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 아호, 자, 시호, 당호 등의 이야기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 사대부들은 여러 개의 칭호가 있었다. 당연히 이름인 ‘명(名)’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라면 바로 ‘김정희’가 명에 해당된다. 그러나 명은 보통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귀한 이름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고 있지만 좀처럼 그 명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귀한 이름이기 때문에 함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구태여 불러야 할 경우에는 ‘아명(雅名) 김정희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래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아명(兒名)』이 있다. 방금 설명한 아름다운 이름 아명(雅名)과 말은 같지만, 한자는 다르다. ‘아명(兒名)’은 말 그대로 어린 시절 어른들이 편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둘째야” “큰 놈아” “귀임아” “언년아” “아지야” 등 형제의 순서 또는 그 아이가 되고 싶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또는 신분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아마 여러분 중에서도 아명을 가지셨던 분이 계실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엉뚱하게 양반집 귀한 아들을 ‘개똥이’ 또는 여자 이름 ‘순덕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옛날에 아들은 귀한 존재였다. 그런데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어렸을 때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경우 마마귀신(천연두), 장질부사 귀신 등이 잡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한 아들은 귀신의 눈으로부터 피신시켜야 했다. 그래서 귀신이 잡아갈 가치가 없는 하찮은 존재로 보이기 위해 ‘개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거나, ‘순덕이’ 등 여자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때로 심하면 다섯 살 정도가 되어, 이제는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머리를 땋거나 여자 옷을 입혀 ‘여자아이’ 외모를 갖추게까지 하였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몽골을 10여 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우리와 만주족, 여진족을 흔히 몽골족, 몽골리안이라고 부른다. 사실 나는 이 말을 그냥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그쳤었다. 그러나 그때 몽골을 방문하고 나서. “아, 진짜 우리는 몽골족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식생이었다. 그들의 소나무도 우리나라 소나무였으며, 그들의 야생화도 우리나라 야생화와 아주 똑같았다. 패랭이, 쑥, 작은 콩, 자운영, 소먹이 풀, 하늘난초, 기린초, 범의 꼬리 등 내가 어렸을 때 보던 꽃들과 어찌 그리 동일한지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소먹이 풀’에 대해서는 한마디하고 싶다. 쥴리 앤드루스가 나온 ‘사운드 업 뮤직’ 이후에 오스트리아의 국화인 ‘에델바이스’가 우리나라에서도 한참 새로운 식물로 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말로 ‘소먹이풀’이라고 하지 않는가? 너무 의외여서 식물에 밝은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에델바이스가 정말 소먹이풀 맞느냐?” 대답은 “그렇다”였다.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을 방문하니 길바닥 어느 곳에서는 지천으로 깔린 것이 바로 소먹이 풀 아닌가?
그림 1. 우리가 흔히 ‘에델바이스’라고 부르는 ‘소먹이 풀’. 소가 좋아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몽골의 초원에 지천으로 있었다.
‘아! 나도 어쩔 수 없이 외국 것만 쳐다보며 사는구나. 그렇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것만...’ 그러나 그 뒤에도 보니 소먹이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라일락’도 ‘수수꽃다리’라는 이름이 있고, 무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꽃이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콩’도 우리나라가 원산이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도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다. 그리고 지금까지 ‘벼’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알고 있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중국보다 오래된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중국과 원산지 논쟁이 붙었다.
만약 쌀도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밝혀진다면 ‘쌀과 콩’,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먹는 두 식품이 우리나라가 원산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밝혀진다면 정말 자랑스러울 것 같다. 이제는 DNA 기술이 발달하여 원산지 싸움이 과거보다는 훨씬 더 쉽게 결론이 날 것 같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몽골에서도 귀한 남자아이를 ‘개똥이’라고 부르고, 머리를 삐삐 머리로 묶으며, 여자 옷을 입히는 것이 우리와 완전히 같았다는 것이다.
2. 자, 호, 아호(자호), 시호 등
그런데 명(名)과‘자(字), 호(號), 아호(雅號), 자호(自號), 시호(諡號)’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 옛 어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은 『호(號)』였다. 이름(名)은 부모 또는 집안의 어른들이 지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도, 부르지도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호(號)는 다르다. 호도 때로는 부모나 어른 또는 스승들이 지어주었다. 그 사람됨을 보고 짓거나 또는 호가 뜻하는 바와 같은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지어주었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경우는 자기가 짓는 경우다. 그럴 때는 자기 스스로 지었다고 해서 ‘자호(自號)’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호는 하나 이상인 경우가 너무 많다.
추사 선생님은 호가 ‘완당, 추사, 시안, 노과’ 등 무려 200여 개가 넘어 503개까지 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다산(茶山), 사암(俟菴), 탁옹(籜翁), 자하도인(紫霞道人), 문암일인(門巖逸人) 등 최소 7개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단원 김홍도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원(檀園), 단구(丹邱) 등 최소 7개 이상의 호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세 인물로는 ‘가람(江)’ 이병기(李秉岐)’, ‘외솔’ 최현배(崔鉉培), ‘늘봄’ 전영택(田榮澤) 같은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의 호는 우리말로 지은 정말 아름다운 호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비해 『』는 또 조금 다르다. 시호(諡號)는 관직이나 학덕이 높은 분이 사망하면, 임금님이 그의 삶이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특별히 내려주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분의 덕이 특히 높을 때는 서원을 짓고 편액까지 내려주기도 한다. 그럴 때 그런 서원을 ‘)’이라고 부른다. 이율곡 선생의 파주 자운서원(紫雲書院), 이퇴계 선생의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하서 김인후 선생의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액서원이 되면 노비와 전답을 함께 하사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자녀들이나 지역이 잘못되어 서원을 유지하지 못할 것을 대비하여 임금께서 특별히 배려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액서원들은 노비문서와 땅문서 그리고 상세한 소득과 지출 명세서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림 2. 전남 장성, 필암서원 현판, 진짜 사액 현판은 검은 망사천으로 가려져 있다. 임금님의 글씨를 함부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재미있는 호가 있다. 바로 『별호(別號)』다. 말 그대로 특별한 호다. 별호는 자기가 짓는 법은 없다. 반드시 남이 지어준다. 그리고 대부분은 누가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사람들이 그 사람의 기행(奇行)을 보고 저절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봉이 김선달(鳳伊 金先達), 김병연의 김삿갓, 대도 임꺽정 등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삼국지의 미염공 관우는 수염이 특히 아름다워 부쳐진 이름이고, 수호지의 급시우 송강은 그가 아전이었던 시절,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줘서 부쳐진 이름이다. 서유기의 손오공 제천대성도 거의 같은 수준의 이름들이다. 이런 이름들이 대충 별호에 해당된다. 아마 요샛말로 바꾸면 “별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名)은 보통 그 사람의 정식 이름 관명(官名)이다. 부모나 집안 어른들이 지어주는 이름이라고 했다. 자(字)도 보통 집안 어른들이 지어준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다는 표시인 16세 관례(冠禮)를 치르면 어른이 되었다는 표시로 어린 시절 아명(兒名) 대신 자(字)를 지어주고 그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자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집안에서, 동료 사이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 보통 사용하였다. 그래서 자에는 존칭이 붙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자호(字號)라고 하지만, 폭 넓게 일반적으로 넓게 부른 것은 호(號)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비해 사람에게 부쳐진 이름이 아니라 집에 부쳐진 이름이 있다. 바로 당호(堂號)다. 때로는 집주인을 그 당호로 부르기도 하였고, 직책 높은 부인들이 당호를 짓고 그것을 자기 칭호로 삼기도 하였다. 우리가 궁궐에 가거나 누각, 정자 또는 옛 선비들의 집을 방문하면 집 앞에 또는 방문 앞에 현판이 걸려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경우 그것이 바로 당호다.
강릉 오죽헌을 방문하면 이율곡 선생이 태어나신 몽룡실(夢龍室)이 있다. 검은 용이 날아드는 꿈을 꾸고 율곡 선생을 회임했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화폐에도 남은 사임당 신씨, 여유당 정약용, 비운의 천재 여인 허 난설헌, 망우당 곽재우, 우리나라 가사(歌詞) 문학의 산실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光風閣) 등 남, 녀, 집, 각, 실 등 그 예가 가장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여유당(與猶堂)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3. 여유당 현판
다산 선생님의 실학 업적과 500권이 넘는 저술 그리고 그의 천재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무고(無辜)로 그는 강진에서 무려 18년 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마제로 돌아오셨다. 하지만 그간 큰형님도 돌아가셨고, 자산어보를 쓰신 동생 정약전도 돌아가셨다. 양수리, 두물머리로 돌아온 후에도 정적들 감시의 눈은 시퍼렜다. 오죽 답답하고 또 답답했으면, 그리고 오죽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으면, 자기가 사는 집 이름을 여유당이라고 지으셨을까?
여유당의 여유(與猶)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나온 말이다. 그 글귀 전체를 해석하면 “신중하기(與)를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삼가하기(猶)를 사방 주위 모두를 두려워하는 듯하라”는 뜻이다. 다산 선생님 같은 분께서 자신의 당호를 여유당이라고 지으신 심정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3) 당호조차 없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제주도 유배지
추사 선생님은 제주도로 유배를 가셨다. 유배지에서 그 유명한 국보 180호 세한도가 탄생하였다. 그런데 천재 중의 천재인 추사 선생님 서귀포 유배지에는 당호조차 없다. 사람도 보지 못하고 출입도 못 하도록 탱자나무로 집을 뺑 둘러친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당하셨으니 당호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그 자리는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西歸浦 金正喜 流配址)라는 표석만 서 있을 뿐이다.
물론 이제는 박물관과 돌담 등으로 제법 잘 꾸며져 있다. 하지만 그곳을 돌아보면서 깊은 회한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위리안치도 조금 풀려 제주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기시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에는 그때 추사 선생님께서 써주신 진적 글씨가 제법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모두 박물관에 모여 더 많은 사람들이 추사 선생님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그러면 현대에는 호(號)가 사라졌을까? 과거와 같은 호는 대부분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호가 생겼다. 나는 그것을 필명과 이메일 주소명이라고 생각한다.
필명은 보통 작가들이 유명하기 전 또는 유명해진 후에도 여러 이유에서 자기 본명을 밝히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선인들의 호(號)와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하지만 이것도 자기를 숨기면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과거 호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 호와 가장 가까운 현대판 호는 ‘이메일 주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 보통 명함을 주고받는다. 나는 그때 받은 명함의 이메일 주소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명함 중에서 가장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 바로 이메일 주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할 때 남을 의식하기가 쉽다. 그래서 화장도 하고, 말도 조심하고 특히 여자분들 경우에는 옷차림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그러나 이메일 주소를 만들 때는 남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짓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 사람의 이 메일 주소를 보면 그 사람의 평상시 생각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바로 옛날 선현들이 자호(自號)를 짓는 이유와 같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단순히 자기 이름과 생일의 조합을, 자식 이름을, 회사 이름과 직책을 또는 자기 별명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금 독특한 예도 있다. 몇 개를 소개해 보겠다.
어느 목사님의 경우 iloveall, 기자인 분은 tigermouse, 문학인들의 경우 ordin, asadal, kwanwoo, mandoo, hellokim, icon.lee, silverpark 등이 있었다. 어느 마음 착한 자매님은 메일 주소를 angelsister라고 했다.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내가 본 가장 독특한 이름은 CleopaYoon이었다. 물론 그분은 얼굴도 예뻤다. 그리고 성격도 매우 강한 분이었다. 그녀 자신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을 아주 잘 나타낸 이름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BugieWugieOne이었다. 참 조용한 분인데 이런 이름은 정말 의외였다. 아마 너무 조용한 자기를 ‘탈피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되었다. 자호의 본 목적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가요? 좀 독특하신가요? 아니면 욕망을 나타내셨나요? 아니면 나 스스로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로 지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