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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샘 Jan 14. 2024

기쁜 소식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사서삼경처럼 성경 읽기 - 마가복음 1장

사람들은 유교경전이나 불경에는 무언가 지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생에 한 번쯤 펼쳐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경전은 수많은 에세이와 철학의 모티브가 되어줍니다.


성경도 그렇게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마가복음서

제 1 장

세례자 요한의 선포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2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닦을 것이다."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한 것과 같이,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7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8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다


9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예수께서 물 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11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시험을 받으시다


12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오늘의 주제는 복음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에게 "복음이 뭡니까?"하고 물으면 의외로 잘 대답 못합니다.


복음은 기본적으론 희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정치적인 용어로써 전쟁에서의 승리나 새로운 황제의 즉위를 알리는 소식을 가리켰습니다.


로마군이 동방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까? 복음이지요. 현명하기로 소문난 이가 황제가 되었습니까?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이용해서 저자는 글을 씁니다. 성경에서 복음이라고 했을 땐 무엇을 가리킬까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소식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로마황제의 나라가 곧 끝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로마군의 식민지배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이상세계관입니다. 유교의 대동사회, 노자의 소국과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같지요.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될 뿐 구체적이지 않긴 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는 확실하지요.


적어도 가난, 지배, 갑질, 폭력, 착취, 차별, 고독이 없습니다.


2천 년 전 그 시절에는 가난과 갑질이 만연했습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그 주범을 로마의 식민지배와 로마군의 폭력으로 보았지요.


거기서 하나님나라를 복음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니 처형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에도 가난과 갑질이 만연합니다. 그 주범이 예전처럼 명확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과 로마가 많은 면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것보다는 막대한 부를 가진 일부의 사람들의 이기심과 부의 격차를 벌어지게 만드는 자본주의 제도가 가난과 갑질, 때로는 노골적인 폭력의 원천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이상세계관은 세상의 고통을 줄여보고자 하는 운동들의 원동력이 되고, 어느새 자기 자신마저도 폭력의 지배에 일조하고 있지 않은지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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