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7년 된 소파입니다.
이젠, 갈 때가 됐나 봅니다. 가족들과 함께 한 세월이 17년이 넘었으니 꽤 오래됐네요. 군데군데 꺼진 자리며 흠집을 보면 언제까지 함께 하려나 가끔 걱정이 됩니다. 그럴 때면 아직은 가죽도 제법 좋은 데다 프레임이 튼튼하니 쓸 만하다고 위안해 봅니다.
공장에서 나와 반짝거릴 때 우리 가족을 만났습니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가죽을 기운 명품은 아니지만 4인용의 넓고 푹신한 자리에 연신 앉아 보며 좋아 하더군요. 그때부터 가족들은 늘 제 곁에 모여 웃고 떠들다 헤어지고 다시 모였습니다. 꼬맹이 둘이 있는 집이라 늘 시끌벅적 부산합니다. 두 녀석만으로도 우당탕인데 우르르 친구들과 몰려올 때면 엄마의 하이 톤과 아이들의 울고 웃는 소리에 정신이 없더군요.
이집 막내는 앉으라는 자리에는 안 앉고 노상 등받이 위를 밟고 다닙니다. 누워서 뒹굴고 팔짝팔짝 뛰는 건 기본이죠. 방문도 타고 올라가는 걸 보며 우리 모두는 두려움에 떱니다. 이번엔 어떤 물건이 아작이 날까? 부서져서 쓰레기로 사라진 친구들. 빗자루도 부서지고 선풍기도 망가지고, 그렇게 다들 떠나더군요. 그래도 왁자지껄 재밌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날아다니던 아이가 말없이 앉아서 티비를 보더니 점점 식구들이 모이지 않더군요. 아이들은 뭐에 그리 바쁜 지 노상 가방을 메고 나가 있고 집에 들어오면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연신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였지만 돌아오는 건 짧고 날선 대답들. 닫힌 아이들 방문 앞에 선 엄마의 쳐진 뒷모습을 보며 조마조마 하던 날들입니다.
엄마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곤 하던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그 놈이 닫힌 방문을 긁어대면 문이 열리고 혼자 부지런히 두 아이의 방을 오가는 사이 저는 혼자 있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시끌벅적하던 시절은 가버렸구나 싶었죠. 과묵해진 아이들과 수척해진 엄마를 보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랏? 강아지가 한 마리 더 생겼네요. 게다가 이 놈은 제 집을 놔두고 꼭 내 위에서 놉니다. 종일 지정석으로 자리를 잡았죠. 원래 있던 녀석과 다르게 덩치도 좀 있는 데다 곰탱이처럼 진득한 편이라 저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쩌다 강아지랑 한 몸이 되었는지. 저야 모 힘이 있나요.
그런데 또 이놈이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더군요. 아이들을 챙기던 작은 개랑 달리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데도 이사람 저 사람이 오며 가며 부비고 껴안다 가고, 옆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하나 둘 모이는 가족들, 다시 높아진 엄마의 하이 톤에 장난스레 대꾸하는 머스마들, 그리웠습니다. 이젠 아빠보다 더 커버린 아이들이 강아지들과 함께 앉아 있으면 마음까지 가득 찹니다. 거의 누운 채로 티비를 보며 웃고 떠드니 다시 예전 같아서 뭉클해지고요. 아빠가 있는 주말이면 사람 셋에 강아지 둘이 서로 끼여 앉으며 좁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제 입 꼬리는 절로 올라갑니다.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네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무거운 몸을 사다리차에 싣고서 아찔한 높이로 오르내렸는데요, 정작 무서운 건…….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버리고 가나 싶으면 데리고 가길 네 번. 그럼, 그럼. 아직은 쓸 만 하잖아. 뿌듯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앉는 자리에 흠집이 생겨 예쁜 가리개도 필요하고 군데군데 꺼진 데를 보니 자신이 없네요. 식구들은 3월에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새 아파트에 원하던 곳이라 모두들 들떠 있는 것 같네요. 아빠는 이참에 낡은 살림들은 모두 바꾸라고 하는데, 그럼요 암요.
이젠, 갈 때가 됐겠지요. 17년이면 소파로서 괜찮지 않았나 싶지만 갈 때 가더라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몸에 꼭 맞는 익숙함으로, 기꺼이 저를 내어 드릴게요. 그러니 생각해보세요. 경제도 어렵고, 저 아직 쌩쌩한데 한 번 더 데리고 가는 거, 나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