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주의자

by 고미

오늘도 난 생닭을 주무르고 있다. 튀어나온 껍질을 잘라주고 토막들 사이 노란 지방은 손으로 잡아뗀다. 목이 좀 징그럽게 생겼지만 뭐 이정도야 별 감흥도 없다. 생선의 내장을 쭉쭉 잡아 빼거나 전복의 입을 빼내고 등갈비의 막을 벗기는 일 등등 식재료를 준비하다 보면 손으로 별걸 다 주무른다. 이런 게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가끔은 쓸쓸하다.


이렇게 준비해서 만드는 닭볶음탕에서 정작 내가 먹는 건 감자뿐이다. 다른 생선이나 고기반찬에서도 함께 지지고 볶는 야채들은 늘 내 차지가 된다. 어릴 때부터 고기종류를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안 먹다시피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는 고기 먹을 일이 많다 보니 그저 참여하는 정도로 먹어 왔다. 채식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채식으로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나이지 싶다.


그런 내가 거의 매일 한 끼 정도는 고기를 준비한다. 어제도 큰 아들과 마트를 가서 장을 한 가득 보았는데 고기 종류가 반이었다. 우리 집 반찬은 삼겹살, 제육볶음, 소고기 불고기, 등갈비 찜, 구워먹는 소고기, 닭볶음탕, 닭갈비 그러면 다시 삼겹살로 사이클이 돈다. 가끔 수육을 넣거나 생선조림을 넣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하다. 이런 메인 요리만 집중 공략하는 아들들은 마른 반찬도 야채도 잘 먹지 않는다. 따라서 고기는 매번 많이 해야 하고 다음날 눈 떠 보면 다시 해야 한다.


메뉴가 지겨울 것 같은데 고기는 늘 맛있나 보다. 예전에는 큰 아들에게 야채를 좀 먹으라고 잔소리도 했지만 아들 왈, 그럴 필요가 없단다. 고기에도 충분히 비타민 등이 있다면서 맛없는 야채를 굳이 먹을 이유가 없다고. 우유를 먹으라 하면 우유에는 칼슘은 적고 지방만 많아서 이 또한 안 먹어도 된다고. ‘그래 어련하시겠어요.’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은 부모 마음을 배부르게 한다. 가끔은 아들들에게

“ 엄마는 초식공룡인데 육식공룡들을 낳았나봐.” 라며 웃고는 했다. 요즘 세상은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눈이 막 돌아갈 지경이고 티비며 유투브며 먹방으로 끝없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 되어서 너무 열심히 먹다 보면 비만과 뱃살을 걱정해야 할 아들들에게 가끔은 쓴 소리도 한다.

“엄마는 필요이상으로 음식을 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정작 육식동물들도 잔인하게 사냥해서 배를 채우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죽이고 먹고 그러지는 않잖아. 동물을 식량으로 하는 거에도 기준과 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꺼낸 얘기가 꼬리를 물고 길어지는가 하면 난상토론이 되어 전혀 엉뚱한 결말로 끝나기도 한다.


오늘도 닭 두 마리에 감자는 고작 두 알을 넣고 바글바글 닭볶음탕을 끓여 놓았다. 밥도 금방 해 놓은 게 있으니 아들 둘이서 차려 먹으면 되겠다 싶어 편하게 저녁 외출을 하고 들어와서 부엌을 살펴본다. 밥 먹은 그릇들은 그냥 쌓여 있고 냄비에는 작은 닭 조각들 몇 개와 감자 두 알이 쓸쓸히 남아 있다.

‘이 녀석들, 감자는 건들지도 않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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