거래세 그리고 부동산에 대한 유산 상속세가 없었다. 더욱이 부동산은 하루가 다르게 십여 배 또는 그 이상 상승하였다. 민간인들의 부동산에 대한 과잉투자는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돈 많은 부자들은 수십채를 보유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 결과 중국 일반인들의 재산 중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70% 정도(60%라는 통계도 있음. 일본 부동산 버블 시 64%)로 치솟았다.
시진핑은 이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부동산은 거주의 개념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세금부과 정책을 폈다. 초창기의 중(重) 과세정책은 공산당 간부들의 반대로 유야무야 되었지만(왜냐면 그들이 부동산 다수 소유자였기 때문), 부동산 회사에 대한 금융제한, 개인 대출 제한, 이자율 상승 등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중국 GDP에서 건설,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 정도이고, 약 1억명이 종사하는 시장이다. 지방정부 수입의 30~50%가 토지 사용권의 판매 수입이다. 중국 정부의 실사(實査)결과로 약 6억채의 부동산이 비어있고, 그중 약 6천7백만 채가 거주용 부동산이다. 너무 많다. 그런데 시진핑의 한마디로 갑자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너무 컸다. 깜짝 놀란 정부는 다시 부동산 시장 완화정책을 폈지만 한번 잃은 신뢰는 다시 회복되기 어렵다. 더욱이 중국 금융기관 대출의 40%는 부동산 대출이고, 부동산 대출은 거액이며 장기대출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는 거의 확실하게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섯 번째는 사(私)교육 산업의 금지다.
중국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한가정 한자녀 정책을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자식이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도시 가정의 소득은 과거에 비할 바가 없이 커졌다. 그리고 일류 대학교의 입학은 좋은 직장을 얻는 것과 거의 일치한다. 더욱이 중국인들의 자식 사랑은 우리보다 더 심하다. 그러면 부모들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우리나라 강남 집값의 상승 요인과 높은 과외비 부담은 중국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사교육 산업의 비중은 GDP 대비 2.48%다. 그리고 종사자 수는 약 1천만명이다. 그런데 여기 1천만명의 인력은 어떤 인력들이겠는가? 바로 중국 최고 엘리트들의 직장이었다.
여섯번째는 청년실업률의 급증이다.
통계는 많은 사실을 쉽게 설명한다. 중국 GDP 내에서 IT는 26%, 부동산은 약 30%, 사교육산업 2.48%(금액으로는 약 130조원)다. 그리고 1차산업의 비중은 7.7%, 2차산업은 37.8%, 3차산업은 54.5%다. 간단히 훑어보아도 ① 중국은 개발도상국가이면서도 3차산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며 ②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IT산업과 부동산 그리고 특히 최고 수준의 젊은이들이 취업하는 사교육시장이 시진핑의 정책에 의해 크게 위축되었다는 것을 금방 읽을 수 있다.
당연히 청년실업률은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 발표로도 올해 상반기 청년실업률은 21.4%다. 그런데 이 21.4%도 도시 청년실업률이다. 농촌에 있는 청년들은 아예 통계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취업자의 자격도 ‘1주일에 1시간 유급 노동’을하면 취업자다. 믿을만한 기관의 비공식 통계를 보면 중국 청년실업률은 현재 46.4%라고 한다.
그래서 북경대학 박사 출신 교통정리원이 있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도교나 불교 사원에 가서 기도를 올리는 것이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예 새로운 종족을 일컫는 단어가 생겼다. 당평족(탕핑족, 躺平族, 누울 당)이다. 즉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단어다.
중국공산당 입장에서 이들은 매우 두려운 잠재적 존재다. 지금까지 젊은이들은 경제의 고속성장과 정부의 국뽕정책으로 의기양양하고 공산당의 열열 지지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국뽕에 사로잡혀 있을 때와 현실은 너무 다르다. 그러면 직장을 못 잡은 이들은 곧 반 공산세력 또는 반 시진핑 세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들을 고용할 수 있는 경제발전은 현 시점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래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바로 신(新) 하방정책(下方政策)이다. 즉 직장을 못 잡은 젊은이들에게 『시골로 내려가 농촌을 배워라.』는 것이다. 바로 모택동의 하방정책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시골도 도시도 모두 못 살았다. 중국의 어디든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리고 모택동은 너무나 강력한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진핑이 그러한 카리스마를 갖춘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너무 다르다. 중국 가정의 한 자녀들은 대부분 왕자이고 공주다. 그들에게 시골로 내려가라는 것은 전혀 가당치 않은 말이다. 여러 의미에서 이들에 대한 처리는 공산당 중국 정부 입장에서 정말 쉽지 않은 미래의 문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곱 번째는 중국경제의 후퇴, 특히 수입과 수출의 격감이다.
중국의 2023년 7월 수출은 13% 감소하였고, 수입은 12% 감소하였다. 그러나 이 수치를 그대로 읽어서는 안된다. 중국은 2022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상당수 시장을 닫은 상태였다. 그리고 2023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소련에 대한 수출이 60% 이상 증가하였다. 그런데도 수출 총량이 13% 감소하였다는 것은 심각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첫째; 독재자의 함정이다.
이것은 역사 이래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사실이다. 독재자가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에는 ‘예쓰 맨’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중국을 지배하는 당은 태자당도 아니고, 북경방도 아니며 공청단은 더더욱 아니다. 『시진핑당』 이다. 지금 경제를 담당하는 리펑 총리가 전형적인 예다. 과거에는 경제학 박사인 리커창 총리가 맡았었다. 그는 후진타오의 총애자로 뛰어난 경력과 함께 중국 최고의 행동력을 갖춘 지성이었다. 차기 공청단 제1의 서기장 후보였다. 여기에 비해 리펑은 전혀 경제관련 배경도 없고, 시진핑의 부하로서 행정관료로서의 경험만 있는 사람이다. 외교의 왕이 부장도 마찬가지다. 시진핑 전랑외교의 최선봉이다. 즉 시진핑은 각 분야 전문가가 아닌 자기에 대한 충성도로 사람을 쓰는 것이다. 이러한 인사는 결국 현실에 대한 독재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밖에 없다.
과거 모택동의 참새 제거령 하나로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의 창궐로 5천만명이 굶어 죽었다. 또한 자체적으로 철강을 생산하라는 명령 하나로 대로변마다 용광로가 생겼고, 집안의 수저와 젓가락, 그리고 농기구까지 엉터리 철강을 만들기 위해 공출되었다. 중국의 독재는 이런 급(級)이다. 코로나가 발생하자 아파트 단지를 봉쇄하고, 아파트 대문을 용접하여 출입을 극한적으로 통제해버리는 것이 중국의 실행력이다.
하여튼 시진핑은 등소평이 독재자 출현을 막기 위해 그렇게 애써 만든 권력순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였다. 그리고 그가 숭배하는 모택동의 방식을 도입하여 개인숭배 체재와 황제국가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이 아닌 시황제 그리고 현재의 권력 집단을 『시진핑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중국의 발전이 중국인들의 자기 실력 때문이라고 오판하였다.
중국은 정말 매우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괄목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인들의 자기 실력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시혜 아래 이루어진 발전이었다. 즉 중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고, 14억 인구에 대한 상품 판매 시장으로서의 가치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다른 나라에는 전혀 제공하지 않았던 엄청난 예외적인 대우를 중국에 해 주었다. ① 중국에 대해 무역에서 최혜국대우를 해 주었고, ② 월스트리트에서 미온적인 심사만을 하고 기업공개(IPO)를 허락하여 엄청난 투자자금을 모집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③ 자격이 안되는 중국을 WTO에 가입시켜줌으로써 전(全) 세계시장에 중국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④ 중저급의 기술을 자본 공급과 함께 아낌없이 중국에 제공하여 중저가의 상품 생산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⑤ 중국이 해킹 등을 통해 고급기술을 훔쳐 가도 적당히 눈을 감아 주었다. 이러한 미국의 시혜 아래 중국은 매우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러한 중국 성장의 근본 이유를 모르고, 중국 자신의 『독자적』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여러 실책을 펼친 것이다.
셋째; 세계공장으로서 중국의 가치가 떨어지고, 다른 나라가 등장하게 되었다.
중국은 과거에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14억의 큰 시장, 젊고 손재주 있는 젊은이들, 낮은 임금 그리고 매우 협조적인 중국 정부의 투자정책 등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최근 완전히 뒤집히게 되었다. 중국의 임금 단가는 이제 절대 낮지 않다. 우리나라의 70% 수준이다. 거기에 이런저런 추가 비용을 합하면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다. 과거의 중국 젊은이들은 부지런하였다. 그러나 배가 부른 그들은 모두가 이제 왕자와 공주다. 과거처럼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요구사항은 많다. 어떤 때는 상식 밖의 요구까지 한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노조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조장까지 하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 정부의 내외국 기업 간의 차별대우다. 그것도 너무 심하다. 해외 기업과 경쟁하는 내국기업에 대해서는 엄청난 자금지원을 해주고, 생산된 상품에 대해서도 중국기업 상품에 대해서는 차별화된 세금정책을 펼쳤다. 중국 전기차에 대해서는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하나, 현대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그 외 기업경영과 세제 등에서도 보이지 않은 심한 차별을 하였다. 그리고 기업을 정리할 때도 해외기업에 대해서는 ① 폐업을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② 거의 빈손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이런 중국 정부의 행동은 외국기업들이 중국 투자에 대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이제 중국은 상품『판매처』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투자처』로서의 가치는 이미 상당 정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을 대신해 줄 나라가 많이 생겨났다.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다. 그들의 임금은 선진국의 20% 정도이고, 외국기업들의 투자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이다. 기술을 도둑질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해외 생산기지로서 매우 좋은 투자처다.
여기서 한가지 추천을 하고 싶은 나라가 있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얀마’에 대한 투자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적극적으로 미얀마를 우리 기업의 투자처로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얀마는 자원이 풍부하고, 젊은 인구가 많으며, 사람들이 영리하고 부지런하다. 그러면서 베트남과는 달리 사람들도 매우 순박하다. 나는 그들의 이런 순박성을 매우 중시하고 싶다.
이번 팬데믹에서 베트남 정부의 몰염치와 박항서 감독 등에 대한 그들의 희한한 행동들을 우리는 보았다. 자기 나라 수출의 25%를 담당해주는 나라에 대한 몰염치한 행동들도 보았다. 그들의 최근 행동은 과거 나관중의 삼국지를 떠오르게 한다. 제갈량이 “이 땅 사람들은 거세고, 순종적이지 않기 때문에 무력으로 점령해서는 안 된다.”라며 남만의 수장인 ‘맹획’을 일곱번 잡아 일곱번 놓아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땅이 바로 베트남이다. 그들은 불란서를 이겼고, 미군을 몰아낸 나라다. 물론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지만 외국 투자기업으로서는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부적절한 행동은 오늘 내일의 일만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기억에 담아두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미얀마는 SOC 인프라가 부족하지만 해안지역에 투자하면 큰 문제가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정권의 불안도 큰 문제지만 오히려 그런 정권이 외국 투자처로서는 유리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가까운 장래에 투자처로서 숙고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시진핑의 경제와 관련된 실책을 열거하였다. 그러나 더 큰 실책은 외교 및 정치 분야에서 생겨났다.
위에서 열거한 내용 이외에 중국의 오판은 ① 미국의 달러패권에 도전하였으며, ② 미국과 세계를 2분하여 다스리자는(?) 정치적 패권을 주장하였고, ③ 군사적으로도 주변 모든 국가와 영토분쟁을 일으켰으며, ④ 각종 공정을 벌여 국토뿐만 아니라 문화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뻔뻔한 행동을 하였다.
여기서는 달러패권과 세계2분론만 간단히 설명하겠다.
1. 달러패권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쉽게 설명하겠다. 기업들이 상품을 수출하여 얻는 수익은 보통 10% 미만이다. 반도체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5% 미만인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러나 100달러 지폐 발행 비용은 약 3~4달러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의 가치는 100달러다. 이윤만으로 계산하여 원가를 4달러라고 하면 스물다섯 배 장사다. 10%가 아니라 2,500% 수익률이다. 이것이 바로 달러패권을 가진 기초통화국이 갖는 특권이다. 미국이 그렇게 무역적자가 크고, 많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1의 강국 위치를 지키는 데는 달러패권이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
즉 우리는 밤잠 안자고 열심히 일하여 달러를 벌었다고 기뻐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3,4불을 들여 종이에 벤자민 프랭클린의 얼굴을 인쇄해주고 100달러라는 거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달러패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해당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위치를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희생을 치르고 있다. 자유세계의 큰 형님으로 다른 나라의 전쟁에 참여하여 자국 젊은이들의 목숨도 희생시키고, 다른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솔선하여 돈도 제공해주고 구호천사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기초통화국이 되기위해서는 ① GDP가 큰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요인이 있다. 그것은 ② 그 나라에 대한 도덕적인 신뢰, ③ 그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 ④ 그 나라 화폐가치가 안정되어 있고, 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받아들여진다는 신뢰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태어나는 것이 바로 기초통화국의 위치다.
그러면 중국이 이런 다섯가지 신뢰를 쌓았는가? 싸우는 늑대외교(전랑외교)로 끊임없이 주변 국가들과 분쟁을 일으켰고, 소국은 대국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비외교적인 수사를 입에 달고 있었으며, 군사적으로도 티베트, 서장 등을 침탈하였고, 우리나라와도 동북공정을 통해 북한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손홍민은 손씨니까 중국인이고, 김치와 한복, 스파게티, 빵도 모두 중국 고유음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기 5가지 조건 중에서 첫 번째 G2라는 조건 이외에는 만족시키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기피 또는 혐오의 대상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나라가 어떻게 다른 나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2. 그러면 중국의 G2 위치도 장래에 지킬 수 있을까?
매우 의심스럽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중국의 미래는 절대 탄탄하지 않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중국의 부채비율은 300%를 훨씬 넘고(500%라는 주장도 있음. 공식적으로는 약 260%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준비하고 있으며, 중국의 수출입은 코로나 팬데믹 시절보다 오히려 줄고 있다. 해외 직접투자(FDI)는 80~90% 감소하고 있다. 이런 나라의 화폐가 어떻게 기축통화가 될 수 있겠는가? G2라는 크기 때문에 각국들이 보유하는 해외통화 바스켓에서 위안화의 비중이 조금 커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기축통화의 꿈은 도저히 옆에도 갈 수 없다.
3. 최근 중국은 세계를 2분하여 다스리자는 주장을 하였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하늘에 태양은 두 개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다. 특히나 이런 발언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그간 미국이 주창하던 중국 포위전략에 상당수의 서구 국가가 비교적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세계 대다수의 자유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포위전략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유가 자유주의 세계에 대한 정면 도전 세력이 바로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공통적인 인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번 2023년 8월 미국과 우리나라, 일본이 새로운 안보동맹을 맺고 공동 방위전략을 구축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건드리지 않아야 할 용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과거를 살펴보면 미래 중국 모습은 쉽게 짐작이 된다. 하나하나를 다시 짧게 요약해 보자.
1. 중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력한 공산주의 독재국가가 되었다.
2. 더욱이 자기 나라 발전을 적극 지원해준 미국에게 세계를 2분하자는 패권을 주장하여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3. 더욱이 미국 경제의 핵심인 달러패권에 도전하였다.
4. 그리고 끊임없이 주변 국가와 분쟁을 일으키며,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5. 더욱이 최근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과거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맹주 위치를 꿈꾸고 있다.
6. 그리고 끊임없이 일대일로 등을 통해 약소국에 대한 침탈행위를 자행하고, 외국의 선거에 비밀스럽게 참여하여 그 나라의 주권에 대한 침해행위를 하고 있다.
7.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여 자신의 발전이『자신의 능력』이라는 착각에 빠져 곧 통제불능의 국가가될 가능성이 높다.
8. 그리고 중국을 대신하여, 중국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다양한 국가가 출현하였다.
자, 그러면 여러분이 미국 대통령이라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하겠는가?
그 결론은 너무 간단하고 명료하다. 러시아와 같이 고사작전(枯死作戰)을 펼치는 것이다. 전쟁을 한다는 것은 미국에게 너무 피해가 크다. 그러나 말려 죽이는 것은 눈에 띄는 피해도 없고, 미국의 지난 3, 40년간의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14억 판매시장으로서의 가치도 유지시킬 수 있다.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꿀 빠는 일인가? 더욱이 지금까지 약간 팔장을 끼고 있던 유럽도(AUKUS, QUAD), 그리고 한국과 일본도 중국 포위작전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푸틴은 의도치 않게 미국 정부에 정말 너무 큰 선물을 준 것이다.
고사작전(枯死作戰)의 실행은 어려울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한 것을 거꾸로 하면 된다.
1. 우선 중국의 돈줄을 조이기 위해 미국의 수입 관세를 15~45% 까지 올려 중국상품의 가격경쟁력을 없애는 것이다.
2. 그리고 미국과 기타 국가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스스로 외국기업들에 대해서는 차별적 대우를 하였고, 반간첩법을 시행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투자 의지를 깎아 버렸다.
3. 세계를 중국과 디커플링시켜 중국의 수출 길을 막아 버리는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은 WTO에 가입되어 있겠지만 그 효과는 과거와 전혀 다를 것이다.
4. 고급기술의 대(對) 중국 수출을 금하고, 특히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터 관련 기술은 수출 자체를 금해 버렸다. 즉 고급상품을 만들 기회를 없애버린 것이다.
5. 반도체 생산을 어렵게 하기 위해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수출을 금하고, 특히 네덜란드의 ASML에게는 7나노 이하 제조장비의 수출을 금했으며, 최근에는 25나노 장비 수출도 금해 버렸다. 중국의 양쯔메모리가 17나노 반도체 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제조장치는 대부분 미국, 우리나라, 일본의 장비들이다.
6.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미국과 서구의 투자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 결과 2023년 상반기 외국인 직접투자는 80~90% 급감하였다.
중국의 버블이 꺼진다, 꺼진다 하면서도 지난 20년 간 버틴 이유는 끊임없는 외국자본의 유입과 수출이었다. 그러나 2023년 2분기 중국의 수출은 14% 줄었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80~90% 급감하였다.
7. 1997년 우리나라에 대해서 실행한 것처럼 미국이 달러채권에 대해 채권연장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미국 국채보다 중국의 달러채권이 훨씬 더 크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힘이고, 미국이 세계를 조율하는 다양한 파우어인 것이다. 나도 국뽕을 좋아한다. 그러나 알고 국뽕을 부르짖어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 국뽕을 주장해야 하는지를 슬기롭게 판단하여야 한다.
시진핑의 중국이 엇나가는 이런 정책들을 폈을 때 이처럼 참담한 결과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매우 급격한 수정전략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① 내외국 기업에 대한 동일 대우 ② 외국인 투자의 보장 등이다. 그러나 한번 잃은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은 신뢰를 번복하는 행위를 과거에도 여러번 저질렀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신뢰 상실은 ①과 ② 이외에도 너무나 많다. 본인의 판단으로는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 전략의 화살은 이미 한참 전에 시위를 떠났다고 생각한다.
세상일은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거의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논리 전개를 이해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의문을 갖는 『시진핑의 실각 가능성』과 『중국의 대만침공설』에 대해 분석해 보겠다.
1. 『시진핑의 실각 가능성』이 있을까?
이것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공산독재 국가를 판단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시각으로 그들을 보지 말고, 그들의 시각으로 그들을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택동을 보자. 그는 문화대혁명의 기간을 통해 공식적으로도 7천만명을 죽였다. 참새박멸운동을 통해서도 추정 5천만명을 굶겨 죽였다. 1억2천만명을 넘는 자기 국민을 전쟁시가 아닌 평상시에 죽였다. 그래도 그는 중국 최대의 영웅이고, 천안문 광장에는 아직도 그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고난의 행군’ 기간에 5백만명이 굶어 죽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초상화는 수없이 걸려있고, 아직도 그의 재일이 되면 울먹이는 북한 인민들이 많다고 한다.
일반 자유주의 국가의 시선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 나라에는 네 나라가 있다고 본다. 바로 중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과 소련(러시아)이다. 그 이유는 더 설명하지 않겠다.
시진핑의 실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중국의 역사다. 중국 5천년의 역사에서 인민들이 자유라는 것을 느끼며 살아 본 적이 없다. 등소평 이후 반짝 40년 동안의 지금이 그래도 중국인들이 숨이라도 쉬어 본 기간이다. 지금 시진핑 독재체제는 중국인들의 역사적 경험에서는 늘상 있었던 일일 뿐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들 특유의 엄청난 인내력을 발휘하면 된다.
둘째는 현 공산당 체제에서 자유는 없지만 그래도 중국 대부분의 국민들이 의식주를 해결한 거의 유일무이한 기간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의 공산당에 대한 복종의식은 아직도 건재하다. 일부 젊은 세대에서는 혹시 반대세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반대의 불길이 들불이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이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현대 세계가 제공하는 하이테크놀로지다. 세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에 있는 7억대의 감시카메라다. 14억의 인민에 7억대의 카메라라면 인구 두 명당 한 대다. 그리고 상당수는 안면인식 카메라까지 부착되어 있다. 즉 누가 어디에서 누구를 얼마 동안 만나고 있는지를 당국은 언제든지 파악할 수 있다.
다음은 강제적 신용카드의 사용이다.
중국에서는 거지들도 신용카드로 적선을 받으며, 외국인들도 일주일 이상 중국에 머물려면 카드를 발급받는 것이 편한 체제라고 한다.
옛날 미국 CIA가 모의실험을 한적이 있었다. “만약 소련이 미국에서 단 하나의 정보를 빼낼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정보일까?” 그 답은 미국인들의 신용카드 사용정보였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만약 현금을 사용한다면 누가 사용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① 그 사용자의 계좌정보와 ② 언제 ③ 어디서 ④ 무엇을 ⑤ 얼마만큼 샀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를 정부가 가지고 있다면 감시 대상자의 행동은 너무나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스마트폰의 전화 내용 도청과 위치추적 기능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의 반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의 『애플』이다. 십여년 전 미국 정부가 애플사에 고객정보를 요구하였다. 그때 애플은 단호하게 고객정보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정부에게도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애플이 시장을 넓히는데 매우 큰 마케팅 성공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애플이 중국에서는 모든 고객정보를 중국 정부에 제공하였다. 이것은 애플도 시인한 사실이다.
자 그러면 이 네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자.
정부는 원하기만 하면 여러분이 어디에 있고, 누구를 만나고 있으며, 여러분의 은행잔고와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언제든지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여러분의 스마트폰 전화 내용도 모두 듣고 있다. 그러면 여러분이 정부에 대해 더 숨길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 있겠는가? 게다가 립씽크 프로그램까지 연동하면 여러분이 일반 모임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감시환경에서 정권에 반하는 비밀모의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역대 중국 황실의 변화는 대부분 국민들의 불만을 이용하는 권력 내부자의 반란행위였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첨단기술을 사용하면 반란의 음모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혹시 텔레파시가 있다면 모르겠다.
나는 이런 이유에서 시진핑의 권좌는 튼튼히 유지 되리라고 본다.
사실 이것은 초미의 관심사다. 그리고 많은 분석가들이 또 미국의 전략연구소(IFS)까지도 그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매우 조심스러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고 본다.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전쟁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중국경제의 하락, 높은 실업률, 정부 내 잠재적 반대 세력의 존재 그리고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자 하는 독재자의 성향 등이다. 맞는 말이다. 이런 주장이 틀린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대(大)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곧 성공의 가능성이다.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푸틴처럼 시진핑은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승리할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그것은 오히려 자기 세력의 급격한 몰락을 뜻하게 된다. 그 사례가 바로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러시아는 빠르면 3, 4일 늦어도 일주일 정도면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1년 8개월째 지속 중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소한 1년 이상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만약 러시아가 패한다면 전쟁 보상 문제는 10조 달러 이상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러시아가 이런 배상 능력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입장 자체가 매우 다르다. 우선 러시아는 에너지와 식량은 자급자족을 넘어 수출까지 하는 나라다. 그러나 중국은 에너지의 60% 그리고 식량의 40%를 수입하는 나라다. 전쟁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역량 자체가 없는 나라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는 NATO 회원국이 아니다. 러시아가 침략하여도 핵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NATO 군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서방국가들은 무기는 우크라이나에 공급하지만, 직접적인 군사개입은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비해 일본과 우리나라, 미국은 상호 방위 조약을 맺고 있다. 대만과는 느슨하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또한 미국의 제7함대는 이미 서태평양에 파견되어 있으며, 오키나와와 군산, 필리핀, 싱가포르에 엄청난 군사력이 이미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은 명확하게 한국과 일본의 해양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대만 분쟁에 개입하겠다고 이미 발언하였다.
그리고 중국의 무기로 미국과 전쟁하여 이길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소련제 무기의 허접함을 이미 수없이 보았다. 크렘린궁 위에서 드론이 발견되었고, 2, 3km 떨어진 러시아군 최고 군 수뇌부가 사는 아파트에 드론 공격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전략 비행기가 있는 군사기지는 미사일의 공격을 받아 대파되었다. 소련의 방공시스템은 이 정도의 실력이다.
중국은 소련제 무기를 수입하여 역카피(리버스 엔지니어랑)한 것이다. 80% 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전쟁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만은 고슴도치 전략의 하나로 만약 중국이 침공하면 북경과 상해는 물론, 삼협댐(산샤댐)을 공격하여 중국의 40%를 물바다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또한 그런 미사일도 자체 개발하였다.
시진핑의 입장에서 대만침공은 정말 꿀떡이다. 그러나 먹기 힘든 꿀떡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나라면 끊임없는 공포탄을 쏘겠다. 곧 침공할둣이 무력시위도 벌리겠다. 그리고 때로는 빈도수도 올리고 또 때로는 조금 깊숙이 들어가기도 하겠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본격적인 충돌이 일어나게는 하지는 않겠다. 나는 이런 이유에서 중국의 대만침공은 반복적인 위협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참모장이 그리고 전쟁연구소 등이 대만침공이 임박했다는 주장은 그들 입장에서는 자기 존재를 위해서도 주장해야 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논제다. 또한 결론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중국도 자기의 실수를 잘 알고 있고, 그 타개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① 그간에 저지른 실수가 너무 많고, 중국 달러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② 수출이 부진하고, 무엇보다 ③외국인들의 직접투자(FDI)가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국경제를 굳건하게 받들어 주던 두 개의 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인(人)의 장막’에 싸여 있는 시진핑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중국 정부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간의 자신들의 행적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을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얼마 전 매우 신기한 단어를 사용하였다. 내수 진작 사회(內需振作社會)라는 용어다. 의미는 단어 그대로다. 중국의 외부 국가들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중국 내부 발전과 중국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여 독립된 중국 경제체제를 자체적으로 갖추자는 주장이다. 마치 북한과 비슷한 주장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독립된 경제체제라니 조금은 당황스럽다.
그런데 사실 이런 체재는 중국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다. 영국의 상인들이 무역을 요구하자. 중국의 건륭황제는 “중국은 물산이 풍부하여 외이(外夷)들의 물건이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1793년 청(靑)나라 시절이다. 21세기가 아니다.
그러면 이런 이상한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다른 하나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독재자의 특성이다. 독재자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집권유지가 최우선이다. 백성들의 안녕은 그다음, 다음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정도가 중국에서는 특히 더 심하다. 그러면 ①내수진작사회와 ② 시진핑 권력 유지는 어떻게 병존할 수 있을까?
나는 3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다. 미래 중국은 “등소평 이전의 폐쇄사회 즉 『죽의 장막(竹의 帳幕, Bamboo Curtain)』 시대와 유사한 체재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설명한 내용 일부를 설명하였었다. 물론 나의 추론이 틀릴 수는 있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정세를 살펴보면 나의 판단은 더욱 옳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경제의 퇴조는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왜 우리 주위에는 걱정하는 것이 직업이고, 착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들의 주장은 “중국은 우리 최대의 무역국이고, 우리나라 최대의 무역흑자국인데 중국이 어려워지면 우리나라 경제도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올바른 주장이다. 2022년 통계를 보면 중국은 아직도 우리나라 제1의 교역국이다. 그러나 무역수지는 겨우 1.9억 달러 흑자다. 미국의 1/8, 베트남의 1/16에 불과하다. 중국의 혐한령과 불공정 거래는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렇게만 분석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단지 중국과의 무역만을 고려하면 중국경제의 퇴조는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과의 무역량은 감소해도 흑자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으로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중간재와 최종재를 수입해야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국 이외 국가에서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경쟁 관계다.
이것은 과거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과거 5, 60년 전 일본과 우리나라는 비교대상 조차 어려운 현격한 격차가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통해 대부분의 일본 주도산업을 가져와 버렸다. 반도체, 가전제품, 철강, 조선, 자동차 등 과거라면 상상도 못 할 산업을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왔다. 내가 일본이라면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을 정말 후회할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수출로 차지하고 있는 산업과 분야는 우리가 없었다면 당연히 일본이 차지했었을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국과 우리나라는 관계는 바로 이런 과거의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면 우리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시장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국은 고맙게도 실책을 거듭하여 죽의 장막 국가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의 시장뿐만 아니라, 기존 중국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까지 차지할 수 있다. 나는 중국의 퇴조로 생기는 부(否)의 효과보다는, 중국의 퇴조로 다른 세계시장에서 생기는 양(陽)의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본다.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의 의미는 세계시장을 자유주의 국가와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등의 공산권 국가로 2분하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세계의 GDP 총합이 큰가? 아니면 공산권 세계의 GDP 총합이 더 큰가?를 비교하면 답은 바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세계가 디커플링 되어도, 우리나라 상품은 두 세계 모두에게 수출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설령 중국이 죽의 장막화가 되어도 우리 경제는 더 많은 기회를 차지하게 된다는 내 생각의 근저다.
우리가 지금 경계를 한다면 인도와 베트남의 부상을 경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밝히기 곤란한 이유로 최근 신흥국들의 부상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긴 분석을 하였다. 어찌보면 나의 중국에 대한 의견의 종합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