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초에게서 배우는 인생철학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내가 농막 생활을 한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다. 처음 2년이야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농막 생활을 거의 하지 못하였고, 아마 5년쯤 전부터 시작한 듯하다. 그러나 5년도 짧은 세월은 아니었는지 이제는 제법 여유로운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 5년 동안 배운 것도 제법 있는 듯하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고자 한다. 누구나 시골 생활은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한다. 나도 동감이다. 그러나 몇 년의 경험이 쌓이니 이제는‘전쟁’에서‘싸움’정도로 약화된 것 같다. “제초매트의 사용, 멀칭, 여러 작물의 공교로운 혼합재배, 잡초가 처음 자라는 이른 시절의 부지런함” 등 많은 방법이 있는 듯하다. 나의 경험으로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최소 50% 이상 잡초 제거 노력이 감소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방법은 아주 조그만 손바닥 크기의 밭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밭에까지 일반화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 방법인 두둑에 작물을 일렬로 주욱 심어놓고, 맨땅에서 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방법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인 것은 틀림없다.
아마 이것은 우리 인간 세상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허실법(虛失法)과 허허실실법(虛虛實實法) 그리고 허허허 실실실법(虛虛虛 實實實法)이라고나 할까? 고등학교 때 고문(古文) 선생님의 강의가 생각난다.
이전 글에서도 한번 말하였지만, 잡초들의 생존전략은 매우 다양하다. 내가 관찰한 방법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잡초 이름을 알 때는 병기하였다.
① 다른 작물이나 잡초들이 자라기 전에, 빨리 자라고 열매를 맺어 경쟁 자체를 피하는 방법(소리쟁이, 민들레) ② 줄기는 약하지만 뿌리는 강하여, 손으로 제거하면 땅윗 부분은 손쉽게 제거되나 뿌리는 남아 계속 재생하는 방법 ③ 뿌리나 줄기 모두 약하나 다른 동물들과 상호 협력하여 생존하는 방법(애기똥풀), 또는 이와는 정반대로 ④ 줄기도 억세고 뿌리도 어마무시하게 퍼져나가 제거 자체를 너무 어렵게 만드는 방법 ⑤ 온몸에 가시가 있고 또 줄기까지 억세어 도저히 제거 자체를 엄두 내지 못하게 하는 방법(새삼) ⑥ 밟아도 밟아도 땅에 찰싹 달라붙어 질긴 생명을 유지하는 잡초(질경이) ⑦ 너무 빨리 무성하고 크게 자라 시간을 놓치면 주위 모든 작물까지 한꺼번에 제거해야 하는 물귀신 작전을 펴는 식물 등 그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
이 밖에도 다른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오늘은 상기 잡초 중 몇 가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말해 볼까한다.
첫째는 “줄기도 억세고 뿌리도 어마무시하게 퍼져나가 제거하기가 너무 어려운 잡초”의 생존전략이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흔하지는 않고, 자라는 곳에서는 매우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다. 잎도 가늘면서 매우 무성하게 나고, 잎에는 작은 가시까지 있으면서 질기다. 그리고 뿌리 제거는 손으로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삽을 이용하여 파서 제거해야 한다. 게다가 다년생이다. 아마 최강의 잡초라고 생각한다. 잎이 거세어 초식동물에게 먹히지도 않고, 잘살고 있다. 정말 최강이다. “넘사벽의 강함으로써 생존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인간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식물의 속성을 잘 알지 못할 때 한두 번은 속는다. 그러나 세 번 이상은 속지 않는다. 일단 이 풀의 특성을 알면, 보는 족족 어릴 때 제거해 버린다. 왜냐하면 이 풀이 자라면 제거하기 너무 힘들다는 것을 이제 잘 알기 때문이다.
둘째는 “온몸에 가시가 있고 또 줄기까지 억세어 도저히 제거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잡초”다.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히 보는 『새삼』이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이 풀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작은 꽃에서 씨앗도 많이 생산한다. 내 텃밭에서도 가장 기세가 왕성한 최강의 잡초다. 덴마크의 달가스가 초원을 개발할 때 제거하기 가장 힘들었다는 잡초이거나, 『백조의 공주』가 마녀의 저주에 걸린 자기 일곱 오빠를 구하기 위해 피 나는 손으로 가시덤불 옷을 만들었다는 그 풀이 바로 이 잡초가 아닌가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게다가 이 새삼의 어렸을 때 모습은 그야말로 순진무구하고 연약한 모습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것이 어떤 이름 모를 꽃인 줄 알고 주위 풀까지 제거해 주었을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새삼은 어렸을 때 ‘나물’로도 먹는다고 한다. 자란 후의 지독한 모습과 어렸을 때의 연약한 모습이 함께 있는 ‘야누스’ 같은 풀이라고 생각한다.
새삼의 이런 양면 전략은 매우 훌륭하다. 그래서 가장 강세종 잡초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인간과 만나기 전의 생존전략이다. 인간과 만남으로써 줄기의 질김은 오히려 자기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농막의 밭이 매우 좁아서, 나는 매우 촘촘하게 식물을 심어 놓았다. 그래서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풀을 뽑으면 다른 꽃들도 함께 뽑힐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새삼은 아니다. 줄기 자체가 질기기 때문에 손으로 줄기를 잡고 “쏙”하고 뽑으면, 주위 다른 식물에 영향을 주지 않고 새삼만 “쑉”하고 그냥 뽑힌다. 꺾이지 않기 위해 자기 줄기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그 강함 때문에 자기만 쏙 뽑히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새삼의 제거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애기똥풀보다 더 쉽다. 그러나 시기가 중요하다. 주위 다른 식물을 칭칭 감싸고 올라가 버리면 그 다음에 제거는 너무 힘들다. 새삼 덩굴이야말로 “밭의 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속담을 상기시키는 매우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잡초이면서도 너무 무성하게 잘 자라 시간을 놓치면 주위 모든 작물까지 한꺼번에 제거해야 하는 물귀신 작전의 잡초”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2~3메타 높이로 자라는 것은 보통이다. 그리고 잎은 돼지감자와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잡초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식물도 자신의 강함이 너무 지나쳐서 ‘새삼’과 비슷한 운명이 되었다. 처음 그 잡초의 속성을 모를 때는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강함 때문에 이듬해부터는 가장 첫 번째 『조기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강함이 결코 자기 생명을 길게 유지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림1. 물귀신 작전을 펴는 잡초의 모습
나처럼 게으른 사람도 새삼과 이 잡초만은 어린싹이 보이기만 하면 제거해 버린다. 그래서 밭에서 이 두 잡초가 끝까지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두가지 강한 잡초에 비해 진정으로 강한 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애기똥풀』과 이름부터 질기다는 느낌이 드는 『질경이』다.
우선‘질경이’부터 얘기해 보자.
질경이는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바로 그 질경이다. 시골길 어디에나 있다. 햇빛이 드는 곳이면 어디든지, 산이건 들이건 길가에도 있고, 담 밑에서도 잘 자란다. 마차가 지나는 길가(차전, 車前)에서도 질기게 자라나기 때문에 『질경이』라는 이름이 부쳐졌다. 질경이는 여기저기 아무 데서나 정말로 잘 자란다. 또한 자기를 귀찮게 하는 존재가 있으면 땅바닥에 찰싹 엎드려서 옆으로 자란다. 그러나 귀찮게 하는 존재가 없으면 20센티 이상 하늘 위로도 자란다.
상황에 따른 적응력도 강하다. 씨앗도 제법 많다. 씨앗은 “차전자(車前子)” 라고 하여 이뇨, 항암, 남자에게 좋은 약초로 이용된다고 한다. 그 강하고 질긴 생명력에서 이런 약효가 나오나 보다. 그리고 최근에 맛보았지만 ‘질경이 장아찌’도 맛이 상당히 좋다.
매우 무시당하는 잡초지만 이제 나는 기존의 이런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질경이는 대단한 식물이다. 질경이의“적응력과 강한 인내력”은 우리가 마땅히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림2;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애기똥풀과 새삼 줄기
애기똥풀은 아주 약하게 보이는 식물이다. 하지만 그 식물이 갖고 있는 다양한생존전략을 보면 “오, 약함이 결코 약함이 아니라, 진정한 강함이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한다.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
다른 풀이 아직 나오기 전에 빨리 나와 빨리 꽃을 피우고, 빨리 씨앗을 맺는다. 아직 다른 풀들은 자라려고 무게를 잡고 있을 때 이미 애기똥풀은 자라서
꽃을 피운다. 그래서 다른 식물들이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이미 1세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버린다.
모습이 너무 ‘얘리얘리’하다. ‘여리여리’하다. ‘하늘하늘’하다. 도저히 강한 잡초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당연히 제거의 대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노란 꽃도 제법 예쁘다. 하늘하늘한 모습에 꽃까지 밉지 않으니 제거 대상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인간에 의해 뽑히지 않고 줄곧 살아남는다. 그 결과 강한 잡초보다 오히려 생존 기간이 더 길게 되었다.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장자의 얘기가 떠오른다.
유행인 단어를 사용하면 현명한 ‘콜레보레이션’ 전략이다. 애기똥풀은 손으로 뽑으면 쉽게 뿌리까지 뽑힌다. 나도 꽃을 심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애기똥풀을 제거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로 옆자리에서 또는 여기저기 떨어진 곳에서 애기똥풀이 계속해서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신기하였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기막힌 생존전략이 있었다. 바로 『개미와의 협력』이였다. 개미는 여기저기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어떤 학자들은 개미 몸무게를 합하면 (바이오매스, Biomass) 지구에서 가장 많은 몸무게를 차지하는 동물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런 엄청난 숫자의 개미와 애기똥풀은 상호 협력관계를 맺은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애기똥풀은 비교적 일찍 씨앗을 맺는다. 그리고 그 씨앗에는 개미가 좋아하는 달콤한 맛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개미는 그 단맛을 얻기 위해 애기똥풀 씨앗을 자기 집으로 끌고 간다. 그런데 개미집은 땅 위가 아닌 땅 아래에 있다. 즉 개미는 자기도 모르게 애기똥풀을 땅에 심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제거를 해도 애기똥풀이 여기저기서 자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영리한 전략이 아니라, 기가 막힌 전략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최 우점종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잡식성 때문이라고 한다. 풀도 먹고, 고기도 먹고, 열매도 먹는다. 영양분이 있는 것은 셀룰로스만 빼놓고 다 먹는다. 그래서 먹이가 풍부할 때는 물론이고, 먹이가 부족하여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즉 특정 종류의 먹이에 매달리지 않음으로써, 설령 좋아하는 먹이가 없는 시기에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기똥풀도 똑 이렇다. 양지는 물론이고,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겨울 빼고는 ‘일년 사시사철’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즉 땅도 가리지 않고, 계절도 가리지 않는다. 그저 씨앗이 닿을 땅이 있고, 춥지 않은 온도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 더욱이 모습도 여리여리하여 경계의 대상도 아니다.
게다가 가장 흔한 동물인 개미와 협력관계까지 맺었다. 즉 나만의 능력에 의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협력을 통해서 내가 갖지 못하는 능력까지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인간이 개를 이용하여 목축을 하고, 도구를 발명하여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격변의 긴 지구 역사 속에서도 500만 년을 생존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귀중한 말의 의미를 나는 애기똥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