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와 미래 부 창출 요인은 크게 변한다.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누가 우리에게 “서양처럼 되는 것이 곧 발전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유행의 첨단을 따라야 하는 연예인, 매일매일 사람들이 관심을 끌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하는 언론사 그리고 첨단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직업상의 이유에서도 ‘서양이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는 큰 관심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과 그들이 하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따라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점들이 많이 있다. 몇 개만 열거해도 ‘경제의 양극화, 저출산, 더욱 양분되어 가는 정쟁, 문화의 세속화, 학생폭력 문제, 흔들리는 교권 문제’ 등등이다. 제목만 열거해도 한 페이지가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구체적 사실을 지적하기보다, ‘왜 이런 못마땅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게 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많은 원인 중에 두가지 것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종합적인 지식의 부족과 다음으로는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과 그들을 부추겨 대는 일부 언론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십여년쯤 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의 교내폭력문제(이지메)와 자살이 그리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前)’의 일이었다. 어느 신문에서 갑자기 “일본에서 학교 폭력(이지메)가 큰 문제이며, 또한 높은 학생 자살률이 문제다.”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아니 왜 이런 기사가 나왔지?’ 뜬금없는 그런 기사에 나는 의아해하였다. 그러나 내가 놀란 것은 자살률이 높다고 걱정하는(정확히는 그런 척하는) 기사의 말미에 친절하게도 ‘자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이트’까지 소개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시한 신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3대 신문사 중 하나의 얘기다.
그 뒤부터 교내폭력과 자살 문제가 끊임없이 매스컴에 등장하였고, 구체적 발생 통계를 그 기사 전후로 비교해 보진 못했지만 기사 수로만 볼 때는 급증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매스컴의 일부 행동은 사회적 문제를 교정한 것이 아니라, 큰 문제가 아닌 문제를 또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겠다. 『저축장려』와 『독서장려』 운동에 관한 얘기다. 어느 날 방송에서 어떤 논객이 나와 “무슨 촌스럽게 국가가 나서서 저축장려 운동과 독서운동을 전개하느냐? 서양 어느 나라에도 그런 말을 하는 국가를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과거의 작태다.”라는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오비이락, 烏飛梨落) 그 이후 『독서장려운동』과 『저축장려운동』 은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소비가 미덕이다.’는 해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서양이 그렇게 난잡하고 섹스가 남발하고 규칙이 무너지는 사회일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내가 여기서 구체적인 예를 들겠다. 내가 공부한 위스콘신대학 얘기다. 위스콘신은 미국에서 독일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맥주 공장이 많고, 치즈 같은 낙농업이 발전한 주(州)이다. 미국 대학에서도 1년에 두 번 봄, 가을 축제가 있다. 그날은 정말 학생들이 노래부르고, 취하고 신나게 노는 날이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들의 즐거운 축제가 아니었다. 술과 관련한 놀라운 장면이었다. 일단 야외 술을 먹는 장소는 아무 데서나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임시 담장 안으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담장 출입구 앞에서 경찰들이 학생증을 플래시로 비춰보면서 18세 이상인가, 아닌가를 일일이 체크하는 모습이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3, 4년 후 위스콘신주는 음주 가능한 나이를 18세에서 19세로 올렸다는 사실이다. 위스콘신주 세금 중 상당량이 맥주 공장으로부터 나오는데도 말이다. 버드바이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명 맥주사는 위스콘신주에 있다. 이런 주에서 경찰이 축제기간 중에 대학생의 나이를 하나하나 조사하는 행위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8세 이하 학생들이 술을 안 마신다는 것은 아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은 술을 사서 기숙사 방에서 고성방가를 하며 논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큰 소리로 노래 불러도 벌책은 없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바로 마약이다. 언젠가 미국에서 “중독성이 심한 헤로인, 펜타닌 등은 금할지라도, 중독성이 약한 대마초는 허락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그리고 일부 주(캘리포니아주)에서는 대마초 회사 설립을 한때 허락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우리나라 매스컴에서는 우후죽순처럼 대마초의 좋은 약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와 상당한 방송 시간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 참고삼아 말하지만 ‘정제한 양질의 대마초를 판매하여 저질 대마초로부터 오는 피해를 줄이겠다.’라고 했던 회사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과거와 같이 마약금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나는 외국이 특히 미국이 매우 문란한 나라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있다. 나의 유학 시절 어느 친절한 아주머니가 걱정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북한과 6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공산국가인 중국과도 그렇게 가까운데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에 사는 것이 불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이었다. 전쟁위험을 알리는 매스컴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아마 당연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2023년에 사는 나도 그런 동일한 실수를 저질렀다. 얼마 전에 만난 어느 지인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아니 이런 위험한 때에 러시아를 더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단 말입니까? 위험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의 대답은 내가 과거 아주머니에게 한 대답과 똑같았다. “아닌데요.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생활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전쟁 공포 속에서 사는 것은 전혀 아니던데요.”
우리 인간은 ‘문자로 기록된 정보나, 매스컴에 발표된 기사’에 대해서는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그것이 너무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매스컴의 기삿거리』가 되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오늘 아침에 무엇을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세수했습니다.”라고 답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것은 하등의 대답 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어느 정도 특이해야만 매스컴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중요한 판단을 하기 전에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미국이 그처럼 마약이 난무하고, 총기사고 등이 많은 나라라면 미국은 절대로 세계 최고의 강국도 아닐 것이고,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최첨단의 나라도 아닐 것이다. 일부 마약하는 사람도 있고, 길거리 노숙자도 많으며, 퇴폐적인 사람도 많다. 그러나 미국 전체가 그런 나라는 아니다. 그런 면(面)도 있는 나라다. 일부를 보고 그것이『전체』라는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매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잘못된 일부 사람들이 보여준 가시적 잘못에 의해 사회가 겪는 홍역은 매우 클 수 있다. 사회현상을 가르키는 말 중에는 『코브라 효과, Cobra Effect)』라는 말이 있다. 단어에서 벌써 인도에서 생긴 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이 인도를 처음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큰 문제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너무 많은 인도 농민이 코브라에 물려 죽는 것이었다. 그래서 캠페인을 벌였다. ‘코브라의 한 마리를 잡는데 얼마의 상금을 주겠다.’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 당연히 코브라의 수는 줄었고, 물려 죽는 인도 농민의 숫자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코브라를 잡는데 드는 상금은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영국정부는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상금을 노린 코브라 농장을 다수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영국 정부는 코브라 포상 정책을 중지하였다. 그러자 돈벌이가 사라진 코브라 농장주들은 코브라를 야생에 풀어주었다. 그러자 코브라의 숫자는 정책을 펴기 전보다 더 많이 늘어났다. 오히려 정책을 펴지 않은 것보다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나친 ‘산아 제한 정책‘, 중국의 ’한자녀 갖기 운동‘, 거의 매년마다 바뀌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개선』정책‘이 바로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매년 문제점 해결을 위해 입시정책을 바꾸어도, 매년 문제가 발생한다면 오히려 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저축장려』운동과 『독서장려』 운동을 멈춘대서 오는 효과를 분석해 보자.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의 변화 추세가 가장 극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견실한 가계저축을 자랑하는 국가였다. 1960년대 누구나 못살았던 시절을 제외하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서 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 우리나라 저축률은 평균 10%대 또는 그 이상을 유지하였다. 대만, 독일과 함께 매우 건강한 저축률을 유지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15, 6여 년 전 『소비가 미덕』이라는 해괴한 말이 번지면서, 우리나라 저축률은 상당 기간 3% 이하로까지 떨어져 OECD 최하위가 되었다. 그리고 카드 사태가 발생한 2002년도에는 0.1%까지 떨어지는 전대미문 최악의 상황을 겪었었다. 유럽의 모범국가인 독일은 10%대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동양의 모범국가인 대만도 15% 대의 저축률을 과거나 지금이나 거의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저축률도 큰 변화 없이 5~6%대로 거의 일정하다. 『단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 저축률이 미국보다 별로 낮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또다시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은 『국립 개(皆) 보험 제도』가 완비된 나라다. 즉 자기 소득에 맞게 꼬박꼬박 세금을 낸 사람은 자기 마지막
소득의 최고 70%까지를 받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보험이 그러한가? 몇십만 원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고, 백만 원을 넘기기도 어렵다. 그것도 다른 연금의 수령액이 있을 때는 감액이 되거나 아예 신청 자체도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연금제도는 영 그러지 못하다. 그런데 그런 연금도 재원이 걱정된다고 한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우리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가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저축률은 미국보다 더 낮다. 정말 국가 경제 입장에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잘못된 선전 문구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지대한 것이다. 2002년, 2003년 카드대란 사태 시‘젊은이들의 대량 신용불량사태’가 또 다른 예이다.
당시 젊은 일부 사람들은 무작위로 발급한 카드를 소득을 훨씬 초과하여 사용하였고, 그 때문에 카드 빚에 쫓기는 청년들이 다수 발생하였다. 그리고 외환위기로 소득이 줄어든 일부 서민층도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조달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다른 카드 대출로 기존 카드 빚을 갚는 ‘돌려막기’도 유행하였다. 그 결과 2003년에는 신용카드 불량자가 전체 신용불량자의 60%를 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외환위기로 생계가 어려운 분들의 카드 불량은 그래도 이해된다. 그러나 20대, 30대 젊은이들의 과다 카드사용에 의한 신용불량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정당한 소비가 아니라 과소비, 과시소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젊은이들의 잘못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를 조장한 일부 기업, 그리고 소비가 미덕이라고 주장했던 『정말로 무책임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멋있는 새로운 주장이라고 등장시켰던 일부 언론들 그리고 사태가 심각해질 때까지 그대로 방치한 정부의 잘못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캠페인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져온 폐해를 고치기가 불가능하거나, 고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당 도서구입량은 2022년 0.97권으로 처음으로 년 1권 이하로 떨어졌다는 발표를 본 것 같다. 여기에 비해 미국의 평균 도서구입량은 e-Book까지를 포함하여 2022년 2.95 권이다. 단순 비교하여도 우리는 미국인 보다 1/3밖에 책을 사지 않는다는 얘기다. 옛날에는 지금 같은 가을철이 되면 『등화가친(燈火可親), 주경야독(晝耕夜讀) 그리고 부엉이가 책을 읽는 그림』 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글과 캠페인을 본 기억이 아스라하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물어서 또는 듣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묻고 들어서 알려면 상대방과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대화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더욱이 우리가 만나 대화하는 사람이 그 분야 최고의 사람이라는 보장은 더욱 없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만날 수 없거나, 다른 나라에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시대가 다른 과거의 분이라면 더더욱 만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시간적, 공간적 벽을 뛰어넘어 최고의 사람, 누구와라도 대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바로 책이다. 그래서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US Book Reading Statistics (National Survey 2022)를 보면 세계 도서시장 크기 순이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인도 순이다. 어떻게 세계 도서시장 크기와 GDP 순위가 그렇게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참고로 2022년 GDP 순위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인도, 영국 순위다. 영국은 2019년 이후 인도에게 5위 순위를 내준 후 아직까지 회복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책 시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GDP는 세계 10위다. 10위권이 아니다. 그런데 년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출판시장 크기도 세계10위다.
거기에는 몇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첫째; 『경제발전의 단계』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30여년 동안 정말 눈부신 경제발전을 하였다. 흔히 하는 말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전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이런 급격한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지식을 통한 부의 축적’보다는 ‘타고 난 감각(感覺)에 의한 부의 축적’이 훨씬 더 잘 먹힌다. 그래서 ①지식의 축적보다는 ②타고 난 부에 대한 감각과 ③부지런함, 그리고 ④좋은 운이 겹쳤을 때 큰 부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부(富) 축적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발전 단계의 영향 하나로도 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개인들 부의 상당부분은 근로와 지식에 의한 부라기 보다는 ‘부동산 가치 상승을 통한 부의 축적’부분이 훨씬 더 컷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대도시인가, 지방인가? 특별 개발조치가 있는 곳에 내 땅이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따라 개인의 부에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개인의 근로와 지식활동에 의한 부의 창출보다는, 나 밖의 요인 즉 외부요인에 의한 부의 창출량이 훨씬 더 컷다는 것이다.
미래 세계는 이분화 되고 과거보다는 훨씬 더 불안하면서도 안정적인 이원적 세계가 될 것이다.
첫째는 세계화의 퇴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잘못된 세계 지배야욕은 미래에 전 세계를 자유세계와 독제체재 세계로 확연하게 둘로 나눌 것이다. 1997년 WTO 체제 이후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는 전 세계를 『하나』의 자유무역체재로 만듦으로써 전 세계 경제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의 이분화는 이런 체재를 붕괴시키고 자유진영과 독제진영으로 경제를 2분화하고, 양 체재 모두에게 『경제 왜소화 현상(Dwarf Economy)』을 가져 올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시진핑과 푸틴체재가 유지되는 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지난 몇십년 동안 전 세계는 인류역사 상 없는 풍요로움을 누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세상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올라간 것은 다시 내려간다.’는 자연법칙에는 예외가 없는가 보다 .
둘째는 혼돈과 안정화 이중화 현상의 발생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전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혼돈이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극히 최근에는 이스라엘-중동간의 긴장 강화로 더욱 혼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잘못하면 거의 세계전(世界戰)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정치 사회적 혼돈의 증가와는 달리 기술 분야에서의 발전은 IT혁명 이후 거의 답보 상태에 있다. 즉 신기술의 발전을 통한 새로운 부 창출의 기회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인공지능(AI)과 같은 높은 하이테크놀로지는 분명히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이지만 과거의 기술발전과는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다.
그런 기술을 창출할 수 있는 ① 대(大)자본과 개발 능력을 가진 기업 ② 그런 기술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개인, 또는 ③최소한 그런 기술을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개인에게는 대단히 큰 부 생산의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소외되거나 오히려 대체될 가능성이 더 높다.
과거의 산업혁명이나 컴퓨터의 발전은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킴을써 사회 전체의 부도 증가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부 창출의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즈음 개발되는 신기술들은 오히려 많은 단순작업과 때로는 고도의 기술영역에 까지 『사람을 대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 있다.
지금까지 설명을 참고하면 미래에는 감각적인 본능과 부동산 등을 통한 전통적인 부 축적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방식이 아닌 ①새로운 방법에 의한 사업, ②새로운 상품의 제공 그리고 ③ 새로운 기술의 사용을 통한 나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야 만이 나의 부를 창출하고 유지시킬 수 있게 된다.
즉 과거와 같은 선천적 감각과 부지런함이 아니라 상당 정도의 지식이 포함된 능력이 있어야 만이 부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식에게 넘겨진 부모의 부도 지켜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지식의 축적이 부 창출의 중요 원천이 되는 시기에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부의 양극화 현상』이다. 즉 기술력을 갖춘 기업과 사람 그리고 그런 지식을 갖추지 못한 기업과 사람과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절대로, 절대로 정부가 잘못하여 또는 대통령이 잘못하여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동시에 안정화 될 때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경제현상일 뿐이다.
그러면 어떻해야 하는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보다 3배의 책을 사고 읽는 미국에서도 27%의 사람들이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떻할까? 이에 관한 통계는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 더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책을 더 많이 본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내 자식을 위해서도 우리는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정부는 독서운동과 책 읽기 운동을 다시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세계 각국 책시장의 크기와 그 나라의 GDP 크기는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그리고 미래는 혼돈이 증가하면서도 안정적이며, 고도의 지식과 기술이 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된다. 이런 때일수록 지식의 양과 부 축적의 양은 비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