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읽어주는 삼국지

문학의 목적 - 국어시간에 삼국지가 나온다면?

by 나비샘

해석방법

국어시간에 배웠습니다. 문학 작품의 해석방법에는 내재적 관점, 외재적 관점이 있습니다. 외재적 관점은 다시 표현론, 반영론, 효용론으로 나뉩니다. 실은 설교도 동일한 방법으로 작성됩니다. 이를테면 시어, 등장인물, 사건 등에 집중하는 것은 내재적 관점이고,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참고하는 것은 표현론, 작품 내의 역사적 상황이나 집필당시 사회상을 살피는 것은 반영론, 설교자 자신의 고유한 반응이나 요즈음 사람들의 반응을 소개하는 것은 효용론의 해석방법을 이용한 것입니다.


성서학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주석방법"이라고 합니다. 4개의 방법을 나열했지만, 실제로는 더 세분화되어 목사후보생들은 대략 10개가 좀 넘는 주석방법을 익히도록 훈련받습니다. 그중에서 뼈대가 되는 방법은 역시 반영론입니다. 성서 저자들은 셰익스피어처럼 다작을 하지는 않는 데다가, 효용론은 독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법이므로 뼈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영론의 기본은 위에서 말했듯이 작품 내의 역사적 상황과 집필당시의 사회상을 살피는 것입니다. 내재적 읽기와 반영론을 이용하면 저자의 의도를 대부분 해석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해석, 주석의 목적입니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 파악하는 것이죠.



국어시간에 삼국지 읽기

이 방법을 삼국지에 써봅시다. 삼국지의 배경은 한나라 말기. 당시 황실은 힘을 잃어 질서가 흐트러지고, 농민들이 대규모반란을 일으키고, 여러 지방에서 실력자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등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이후로는 아예 위진남북조라는 기나긴 혼란기가 이어집니다.(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낭만이 있던 시절, 한, 당, 명을 자신들이 잘 나가던 시절로 기억하지만 위진남북조 같은 분열기나 이민족 지배를 받는 때는 끔찍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유비, 황실에 충성하며, 어진 정치를 하는 인물입니다. 인품이 좋아서 힘쓰는 장수들이 알아서 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 힘을 못 피는 세월을 보내는데, 제갈공명이라는 선생을 만나 형주와 익주라는 제대로 된 세력권을 얻어 촉나라를 세웁니다(내집마련!). 공명선생께서는 천하삼분지계라는 천하를 제패할 큰 그림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선생 말 안 듣고 동생 원수 갚으러 오나라 쳐들어갔다가 신세를 조지고 촉나라도 얼마 안 가서 위나라에게 망하고 맙니다.

삼국지는 비극입니다. 한 황실을 지키지 못한 유비 본인에게도 비극이고, 찬탈한 권력을 찬탈당한 조조일가에게도 비극이고, 그렇게 얻은 권력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대혼란기를 열어젖힌 사마씨일가는 물론 천하만민에게 비극이었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은 원말 명초의 인물입니다. 그 교체기는 당연히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으로 유비를 내세웠습니다(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사마씨의 진나라 때 쓴 것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군웅이 아닌 선비인 제갈공명을 2기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혹시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의 비군인 출신 책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건 기묘한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작가가 "유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조명했다는 것입니다.


나관중이 삼국지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유교의 질서를 바탕으로 한 천하의 평화"입니다. 이러한 새 시대(명나라)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던 것이 삼국지였고, 독자들은 이에 열광하여 지금까지도 2차 창작이 끊이지 않는 고전에 등극한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를 전제하고 나면 삼국지의 장면 장면이 재미있게 이해됩니다. 원소는 왜 망했을까요? 조조는 똑똑하기로 소문난 셋째 아들 조식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가후에게 묻자 그는 뚱한 표정을 지을뿐 말이 없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가후는 대답했다. "잠시 원소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원소도 셋째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했습니다. 장남이 막내와 싸움이 붙었고 덕분에 조조는 어부지리로 원씨일가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고민 끝에 조조는 장남 조비를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작가가 보기에 조조가 원소보다 오래간 건 첫째로 장자 승계원칙을 잘 지켰기 때문이고, 둘째로 선생 말을 잘 들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하자가 큰 게 아니면 그냥 첫째가 하는 게 불필요한 내전을 예방할 수 있고, 덜 똘똘한 왕은 똑똑한 선비들이 보완하면 된다는 게 유학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제갈공명의 업적을 기를 쓰고 과장한 것도 납득이 됩니다. 사실 공명의 역할은 전략가로서 큰 판을 짜는 것입니다. 오나라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아이디어, 오나라의 비둘기파를 설득하는 외교, 그 뒤통수를 쳐서 형주를 먹겠다는 계략(또 유장의 뒤통수를 쳐서 익주까지) 같은 것이 제갈량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소설로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줄 수 없기에 전술 차원에서 전장을 지배하는 신출귀몰한 모습을 묘사해야 했습니다. 사실 어디에 매복하고 언제 공격하고 하는 건 장수들의 영역입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이 똑똑하시다고 육군참모총장 보직을 줄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하튼 작가는 제갈공명을 대단히 유능한 인물로 보여줘야했고, 그래야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는 자신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질게 통치하고, 군왕이 덕의 모범을 보이고, 선비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 황실이 오래가고 나라는 평안했을 거다"라는 저자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삼국지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사건이 설명됩니다. 이각과 곽사가 어떻게 여포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가후 말을 잘 들어서 그렇습니다. 여포는 왜 조조에게 죽었나요? 진궁 말을 안 들어서 그렇습니다. 원소? 전풍 말을 잘 들었어야죠. 조조가 언제 몰락했습니까? 순욱에게 빈 도시락통을 줬을 때입니다. 손견, 손책... 군주가 나가 죽으면 안 됩니다. 물론 촉이 왜 망했는지도 설명이 됩니다. 아니 유비가 천하삼분지계 파투낸건 그렇다고 쳐도 유비 사후에는 공명이 북 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했는데 북벌이라도 성공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들어보세요. 공명이 출사표 내고 떠날 적에 유선에게 분명히 "간신을 멀리하십시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황호 같은 간신 환관을 총애했으니 촉한이 망한 것입니다.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그렇습니다. 저자에게 있어서 촉한 멸망의 원인은 군주의 무능과 잘못된 인사 때문"이어야"하지, 제갈공명의 무리한 북벌강행이라던가 잘못된 판단 때문"이어서는" 결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국어시간에 성경이 나왔다면?

지금까지 성서의 주석방법을 가지고 삼국지를 해석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똑같은 틀로 성경을(정확히는 창세기부터 열왕기에 이르는 율법과 역사기술을) 해석해보겠습니다. 열왕기도 삼국지처럼 비극으로 끝납니다. 바빌론에 의해 왕조가 끊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인물, 족장, 영웅, 왕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인물들은 단 하나의 기준으로 운명이 좌우지됩니다. "하나님 말씀(율법)을 잘 들으면 잘 나가고 안 들으면 신세를 망친다."


아담은 먹지 말라는 거 먹었다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라 홍수에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요셉은 노예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잘했더니 재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삼손은 이방여인과 놀아나더니 힘을 잃었고, 회개하자 힘을 되찾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관계가 좋을 때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렇지 않을 때 패배했습니다. 다윗이나 솔로몬도 말로가 안 좋습니다. 다윗은 비겁하게 부하의 아내를 취했고, 솔로몬은 이방신들에게 관대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통일왕조는 오래 못 가고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이후에도 왕들은 두 명 빼고 영 하나님 말을 안 들었고, 그래서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저자는 왕조가 끊긴 이유가 자신들의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고 의로운 나라를 만들지 못했다고 봅니다.


구약을 기록한 유대인들은 바빌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제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재력•기술력, 세련된 세계관과 제의는 포로 유대인들의 내면을 깊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더욱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더 이상 전통적 희생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제국의 종교와 문화에 흡수되지 않기 위해, 전통적인 제의 중심 종교에서 경전을 갖춘 율법 중심 종교로 신앙의 형태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전승으로 각기 보존되던 신화와 율법, 역사기술들을 하나의 책으로 편집·통합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을 공동체의 "거룩한 시간"으로 삼아, 함께 모여 이 경전을 낭독하고 해설을 듣는 정기 집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공유되는 율법적 윤리와 세계관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동질성을 지켜 나갔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구약의 역사서술을 포함한 모든 서사는, 저자가 "유대교적 율법 가치"를 기준으로 과거 사건들을 해석하고 재조명한 결과물입니다.

모세는 샘 터지게 한다고 바위를 두번 내리쳤다가 벌을 받게 되었다. 민수기 20장 1-13절

재미있는 건 모세입니다. 모세는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입니다. 압제받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혁명가, 규율(율법)을 세워 질서를 유지한 리더. 백성들이 철없는 불평을 해도 잘 달랬고, 하나님이 쟤네들 다 죽이겠다고 화내셔도 끈질기게 설득해서 백성들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세도 분이 나서 반항 한 번 했더니 하나님께 혼나고는 결국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 솔직히 성경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모세의 반항은 모르고 보면 못 알아챌 정도로 작은데 비해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간다는 처분은 과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국지 해석할 때처럼 저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죽은 건(촉한이 망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약속에 땅에 들어가서 정복전쟁을 완수하는 대체역사를 쓸게 아니라면(제갈공명이 위나라를 정복하는 대체역사를 쓸게 아니라면), 사실은 그대로 두되 비극의 원인이 하나님(선비)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자신의 불찰로 못 들어가는 걸로 해야 했습니다. 여하간, 이렇게 까지 해서 성서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하나로 압축됩니다. "하나님 말씀(율법•성서)을 잘 들어라. 그러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면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다"입니다.


저자가 구약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유대교 율법 질서를 바탕으로 한 이스라엘의 보존과 재건"입니다. 이러한 반성과 새 시대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었던 것이 구약이고, 독자들은 같은 마음을 품어 성경은 현재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한 경전이 것입니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해석방법으로 삼국지와 성경의 굵직한 서사를 해석해 보았습니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유대교(유교)의 원리로 정치하고, 하나님(유학자) 말씀을 잘 들어라. 만사형통하리라"였습니다. 저자는 꾸준히 반복해서 독자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자의 책에 대한 감상과 해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자가 그것을 간절히 바랬을 뿐더러,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의 공통의 인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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