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주는 남자
5월 14일은 로즈데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로즈데이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내게 로즈데이란, 뭐랄까, 저 먼 나라의 St. Patrick’s Day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기념한다는 건 알지만, 그 누군가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 그리고 그게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런 날.
오늘도 평소처럼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려던 참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운동 다 하면 알려줄래?”
“응, 이제 집 가는 중인데 무슨 일이야?”
“그럼 잠깐만 나올 수 있어?”
자기 전 통화도 종종 하고, 대화가 늘 재밌어서 꽤 괜찮다고 생각하던 사람 P.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르는 건 처음이라, ‘무슨 일이지?’ 싶었다.
“나 지금 막 운동 끝내서 땀냄새 나는데 어쩌지?”
“응, 코 막고 있을게~”
코를 막고 대화를 하려는걸 보면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구나.
그리고 집 앞에서 마주한 건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는 그.
“아니, 오늘이 장미 주는 날이란 걸 내가 알아버렸지 뭐야.”
말투도, 표정도, 그 순간의 공기도 이상하게 귀여웠다. 꽃을 건네받고, 우리는 아파트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근데 오늘이 장미 주는 날인 건 어떻게 알았어?”
“지하철 타러 가는데 꽃집에 로즈데이라고 써있더라고. 그 덕분에 R 얼굴도 보고, 손도 잡고, 너무 좋다!”
큰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마음이 괜히 따뜻했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순간이 있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예전에 연애를 하면서는, 종종 ‘해야 할 퀘스트’처럼 날짜를 챙기곤 했다.
연애를 시작하며, “어떤 날을 챙기는걸 좋아해?“, ”음, 생일, 크리스마스, 100일, n주년 정도?”
서로 기준을 정하듯, 이벤트를 줄 세웠다.
하지만 오늘의 로즈데이는 그런 ‘퀘스트’가 아니었다. 아마 P에게는, 그리고 대부분의 30대에게는. 누군가를 챙기고 싶다는 마음, 작은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는 여유. 그게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연애에 익숙해질수록 감정 표현이 줄어든다고들 한다. 나 역시 누군가와 사귀고 헤어지는 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기대보단 계산이 앞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작은 감동은 다시 어릴 적 감정을 꺼내오게 만든다. 설렘이란 게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걸, 다시금 알게 해준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하루가,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을 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다.
꽃은 며칠 안에 시들겠지만, 오늘의 공기와 말투, 그리고 마음은 오래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