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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샘 Apr 18. 2023

목사가 읽어주는 삼국지

문학의 목적 - 국어시간에 삼국지가 나온다면?

해석방법


국어시간에 배웠다. 문학 작품의 해석방법에는 내재적 관점, 외재적 관점이 있다. 외재적 관점은 다시 표현론, 반영론, 효용론으로 나뉜다. 실은 설교도 동일한 방법으로 작성된다. 이를테면 시어, 등장인물, 사건 등에 집중하는 것은 내재적 관점이고,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참고하는 것은 표현론, 작품 내의 역사적 상황이나 집필당시 사회상을 살피는 것은 반영론, 설교자 자신의 고유한 반응이나 요즈음 사람들의 반응을 소개하는 것은 효용론의 해석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성서학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주석방법"이라고 한다. 4개의 방법을 나열했지만, 실제로는 더 세분화되어 목사후보생들은 대략 10개가 좀 넘는 주석방법을 익히도록 훈련받는다. 그중에서 뼈대가 되는 방법은 역시 반영론이다. 성서 저자들은 셰익스피어처럼 다작을 하지는 않는 데다가, 효용론은 독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법이므로 뼈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영론의 기본은 위에서 말했듯이 작품 내의 역사적 상황과 집필당시의 사회상을 살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알고 있으면 저자의 의도를 해석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게 해석, 주석의 목적이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 파악하는 것.



국어시간에 삼국지 읽기


이 방법을 삼국지에 써보자. 삼국지의 배경은 한나라 말기. 당시 황실은 힘을 잃어 질서가 흐트러지고, 농민들이 대규모반란을 일으키고, 여러 지방에서 실력자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등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후로는 아예 위진남북조라는 기나긴 혼란기가 이어진다.(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낭만이 있던 시절, 한, 당, 명을 자신들이 잘 나가던 시절로 기억하지만 위진남북조 같은 분열기나 이민족 지배를 받는 때는 끔찍하게 여긴다고 한다.)



주인공은 유비, 황실에 충성하며, 어진 정치를 하는 인물이다. 인품이 좋아서 힘쓰는 장수들이 알아서 붙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 힘을 못 피는 세월을 보내는데, 제갈공명이라는 선생을 만나 형주와 익주라는 제대로 된 세력권을 얻어 촉나라를 세운다(내집마련!). 공명선생께서는 천하삼분지계라는 천하를 제패할 큰 그림을 갖고 계셨다. 그러나 유비는 선생 말 안 듣고 동생 원수 갚으러 오나라 쳐들어갔다가 신세를 조지고 촉나라도 얼마 안 가서 위나라에게 망하고 만다.

 삼국지는 비극이다. 한 황실을 지키지 못한 유비 본인에게도 비극이고, 찬탈한 권력을 찬탈당한 조조일가에게도 비극이고, 그렇게 얻은 권력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대혼란기를 열어젖힌 사마씨일가는 물론 천하만민에게 비극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은 원말 명초의 인물이다. 그 교체기는 당연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으로 유비를 내세웠다(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사마씨의 진나라 때 쓴 것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군웅이 아닌 선비인 제갈공명을 2기 주인공으로 삼았다. 혹시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의 비군인 출신 책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건 기묘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작가가 "유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조명했다는 것이다.


나관중이 삼국지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유교의 질서를 바탕으로 한 천하의 평화"이다. 이러한 새 시대(명나라)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던 것이 삼국지였고, 독자들은 이에 열광하여 지금까지도 2차 창작이 끊이지 않는 고전에 등극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를 전제하고 나면 삼국지의 장면 장면이 재미있게 이해된다. 원소는 왜 망했을까? 조조는 똑똑하기로 소문난 셋째 아들 조식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가후에게 묻자 그는 뚱한 표정을 지을뿐 말이 없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가후는 대답했다. "잠시 원소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원소도 셋째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했다. 장남이 삼남과 싸움이 붙었고 덕분에 조조는 어부지리로 원씨일가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고민 끝에 조조는 장남 조비를 후계자로 삼았다. 작가가 보기에 조조가 원소보다 오래간 건 첫째로 장자 승계원칙을 잘 지켰기 때문이고, 둘째로 선생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다. 왕은 하자가 큰 게 아니면 그냥 첫째가 하는 게 불필요한 내전을 예방할 수 있고, 덜 똘똘한 왕은 똑똑한 선비들이 보완하면 된다는 게 유학자들의 생각이었다.


제갈공명의 업적을 기를 쓰고 과장한 것도 납득이 된다. 사실 공명의 역할은 전략가로서 큰 판을 짜는 것이다. 오나라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아이디어, 오나라의 비둘기파를 설득하는 외교, 뒤통수를 쳐서 형주를 먹겠다는 계략(또 유장의 뒤통수를 쳐서 익주까지) 같은 것이 제갈량의 능력이다. 하지만 소설로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줄 수 없기에 전술 차원에서 전장을 지배하는 신출귀몰한 모습을 묘사해야 했다. 사실 어디에 매복하고 언제 공격하고 하는 건 장수들의 영역이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이 똑똑하시다고 육군참모총장 보직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인 것과 마찬가지다. 여하튼 작가는 제갈공명을 대단히 유능한 인물로 보여줘야했고, 그래야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는 자신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질게 통치하고, 군왕이 덕의 모범을 보이고, 선비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 황실이 오래가고 나라는 평안했을 거다"라는 저자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삼국지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사건이 설명된다. 이각과 곽사가 어떻게 여포를 잡을 수 있었는가? 가후 말을 잘 들어서 그렇다. 여포는 왜 조조에게 죽었는가? 진궁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 원소? 전풍 말을 잘 들었어야지. 조조가 언제 몰락했는가? 순욱에게 빈 도시락통을 줬을 때다. 손견, 손책... 군주가 나가 죽으면 안 된다... 물론 촉이 왜 망했는지도 설명이 된다. 아니 유비가 천하삼분지계 파투낸건 그렇다고 쳐도 유비 사후에는 공명이 북 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했는데 북벌이라도 성공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들어보자. 공명이 출사표 내고 떠날 적에 유선에게 분명히 "간신을 멀리하십시오" 하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황호 같은 간신 환관을 총애했으니 촉한이 망한 것이다.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이다. 저자에게 있어서 촉한 멸망의 원인은 군주의 무능과 잘못된 인사 때문"이어야"하지, 제갈공명의 무리한 북벌강행이라던가 잘못된 판단 때문"이어서는" 결코 안 되었다.




국어시간에 성경이 나왔다면?


지금까지 성서의 주석방법을 가지고 삼국지를 해석해 보았다. 그러면 똑같은 틀로 성경을(정확히는 창세기부터 열왕기에 이르는 역사를) 해석해보자. 열왕기도 삼국지처럼 비극으로 끝난다. 바빌론에 의해 왕조가 끊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인물, 족장, 영웅, 왕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인물들은 단 하나의 기준으로 운명이 좌우지된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잘 나가고 안 들으면 신세를 망친다."


아담은 먹지 말라는 거 먹었다가 에덴에서 쫓겨났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라 홍수에서 목숨을 건졌다. 요셉은 노예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잘했더니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삼손은 이방여인과 놀아나더니 힘을 잃었고, 회개하자 힘을 되찾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관계가 좋을 때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렇지 않을 때 패배했다. 다윗이나 솔로몬도 말로가 안 좋다. 다윗은 비겁하게 부하의 아내를 취했고, 솔로몬은 이방신들에게 관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왕조는 오래 못 가고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졌다. 이후에도 왕들은 두 명 빼고 영 하나님 말을 안 들었고,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모세는 샘 터지게 한다고 바위를 두번 내리쳤다가 벌을 받게 되었다. 민수기 20장 1-13절


재미있는 건 모세다. 모세는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다. 압제받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혁명가, 규율(율법)을 세워 질서를 유지한 리더. 백성들이 철없는 불평을 해도 잘 달랬고, 하나님이 쟤네들 다 죽이겠다고 화내셔도 끈질기게 설득해서 백성들을 지켰다. 그런데 어느 날 모세도 분이 나서 반항 한 번했더니 하나님께 혼나고는 결국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다. 솔직히 성경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이해하기가 힘들다. 모세의 반항은 모르고 보면 못 알아챌 정도로 작은데 비해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간다는 처분은 과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지 해석할 때처럼 저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모세가 광야에서 죽은 건(촉한이 망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모세가 약속에 땅에 들어가서 정복전쟁을 완수하는 대체역사를 쓸게 아니라면(제갈공명이 위나라를 정복하는 대체역사를 쓸게 아니라면), 사실은 그대로 두되 비극의 원인이 하나님(선비)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세는 자신의 불찰로 못 들어가는 걸로 해야 했다. 여하간, 이렇게 까지 해서 성서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하나로 압축된다. "하나님 말씀(성서)을 잘 들어라. 그러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이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해석방법으로 삼국지와 성경의 굵직한 서사를 해석해 보았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유대교(유교)의 원리로 정치하고, 하나님(유학자) 말씀을 잘 들어라. 만사형통하리라"였다. 저자는 꾸준히 반복해서 독자를 설득하고 있다. 물론 독자의 책에 대한 감상과 해석은  자유다. 그러나 저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저자가 그것을 간절히 바랬을 뿐더러,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의 공통이 인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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