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게 비지떡?
나는 확실히 촌 여자이다. 촌 음식이 좋다. 가끔 비지찌개가 먹고 싶다. 두부의 부산물인 콩 찌꺼기, 잘 띄운 비지를 바글바글 끓여놓으면 밥 한 그릇이 무색하다.
명절 때나 어른 생신이 되면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다. 일손이 한가하거나 반찬이 마땅찮을 때도 두부는 상에 올랐다. 할머니는 콩을 하룻밤 불려두었다가 맷돌에 갈았다. 암・수 맷돌이 돌아가면 그 사이로 갈린 콩이 거품처럼 흘러내렸다. 교통이 좋아지고부터는 방앗간에 가서 콩을 갈아서 왔다. 사랑채 가마솥에 불 때랴, 불 조절해가며 콩물 저어주랴, 끓인 콩물을 자루에 넣어서 짜랴, 다시 솥을 헹궈내고 건더기와 분리된 콩물을 끓이다 살살 달래가며 간수 질러 순두부 만들랴, 반듯한 사각 틀에 순두부를 퍼 담아 판자로 눌러서 두부 만들랴, 그 수고로움은 온종일이었다.
숫물은 따로 보관했다가 된장이 되직하다 싶으면 부어서 저어주고, 콩물과 분리한 비지는 짚 망태기에 담아 담요를 씌워 뜨끈한 구들에 하룻동안 띄웠다. 쿰쿰한 냄새가 진동하면 담요를 걷어 개봉했다. 뽀얀 김이 술술 올랐다. 잘 띄운 비지는 깊은 맛을 낸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두부를 직접 만드는 가게나 두부 음식 전문점에 가면 생비지를 공짜로 나누어 준다. 공짜 맛이 오죽할까, 괜히 양념만 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막상 가져와도 머뭇거린다. 우리 속담에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얻어 온다'고 했다. 원뜻은 말만 잘하면 덕을 본다는 것이지만, 문법상으로는 비지를 폄하하고 있다. 물론 콩을 갈아서 액기스를 뽑아 굳힌 단백질 덩어리인 두부와 그 부속물인 비지와는 가격에서 차이가 난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가격이 싸니까 품질도 당연히 떨어진다는 투로 흔히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품질이 형편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바뀌어버렸다.
충북 제천의 봉양 마을과 백운마을 사이에 박달재가 있다. 옛날에 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고개다. 산골 마을에는 주막이 있어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들렀다. 주모는 하룻밤 묵고 떠나가는 선비들에게 무언가를 싸서 주었다. "싼 물건이 무엇입니까?" 선비가 물으면 "싼 것은 비지떡입니다."라며 주모가 말했다. 생비지는 빨리 상하지만 띄운 비지는 발효가 되어 쉬이 상하지 않는다. 띄운 비지에 밀가루를 넣어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만들어 찐 것이 비지떡이다. 요즘은 별미로 비지에 쌀가루를 넣어 기름에 지져서 먹지만 예전에는 쌀이나 기름이 귀해서 통상적으로 김 오른 솥에 쪄서 먹었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띄워서 만든 비지떡은 비록 하찮은 것이나 가난한 선비의 요깃거리로는 그만이었을 것이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비지떡일 뿐입니다'라며 겸연쩍어하던 주모의 마음씨가 얼마나 정겨운가. '싼 게 비지떡이다'라는 말은 변변찮은 음식이지만 나눠 드리고 싶다는 겸손한 배려였다.
요즘은 일부러 띄운 비지찌개를 찾아다니는 미식가들이 있다. 두부보다는 영양적인 면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비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이어트 식품으로는 더 주목받는 식품이다. 돼지고기와 신김치를 넣어서 끓여도 맛있고, 콩나물을 넣어도 좋다. 띄운 비지 자체만으로도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싼 게 비지떡'은 싸구려가 아니고 인정인 것이다.
Tip: 띄운 비지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재래시장이나 좌판의 두부 파는 곳에 가면 눈에 띈다. 생비지가 있으면 청국장 띄우듯이 발효시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