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인간실격

by 백아절현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승이를 따라 12월 31일 연말에 성당 미사에 따라가보았다. 내게 없던 일말의 성스러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간의 죄악을 씻어내는 것까지는 욕심이고, 한층 차분해지고,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했다. 그리고 미사 중에 유난히 내 마음을 후벼파던 단어 하나가 있었다. 바로 '유혹'이었다.


난 인간관계가 좁다. 소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녀석이 두 명이 있다. 하나는 성호, 또 다른 하나는 귀현이다. 귀현이가 최근에 소설 '인간실격'을 접하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순배, 인간실격 읽었는데 주인공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unlucky 임배순이던데? 그 놈 주변에는 잔소리 해주는 놈이 없고, 옳은 소리 해주는거 없다는 것 말고는 순배 니랑 똑같던데. 니도 일기 써봐. 그리고 책 내봐. 인간실격 그 자체던데?"


연말을 맞이해 누나와 누나 남자친구, 그리고 누나의 가장 친한 동생 혜련이와 서울에서 발레 공연을 본 후 넷이서 술을 한 잔 했다. 거기서 난 술에 거나하게 취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내뱉은 말이 있었다. "혜련아, 내 모든 행동의 동기는 외로움이야. 난 심심함은 잘 못느껴. 혼자서 시간 잘 보내. 근데 그 끝엔 늘 공허함이 있고, 외로움이 있어. 심심하진 않아도 늘 외로워."


2025년 말, 일주일 상간에 일어나고 주변인들과 나눴던 대화들이다. 종합해보니, 난 외로운 인간이고, 누군가의 눈에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실격된 놈이었고, '유혹'에 꽤나 약한 인간이었다. 유혹에 그리도 쉽게 흔들리는 근원에는 외로움이 있었고, 그 결과는 '인간실격'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은 무엇인가. 어떠한 지표가 있을 것이다. 가로축인 수평선이 있을 것이고, 세로축인 수직선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평, 수직선의 어딘가 아래, 혹은 어떤 면적의 안에 속하면 흔히들 말하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영장류일테고, 그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낙오자 혹은 실격자일 것이다.


성당에서의 미사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주승이와 대화를 나눴다. "주승아. 내가 아까 그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 아니 성직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지.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해주소서'. 그 말을 듣는데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알아? 내가 최근에 어떠한 유혹에 빠진 적이 있냐하는 것이었어. 근데 이 유혹이란 것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내가 유혹의 경계선에 가지 않아서가 아니야. 나는 알아. 분명히 나는 누군가에겐 유혹이라고 불릴 수 있는 그런 상황에 놓여있었음에도 유혹이라고 느끼지 못한거야. 선이 희미해져버렸어. 보통 사람은 유혹을 이기기 위해 자기 자신과 분투하고 경계선에서 넘을 듯 말듯 배회하고 유랑할테지만, 어느샌가 나는 그 선이 희미해져버렸어. 첫단추가 어려워. 그 선을 넘어버린지 오래됐어. 두 번째부터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 '왜 안돼? 하면 되지' 하고 그 생각조차 일축해버려."


내겐 삶의 일관성이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인간은 어떤 자극을 느끼기 위해선 그들의 신경체계가 일정값의 역치값을 넘어서야한다. 언제부턴가 내 자극의 역치값은 내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벗어나버린 것 같다고 느껴졌다. 분명히 내 손아귀에서 핸들링이 되던 녀석이었는데, 특정 시기를 지나오면서 요원해졌다. 현재 내 상황과 조건에서 누릴 수 있는 도파민과 쾌락의 층위에선 내가 만족을 못한다. 큰일이다. 결국엔 쾌락의 쳇바퀴를 열심히 달리는, 목적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는 우리집 햄스터 '콩이'와 다를바가 없게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내 문제를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옳지 않은 일임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음에도 선의로 포장을 하기도 하며, 내 상황을 단순화해버린다는 데에 있다.


내 감각은 여전히 꿈틀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고 있다. 하지만 감각에만 의존한 삶은 파국임을 안다. 구원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비루하다. 남루하다. 지금 내 모습이 그러하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누군가에게 말하기엔 부끄럽다. 그래서 지금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하는 이 순간에도 나는 온전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누군가가 나의 치부를 알게 될까봐.


고독한 인간을 보고 있으면 내 고독이 일순간은 위로가 된다. 12월 31일, 영화 '해피투게더'의 양조위를 보고 있자니 "허.. 참.. 저 인간은 얼마나 마음이 황폐하고 외로울까?"하며 비겁하고 저열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넨다. 고독이 날 잡고 뒤흔들 때면, 외로움이 내 귀에 고함을 칠 때면, 난 나보다 더 외로운 영화 속의 인물을 찾는다.


오늘도 나는 부끄럽게 한 해를 마무리했고, 부끄럽게 한 해를 시작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