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혼자 바에 가는건 좀 이상하지 않나?

데이트 한 번 없이 끝난 남자친구 이야기.

by Rr

브런치에 처음 작가 신청을 했을 때, 내가 쓰고 싶었던 주제 중 하나는 ‘삼십대 중반을 넘긴 여자의 연애 이야기’였다. 소개팅도 하고 미팅도 하면서 전보다 적극적으로 연애에 힘쓰고 있었기에,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나 역시 글을 쓰며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 주제로 글을 많이 쓰지 못한 이유는, 글의 소재가 되는 사람이 혹여 내 글을 보게 된다면 불편하지 않을까, 또 그게 예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 글쓰기를 간접적으로 허락해준 C와의 이야기를 기록해본다.


C는 소개로 만났다.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거절하려 했는데, 주선자가 그의 외모를 유난히 칭찬했고, 나도 이제는 ‘취향만 고집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만나보기로 했다. 학벌, 직업, 외모 모두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몇 번 만나다 보니 운동을 좋아하고 지적인 욕심도 있어 보여 ‘조금 더 만나봐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만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면서도 경상도 사투리가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는 건 조금 불편했다.


몇 차례 만남을 가진 뒤, 그는 내게 만나자고 했다. 나도 엄청난 호감은 아니었지만,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자’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게다가 글쓰기를 좋아해 책까지 냈다는 말에 흥미가 생겼다. 내가 브런치에 연애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걱정돼 못 쓴다고 하자, 그는 “그게 뭐 어때? 이름만 안 밝히면 되지”라며 웃었다. 덕분에 C에 대한 글을 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만나자는 이야기를 나눈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퇴근 후 운전 연수를 받고 곧장 집에 가려다, 주말 시작이 아쉬워 근처 바에서 칵테일을 두 잔 마셨다. 집에 들어가는 길, 그에게 카톡이 왔다. 집에 가는 중이라고 하니 “운전 연수가 늦게 끝났냐”고 묻길래, 끝나고 바에서 칵테일을 마셨다고 답했다. 친구랑 갔냐 묻길래 혼자라고 하니 돌아온 말은, “그거 너무 안 좋은 거 같은데?”였다. 이유를 묻자 “여자가 혼자 바에 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앞으로 안 그럴게”라고 답해버렸다.


그 주 주말, 그는 본가가 있는 지방에 출장이 잡혀 만나지 못했다. 나는 평소 카톡을 즐겨 하지 않지만, 연인이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맞춰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C 역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 비슷한 성향인가 싶었다. 그래서 아침 인사 이후엔 하루가 끝난 뒤에만 연락을 했는데, 그 주말 C의 태도는 조금 이상했다. 집안일을 하다, 책을 읽다 전화를 놓치면 그는 내게 “왜 연락이 안 되냐”고 했지만, 정작 내가 다시 걸면 받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에서야 통화가 되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있어 못 받았다고 했다. 내 연락을 받지 않은건 이해가 되었지만, 정작 본인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나만 탓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며칠 뒤 평일 저녁, 테니스 레슨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통화를 했다. 그가 저녁은 먹었냐기에, “집 근처에 라면이 정말 맛있는 술집이 있는데…”라고 말을 꺼내자 그는 곧바로 “아니 또 술 마셨어? 왜 그래?”라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아니, 그 집은 라면 때문에 가는 거야. 오히려 그 곳에서 술은 처음 갔던 날 한 번밖에 안 마셔봤고, 라면만 먹으러 자주 가는 곳이야. 오늘은 테니스 레슨이 있어 술 마실 시간 없던거 알잖아.“ 라고 설명했지만, 마음은 또다시 무거워졌다. 그래도 ‘알아가는 과정이니 이해하자’며 스스로를 달랬다.


답답한 마음에 친한 남자 동료에게 사내 메신저로 상담을 했다. 결혼한 유부남이라 연애 문제를 객관적으로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차라리 그 분이랑 솔직하게 이야기해봐. 의외로 잘 풀릴 수도 있고, 아니면 빨리 정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라 조언했다. 그의 말에 힘입어 나는 결국 C에게 물었다.


“오빠는 내가 술 마시는 게 그렇게 불편해?”

“술의 장점도 있지. 낯선 사람들 빨리 친해지게 해주니까. 그런데 그거 말곤 건강에도 안 좋잖아. 왜 굳이 좋아하는 거야?”

“내 취향으로 인정해주면 안돼? 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술 좋아한다고 했잖아. 와인 자격증도 땄다고 말했구. 오빠가 술 안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마시는 게 불편하다면 애프터 안 하겠지 싶어 일부러 말했던 건데.”

“난 네가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잔 정도 하는 줄 알았지. 여자 혼자 바 간다는 얘기는 없었잖아.”

“난 그게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어. 그럼 내가 집에서 혼자 마시는 것도 싫어?”

“회식 자리에서 마셨다든가, 친구랑 와인 한 잔 하는 건 괜찮아. 근데 바에 혼자 가는 건 좀 아니지. 생각해봐, 내가 발레를 한다고 해.”

“발레가 왜?”

“여자들 가득한 데서 남자가 발레 배우면 이상하잖아. 남자들 많은 바에 여자 혼자 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나는 오빠가 발레 좋아서 배우면 응원할 것 같은데. 그리고 바에도 여자들 많아. 그게 내 취향인데 이해해주면 안 돼?”

“연애만 할 거면 몰라도, 결혼상대로는 별로지. 너 전에 바 안 가겠다 했잖아. 꼭 가야겠어?”

“가정을 이루면 못 갈거고, 지금도 오빠가 그게 너무 싫다면 안갈 수는 있어. 전에 연애할 때는 남자친구랑 둘이 술 마시는 게 제일 좋아했어. 하지만 오빠가 술 안 좋아하니까 혼자 간 거야. 술 마시고 실수하지도 않고, 연락이 안되지도 않을건데. 내 취향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네.“

“그건 네가 날 덜 좋아해서 그래. 나라면 연인이 싫다는 건 절대 안 할 텐데, 넌 혼술을 계속하고 싶다는 거잖아.”


그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의 긴 카톡이 도착했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성숙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듯한 말투였다. “좋은 부분도 많았지만 정서적인 연결이 잘 맞지 않는다”,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가 맞는 것 같다”는 문장들. 언뜻 보면 상대를 존중하며 예쁘게 마무리하는 것 같았지만, 내겐 다르게 느껴졌다.


연애를 시작할 땐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쉽게 헤어지지 말자”고 해놓고, 막상 이견이 생기자 가장 먼저 헤어지자는 쪽은 그였다. 본인은 반나절 이상 연락을 받지 않으면서도, 내가 전화를 놓치고 한 시간 만에 콜백하면 “왜 연락이 안 되냐”고 했고, 혼술은 문제 삼으면서 자기 기준만 고집했다. “여자가 혼자 바에 가는 건 이상하다”라며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지으려는 태도는 더 불편했다. 마치 어떤 행동은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안 된다는 식으로, 시대착오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느낌이었다.


카톡 속 그는 사람 좋은 척했지만, 결국은 이중잣대를 가진 사람이었다. 오히려 빨리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보기로 한 뒤 평일 저녁 카페 데이트 외에는 제대로 된 만남조차 없었던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내게 남은 건 씁쓸함보다는 확신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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