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반,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날씨는 심상치 않다. 오늘도 어제처럼 꽤 뜨거운 날이 되리라. 6월 하순의 태양이 쨍하니 맹렬한 게 섣부른 젊은이 같다. 아직 여름은 갈 길이 멀 텐데, 그 위세는 해마다 점점 더 대단해진다.
“길상사라고, 내가 가고 싶던 절이 있어. 서울 북쪽에 있는데 나들이 삼아 같이 갈래?”
동네 친구의 꾐에 단박에 오케이를 했다. 비록 전날 가벼운 트레킹 약속이 있지만 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역시나 세상사는 늘 예상과 달라서 땡볕에 이 만 오천 보를 걷는 무리한 트레킹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8시 서울로 향했다. 버스와 지하철로 두 시간을 보내고 절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10시 반. 해는 지글지글 예열 중이다.
길상사는 성북동 언덕배기에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올라가다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절 입구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가 서울 주택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 속에 고즈넉한 건물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길상사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었다. 함께 온 친구가 설명해 준 이야기를 들으니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로웠다. 백석 시인과 서로 사랑했던 기생이 있었다. 둘은 이루어질 수 없었고 아픈 시대로 말미암아 각자 남북으로 헤어지게 되고 여자는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차려 엄청난 재력을 갖게 된다. 그런 세월을 보내던 중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재산을 스님에게 헌납했다. 스님은 그녀에게 ‘길상화’라는 이름을 주셨고 대원각은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다.
헌납한 재산은 천억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일천억 원의 재산이 백석 시인의 시 한 줄만 못하다"² 고 했으며, 어떻게 전 재산을 내놓을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을 만들어서 드려야 하는 데 있는 것을 내놓는 것이니 별 의미가 없습니다."³라고 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놀라운 분이다.
너무나 가난하여 기생이 되었고 문학과 예능에 능했으며 백석을 만나 사랑했으나 기생과의 연애를 알게 된 시인의 부모는 백석을 서둘러 혼인시키고 둘은 헤어져 평생을 보지 못한다. 사업이 잘 돼서 큰 부를 이루었지만 결국은 무소유를 택한 그녀. 기나긴 세월이 흘러도 내심 기다렸던 님을 만날 수 없음에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꼈던 것일까? 소박한 공덕비 앞에 있는 그림 속의 그녀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으니 그 많은 재산 다 뭐 할 거야. 다 쓰지도 못할 텐데, 헌납할 수도 있지.”
그래 말해놓고 보니 부끄럽다. 내가 그런 싱글이래도 평범한 가정을 부러워하며 내 처지를 비관하고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뚝뚝 흘린 채, 이럴수록 돈이 더 필요하다고 욕심을 부렸을지 모른다. ‘무소유’는 아득한 천상의 경지이나 욕심은 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반성해 본다.
우연하게도 최근에 백석의 시가 지금의 시대에도 통하는 좋은 시라는 추천을 받고 시집을 읽고 있었다.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기자를 하고 시도 쓰니 영화에서 보던 모던보이인가 싶었는데 정작 시는 토속적인 분위기로 따뜻해 보였다. 백석 시인이 길상화를 위해 썼다는 유명한 시의 구절을 읊조려 본다. 천억도 이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었는데 백두산도 품을 것 같은 그 넓은 기개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¹
1. [출처] 《백석 시집 정본》 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2. [출처] 시인 백석과 길상사 이야기|작성자 치치
3. [출처] 시인 백석과 길상사 이야기|작성자 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