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해남, 토문재(吐文齋), 역마살(132화)

; '땅끝' 해남 그리고 '땅의 시작' 해남

by 김상국

땅끝 해남, 토문재(吐文齋), 역마살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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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있다고 한다. 원래 역마살(驛馬煞)의 의미는 한군데에 붙어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것을 뜻한다. 옛날에는 역참제도가 있었다. 지금처럼 인공위성도 없고, 인터넷도 없으니 먼 곳까지 연락은 당연히 불을 피우는 봉수제도 또는 말을 달려 직접 편지를 전달하는 역참제도를 이용하였다. 역마(驛馬)는 바로 이 역참에서 키우는 말로 우리가 파발마(擺撥馬)라고 불렀던 바로 그 말이다. 즉 ‘파발꾼’을 태우고 여기저기 부지런히 달려야 하는 말을 뜻한다.


그러니 역마살이 있다는 말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운세’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처럼 땅에 붙어 살아야 하는 ‘농경사회’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현대와 같이 이동을 통해서 지식을 얻고,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에서는 긍정적인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나에게 역마살이 있다는 말을 나는 ‘내가 유학 가는 것을 뜻하는가 보구나.’라고 과거에는 생각했었다. 가까운 곳도 아닌 수만리 멀리 떠나는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년을 하고난 지금 생각하니 역마살은 유학이 아니라, ‘여행을 좋아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은퇴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여행에 대한 유혹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다, 밖으로 나와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다른 문화를 볼 때 나의 가슴은 아직도 두근거린다. 우리 옛 속담에 “여행은 젊었을 때 가슴이 뛸 때 가야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도 여행을 떠나면 가슴이 뛰니 확실히 나에게는 ‘역마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1. 전라도 우수영, 경사도 좌수영


과거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전라도 우수영과 경상도 좌수영’이었다. 물론 각 좌우수영에는 작은 우수영과 좌수영으로 또 다시 나누어진다. 하지만 정식 큰 묶음은 ‘전라 우수영과 경상 좌수영’이었다. 지도를 보면 분명히 전라도가 좌측인데 왜 그럴까?


조선 중기 고위 관리였던 서익(徐益)은 중종(中宗)이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의 슬픈 심정을 다음과 같은 시조로 읊었다.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北向)하여』 우는 뜻은

석양(夕陽)이 재 넘어가매 임자 그려 우노라.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 운율은 좌우가 바뀌고, 또한 임금님이 계시는 곳은 한강(漢江) 위 지역에서도 항상 북쪽으로 되어있다. 정말로 이상하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 현대 우리는 지도를 ‘바라보면서’ 좌우를 판단하지만, 옛날에는 임금님이 보시는 방향에서 좌우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임금님은 북두칠성과 같은 분이기 때문에 항상 ‘북쪽에 계시는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라도가 우수영이 되고 경상도가 좌수영이 되며, ‘북향하여 우는 것’도 임금님이 계시는 곳을 향해 운다는 뜻이 된다고 한다.


하여튼 해남은 전라 우수영의 본거지이자 수군절도사가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해남에는 전라우수영관광지와 명량대첩 기념공원이 크게 조성되어 있다.

그림 우수영관광지; 진도대교에서 바라보는 이순신 장군의 울돌목 대 격전지


2. 땅끝 해남인가? 땅의 시작 해남인가?


우리는 흔히 ‘땅끝 해남’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당연한 말이다. 육지로는 더 이상 내려 갈 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듣는 사람에게 왠지 ‘낭만적’으로 까지 들리기도 한다. “그래, 나 땅 끝까지 다 가보았지.”라고 약간 자랑스럽게 의시 대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지역 관광차원에서는 매우 그럴듯한 표제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에 해남은 땅 끝이라기보다는 『땅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강한 지역이었다. 해남 달마산 자락에는 ‘미황사(美黃寺)’라는 아름다운 절집이 있다. 보물이 네 개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하기야 이름부터 아름다울 미(美)자가 들어있고, 뒤 병풍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하는 달마산이 있으니 더욱 그럴만하다.


그런데 미황사의 창건신화가 예사롭지 않다. 땅끝이 아니라 ‘땅의 시작’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 749년에 창건되었다. 서역 우전국왕이 보낸 불상과 금합이 가득한 배가 이 해변에 도착하여 의조화상께서 지역민 100여명을 대리고 그 배를 맞이하고, 절을 새우니 그 절이 바로 미황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사한 ‘땅의 시작’ 설화가 해남 바로 옆 영광에도 있다.


한반도 불교 전파는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시작과 장소가 다르다. 백제 불교는 인도 승 ‘마라난타 존자’가 A.D 384년 영광 법성포의 좌우두에 들어와 불법을 전하고 불갑사를 개창한 것이 백제 불교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광은 지금의 작은 모습과는 너무 다르게 예사롭지 않은 이름들이 많이 존재한다.


우선 영광(靈光)이라는 고을 이름 자체가 ‘신령스런 빛의 고장’이라는 뜻이다. 법성포(法聖浦)라는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법(法)은 불교를 뜻하는 법(法)이고, 성(聖)도 성인을 뜻하는 성(聖)자다. 평상시에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자들이다. 그래서 법성포는 ‘성인 마라난타가 들어와 불법을 전한 포구’라는 뜻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법성포의 백제 때 옛 이름이 ‘아무포(阿無浦)’다. ‘아미타불의 포구’라는 뜻이다. ‘불갑사(佛岬寺)’ 이름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법(法)이 줄을 이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작은 절 크기에 비해 이름이 너무 크다. 그러나 마라난타가 와서 개창한 첫 절이 불갑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 해남과 영광 지역의 많은 설화와 지명이 뜻하는 바는 남방에서 온 새로운 문화가 해남과 영광에서 처음 출발했다는 것을 뜻한다. 즉 해남과 영광은 특히 해남은 ‘땅의 끝’이기도 하지만 ‘땅의 시작’이기도 한다는 뜻이 된다.


3. 땅끝 해남, 토문재(吐文齋)와의 인연


우리나라에는 이름 자체부터 아름다운 곳들이 너무 많다. 내가 사는 용인에는 토월(吐月)초등학교가 있다. ‘달을 토해내듯이 인재를 토해내는 초등학교’라는 뜻이다.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光風閣)도 ‘선비 가슴에 품은 뜻의 맑음이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 같고,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 같다(胸懷灑落 如光風霽月)'는 뜻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

그림 소쇄원 광풍각 현판

그림 소쇄원 광풍각 현판


해남의 ‘토문재(吐文齋)’도 촌장, 인송 박병두씨가 자비로 한옥을 짓고 운영하는 문학인들을 위한 무료시설이다. 토문재 이름도 ‘문학 작품을 토(吐)해 내는 창작의 집’이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가지 의무는 ‘오직 좋은 작품을 써내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전문 문학인은 아니지만 가끔 쓰는 수필로 부족한 수필가의 자격으로 초청 받게 되었다.


(1) 촌장님의 철학


토문재는 2천 3백 평의 상당한 규모이고, 본관과 별관으로 구성되어있다. 일단 위치와 단정한 한옥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인송(仁松) 박병두 촌장의 철학이다. 그의 말은 간단명료하였다. “문학을 창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나라에서 글만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어요. 저는 그분들에게 마음 놓고 머무르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리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이 집을 지었고, 무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철학은 정말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인문학 박사이고, 몇십년 동안 문학 활동을 하였다. 고산문학상, 이육사문학상,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한 실력 있는 작가다. 시집과 산문집, 장편소설, 시나리오 선집 등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작품을 낸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그에게서는 문학도다운 남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한옥집도 정갈하였지만 그 안에 24시간 운영하는 깔끔한 무인 카페도 있고, 방안의 집기류, 침구, 편의시설까지 정말 세심한 신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안 책장에도 여러 장르의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자기 분야 이외 참고 서적들이다. 아마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가볍게 보라는 배려 같았다.


그림 토문재에서 바라본 다도해의 아름다운 모습


그림 토문재 본관과 북 카페


그림 토문재 앞 바다의 정경. 그저 아름답다. 글이 절로 써질 것 같다


그림 아침 일찍부터 토문재를 직접 관리하는 모습.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2) 작은 조약돌과 멀리 퍼져 나가는 잔물결


그와의 간담회를 가지면서, 『호수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 생각이 났다. 조약돌은 큰 돌이 아니다. 작은 돌이다. 그러나 그 작은 돌이 고요한 호수에 던져질 때 그 파문은 얼마든지 넓게 퍼질 수 있다. 그의 토문재 공간에는 황지우 선생, 조용연 선생 같은 우리가 아는 많은 시인과 문학가들이 머물다 갔다. 또한 지금도 상당수 작가들이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지역사회에 인문학의 꿈을 심어주는 것' 같았다. 토문재 바로 아랫동네를 걷다가 재미있는 명판을 발견하였다.


그림 토문재 바로 아랫마을 인문학 마을 지정 팻말


우리나라 어느 마을(里)이 『인문학 마을』로 지정된 곳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내가 과문한지는 모르지만 여기 말고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많은 동네 작가들의 글이 담벼락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그림 동네 작가의 글


그림 동네작가 글과 나란히 있는 재미있는 그림


그런데 박병두 촌장은 요새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빠른 고령화 시대의 도래와 환경오염, 자원 고갈 그리고 불확성 시대를 맞이하여 문화예술이 어떤 새로운 방향을 대중들에게 제시해 줄 수 있겠느냐?”는 문제라고 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요즘은 불확실성의 증대도 문제지만 불확실성 종류의 다양성 증가도 함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림 박병두 촌장의 시


(3) 여기서도 어쩔 수 없는 경제학도의 직업병


나는 가끔 수필도 아닌 하찮은 수필을 쓰지만,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가르쳤었다. 30년 넘게 교수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생겼나 보다. 그의 아름다운 마음과 철학을 들여다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어려운 말로 『지속 가능성』이고, 쉬운 말로는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였다. 어렵게, 어렵게 운영한지 벌써 3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사재도 거의 동나고, 그의 체력과 인내력도 많이 소진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문학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할 때 유료 이용도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75% 운영비 지원도 큰 도움이 되지만, 나머지 25%의 부담과 숨겨진 운영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한다.


경제학도로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해남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학에서 가장 중요한 마케팅 정책은 『차별화 전략』이다. 나만의 독특한 장점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다른 경쟁상대가 나를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다.


수많은 지자체들이 인구 감소와 함께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갖추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축제, 전시회, 국제회의 등 많은 지자체들이 하는 방법들이다. 그러나 실질적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그러나 토문재와 같은 문화역량을 키우는 자산은 다른 지자체들이 갖추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대체 가능성도 절대 높을 수가 없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땅끝 해남’이며 또한 ‘땅의 시작’인 해남이 이런 문화역량의 증대사업에서 새로운 발전 기회의 시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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