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준다면_이종필<파반느>

by 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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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결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줄 수 있을까?

지난 2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변요한, 고아성, 문상민 주연의 영화 <파반느>다. 앞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탈주> 등을 제작하며 많은 팬들을 모아온 이종필 감독의 신작 <파반느>는 백화점 지하에서 일하며 만난 세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현실을 비관하던 각자가 서로의 삶에 들어와 어느새 내일을 기대해보는 이야기,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기다려 온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4위를 차지하며 개봉 이후 연이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파반느>는 박민규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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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반느>의 인물 그려내기

영화는 고아성이 맡은 ‘미정’과 문상민이 맡은 ‘경록’의 로맨스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둘은 백화점 지하에서 서로를 처음 마주한다. 그동안 못난 외모로 사회에서 외면당해온 미정은 다가오는 경록에게 거리를 두지만 경록은 미정이 세운 벽을 차근차근 무너뜨리며 다가간다. 둘 사이에는 명품관에서 일하는 직원 ‘세라(이이담)’라는 방해요소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등지고 사랑하는 사이에는 그 어떤 사회적 시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 사이를 이어주고 조력자 역할을 하는 ‘요한(변요한)’까지 세 사람은 내면의 결핍이 무색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평생 즐겁게 살 것만 같았던 세 청춘은 이후, 모종의 사건으로 경록과 미정이 멀어지며 요한 또한 내면의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배우 변요한이 연기하는 요한은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깊은 감정연기를 보여주는데, 이 부분에서 영화 <파반느>가 흔한 멜로물을 떠나 넓은 범주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극 중 요한은 기묘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돈 많은 백화점 대표의 숨겨진 핏줄이라는 말이 돌기도 할 정도로 다른 직원들이 지하에서 열심히 물건을 나를 때, 요한은 지하 구석 소파에 누워 빈둥거린다. 영화가 끝날 때 관객은 얼마간 요한의 과거를 짐작하고 이해해볼 수 있지만 여전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지점은 요한이라는 인물에게 어설픈 연민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감독의 연출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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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면

영화 <파반느>에서 우리가 주목해 볼 지점은 배우 고아성의 새로운 모습이다. 고아성 배우는 이번 작품으로 첫 멜로연기를 해보았다고 밝혔는데, 그동안의 내공 덕인지 혹은 이종필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인 덕인지 자연스러운 ‘미정’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종필 감독과의 전작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에서 고아성은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려내 큰 사랑을 받았다. 한 인터뷰에서 고아성은 이번 작품(<파반느>)에서는 진취적인 모습보다는 보다 소심하고 웅크려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했다고 말했다. 극 중 ‘미정’이라는 인물은 외모때문에 사회로부터 멸시당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고아성의 연기가 돋보이는 여러 장면이 있지만,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느린 템포의 춤곡 ‘파반느’를 감상하는 미정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무용수의 꿈을 꾸는 경록이 함께한다. 미정은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흉내를 내며 진지하게 음악을 감상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리가 볼 수 없는 미정만의 아름다운 세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겉모습과 가진 것으로 우위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미정만의 아름다운 세계. 그 세계 안으로 경록은 가까이 다가선다.


그들이 사랑한다고 해서, 인생이 아름답고 파란만장하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보이는 아름다움이 그리고 빛이, 그들을 그 시기 이후에도 영원히 살아가게 해줄 지 모른다. 영화 <파반느>를 두고 어떤 작품이냐 묻는다면 미정, 경록, 요한 세 인물이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비춘 빛이 어느 시기, 어느 자리에 있든 그들을 살게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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