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요 덮어주는 사람

스타벅스 베어리스타 케이크는 너무 귀여웠다.

by Rr

예전에 짝사랑을 꽤 오래 한 적이 있다.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진, 이십대 후반의 어느 삼월. 운동하던 곳의 회식 자리에서 처음 제대로 말을 섞었다. 내가 외투를 떨어뜨렸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주워 웃으며 건넸다. 아마 나는 그때, 그 웃음에 반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썸을 탔다고 생각했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꽤나 다정한 사람이었고, 나를 친구로 대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너 달 동안 거의 매 주말을 함께 보냈다. 둘이서 달리기를 하고(이제와 고백하자면, 난 러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의 취미라니까 같이 했지. 그렇게 마음이 과다하여 나혼자만의 썸이 끝난 뒤에 풀코스까지 완주하고.) 밥을 먹고, 가끔은 영화를 봤다. 그 시간이 계속되었는데도 관계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결국 썸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연애에 익숙하지 않았다. 남자가 먼저 다가오고, 먼저 좋아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막연히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마음을 꺼내는 일은 더 어려웠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성숙한 태도라고 착각했고, 망설이다가 먼저 선을 그었다. 그렇게 우리는 멀어졌다. 그 이후로도 나는 한동안 그를 마음속에서 놓지 못했다. 왜 그때 말하지 못했을까,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렇게 살다 보니 그의 존재도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 뒤로는 인스타그램으로 몇 달에 한 번 정도 좋아요를 누르거나 디엠 한두마디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정말 오랜만에 그와 커피를 마셨다. 그는 여전히 다정했다. 단지 커피 한 잔일 뿐이었는데 집 앞까지 데리러 왔고, 차에 타자마자 담요를 무릎 위에 덮어주었다. 그 순간, 내가 왜 그를 좋아했는지가 또렷이 떠올랐다. 케이크를 나눠 먹다 숨어 있던 딸기를 발견했다며 내 포크를 가져가, 아무렇지 않게 딸기를 집어주던 모습에서도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근황을 나누고, 지난 시간을 흘려보내듯 이야기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는 아쉬웠다. 하지만 그 감정은 미련이나 기대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를 다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만났다는 핑계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때와 지금은 너무 다르고, 우리는 이미 각자의 시간을 충분히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각자의 시간을 살겠지.


다만 오늘의 만남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네. 그를 좋아하던 나도 그립고. 좋은 사람 짝사랑 잘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