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인간’이 재미있다는 추천을 받았다. 다른 이는 소장할 정도의 책은 아니라고, 딱 대중적일 뿐이라고 했다. 읽고 싶은 생각에 오랜 시간 해 온 독서 모임에 이달의 책으로 추천했다. 다들 생각이 어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인기가 있다니 응당 추천할 만하다.
내가 하고 있는 독서 모임은 만들어진 지 15년 정도 됐다. 사람이 모이질 못했던 코로나 시절의 삼 년을 뺀다 해도 제법 긴 세월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하던 모임이 이제는 간신히 독서를 끼워 둔 친목 모임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책을 읽고 논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요즘에는 모임에서 정한 책을 사는 일이 드물다. 다들 도서관에서 빌려 보느라 예약이나 상호대차를 신청해야 하는데 어떨 때는 우리 회원끼리 경쟁을 해야 한다. 이번에도 나는 예약이 늦어서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회색 인간’을 빌려야 하는데 다 예약 중이라 큰일이다.”
작은 아들이 눈이 똥그래서 묻는다.
“그걸 왜 빌려요? 집에 있는데.”
“오잉? 그게 왜 집에 있지?”
작은 아들 방을 따라가 보니 책꽂이에 ‘회색 인간’이 꽂혀 있고 옆으로는 그 작가가 쓴 책이 쭈르륵 6권이나 있었다.
“이걸 다 샀다고?”
“군대에서 ‘회색 인간’을 읽고 너무 재밌어서 이 사람 것 여러 권을 쭉 사서 읽었어요.”
그렇군, 요즘 애들이 우리 집에 둘이나 있는 걸 잊었네.
책은 휘리릭 잘 읽혔다. 짧은 단편이 20여 개. 대부분 SF로 미래의 기술, 사회, 우주, 인간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며 기발하거나 반전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짧다 보니 촘촘하고 내밀한 구성은 없는 대신 간결한 설정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좋았고 몇몇 글들은 여운이 남는 생각거리도 주었다. 그런데 내가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 책의 추천사였다.
이를 보면 저자는 평생 읽은 책이 몇 권 없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주물공장에서 일한 지 십 년 쯤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6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들이 인기를 얻고 이 글들을 모아 2017년 ‘회색 인간’으로 출간한 것이다. 글을 쓰는 법을 따로 배운 적이 없고 그저 올린 글에 달린 댓글에 용기도 얻고 수정도 해 가며 1년 6개월 동안 300편의 글을 썼다고 한다. 300편이라니, 이틀에 한 편씩 써도 모자라는 글들을 고된 노동을 해가며 올렸다는 데 그 재능과 성실함과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 요새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구나, 아니 이 또한 팔 년 전이니 요새는 아닌가?
드디어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다. 다들 어떻게 읽으셨는지.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는 분들과 공상과학소설은 취향이 아니라는 분들과 상상력은 놀랍지만, 개연성이 떨어지는 내용도 있다는 의견들이다. 우리 아들 같은 이 삼십 대 남자애들이 좋아할 만하다는 결론도 나왔다.
개연성이라......이것도 결국은 다름의 문제로 보인다. 촘촘한 그물을 짜듯 이야기를 서서히 빌드업시켜서 마지막에 화려한 십 분의 클라이맥스가 있다면 예전과 달리 요새는 앞부분을 요약본으로 본다. 그런 아들에게 진득하게 기다리라고 하면 그건 가심비에 맞지 않단다. 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 만족감이 떨어진다나, 가심비가 제일 중요한 세상이다. 원체 많은 정보가 줄을 서고 있으니 봐도 봐도 새롭게 올라오는 걸 따라잡기 어렵다. 그러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혹자는 글이 깊이가 없거나 문학적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할지 모르겠다. 시대적인 유행 작이라고. 어떤 비평가가 어떤 글을 썼는지 아는 바 없지만 내게는 좋은 소설이었다. 자기 삶이 바탕을 이루고 상상으로 만든 그 짧은 이야기 속에 비판도 있고 해학도 있고 재미도 있다. 다만 영역이 공상과학으로 한정된다면 특정 계층의 수요만 있으리라.
그 수요의 당사자인 둘째에게 묻는다.
“그런데 그 나머지 여섯 권도 다 미래 소설이야?”
“네, 왜요?”
“비슷비슷한 걸 왜 계속 사냐?”
“재밌으니까요.”
그래, 그렇겠지. 너무 당연한 걸 물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