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엄마

by 장판

6급도 엄마를 하고 5급도 엄마를 한다. 엄마가 되는 것에는 특별한 능력이나 조건, 시험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약간의 생물학적 신체 조건이 필요했겠지만 그 마저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거의 운명적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즉, 럭키하면 엄마가 ‘되버리는’ 것이다. 길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간 엄마 경력으로 보자면 자녀가 커갈수록 부모의 역량도 커진다. 아니, 커져야만 한다! 아이가 자랄수록 눈앞에 떨어지는 미션들이 고도화,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생애 최초 시기에는 단순 물리적, 시간적 지원이 필요했다면 다음은 심리적 지원이다. 사춘기에는 초고도 심리 분석 지원도 필요하다고 하며, 그 후에는 막대한 사교육비로 요약되는 경제적 지원이 핵심이 된단다. 최근에는 이 경제적 지원 규모가 한도 끝도 없이 커져 집집마다 어떻게들 버티는지 모를 정도의 막대한 가계 부담이다. 주변 주임들 대부분이 급여는 통장을 스쳐(?) 은행에, 이런저런 수당들은 모두 학원으로 빠져나간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고단한 노동의 시기가 끝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우리의 퇴직은 빠르지만 자녀의 졸업, 취업은 늦어진 만큼 퇴직 후에도 한참을 더 물적, 심적 지원을 해야 한다니 내 생계와 자식의 앞날을 같이 고민해야 할 시기가 도래할 뿐이다.

현재 개인적으로는 물리적 지원에서 심리적 지원으로 비중전환되고 있는 단계다. 비교적 털털한 편이라 마음을 놓고 있었건만 그래도 딸은 딸이었는지 최근 이런저런 투덜거림과 찡찡거림에 감정을 담아 반복하는걸 보니 조만간 초고도 심리 분석 지원을 요할 듯하다. 아무튼 이 모든 새로운 미션들이 아무런 자격 없이, 오로지 신체 조건 충족(내 경우 겨우)만으로 눈앞에 놓인 것이니 어느 때는 좀 잔인하다 싶은 생각도 든다. 만약 이 모든 숙제들을 알았더라면 아무도 감행할 수 없었을 것이 출산, 그리고 양육이 아닐까.


자녀를 낳아 키우며 체감하는 것 중 하나는 나의 개인적, 성격적 약점이 자녀 양육에도 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커뮤너티 생활.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이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형성, 유지도 생계를 위한 것으로 아슬아슬, 꾸역꾸역 하고 있는데 아이를 키우기 위한 새로운 인간관계 라니.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변을 보면 내 자식의 친구 엄마, 반모임 엄마, 주일학교 엄마 등등 각종 그룹별 엄마 모임을 꾸리고 주도하는 여성들은 한 결같이 에너제틱하고 친절하며 호기심이 많고 즐겁다. 반면 아무리 봐도 나는 그들과 정반대 방향에 서 있는 것만 같다. 평상시 메마른 정서와 성격 탓에 친구도, 의지처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자녀 양육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미션과 테스트의 막막한 순간에 위로와 공감을 받을 곳도 없다. 친정 여동생과 거의 유일한 고교 동창 하나를 제외하고는 워킹맘(그러고 보니 그들도 각기 다른 형태지만 소위 나랏밥을 먹는 공공기관 종사자긴 하다)의 속사정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제 아무리 제 갈길만 가는 독고다이 체질이라 해도 때때로 심리적 지지와 응원은 필요한 것인데 엄마로서 외로울 때, 더 외로워져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보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부분은 나의 성격적 약점 탓에 딸의 관계 형성도 기회가 적다는 것, 그리고 관계에서 파생될 간접교육의 기회가 부족해 폭넓은 아이로 자라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나 자신과 엄마로서의 희생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요사이 딸에게 가장 마음 아픈 부분이다.


신기하게도 이 모든 양육 전쟁에서 아빠들은 한결같이 예비역을 맡고 있으며 참전의 마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빠라는 직책의 사람들은 대개 물리적, 금전적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주 양육자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잠시(단 1시간조차도!) 그 역할을 대신하기에도 부족하다. 맡겨 놓고도 온갖 잔소리를 퍼붓거나 사전 정보를 충실히 주어야만 최소한의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으니, 실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존재들이라 하겠다. 그러니 공동육아니, 맞벌이니 하는 단어들로 마치 부모 모두가 공동 부담과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일컬어지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런 말들은 앞으로 이 사회가 나아가고 지향해야 할 바가 그렇다는 것뿐 오늘 나의 24시간에서는 전혀, 조금도 그렇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것은 남편들의 의지나 관심 부족의 문제라기 보다는 30년 이상 살아온 삶의 방식, 관심도, 세계관 같은 것의 엇박자가 아닐까 한다. 오랫동안 남의 일, 혹은 남의 집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의 자잘한 것들이 아빠가 되었다는 벅찬 기분으로만 내 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모두 주양육자인 엄마의 영역에 이미(!) 들어와 있다. 이를 테면 워킹맘의 머릿속에는 늘 나와 자녀, 둘의 시간표가 돌아간다. 즉 한쪽 섹터에는 (당연히)오늘 내가 참석하거나 주최해야 할 회의와 나가야 할 출장이 있다면 다른 섹터에는 아이의 차량 픽업 시간과 방과후 수업 시간, 지나갈 동선 등이 놓인다. 여기서 파생되는 것들이 숙제와 준비물이며 조금 더 나아가자면 주말 계획과 모임, 행사 같은 것들, 그리고 초대되어 있는 단체방과 이알리미 등등 학사 행정 소식을 받는 어플을 이용한 각종 알림들이다. 써놓고 보니 더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아무튼 무릇 집 밖으로 나서는 자녀가 생기면 반드시 어느 정도는 소화해야 할 것들이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때때로 내가 엄마로서도 6급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좀처럼 역량이 강화되지 못한채 주어진 엄마 노릇만을 겨우겨우 수행하고 있는 기분. 업무에 필요한 창의력과 입체적 대응력, 보고서 작성 및 대면 보고 능력, 대민 서비스 만족도 개선 같은 능력이나 설정 지표를 내 아이, 내 집안에 대입해 봐도 영 신통치 않은 듯한 느낌말이다. 다만 자녀 양육에 있어서는 대상자가 하나뿐이니 만족도 조사를 해도 절대값이다. 과연 나는 몇 점짜리 엄마인가. 둘만 되어도 어느 정도는 비교, 분석이 가능할텐데 이 아이에게는 절대적인 동시에 상대적이다. 가끔씩 내 기분에 취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거나 하루이틀 숙제를 면해주면 만족도는 최고치 100%를 능가한다. 하지만 당장 오늘밤처럼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거나 화라도 벌컥 내면 대상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는 최악이라 원성을 쏟아내고 부친에게 유무선 신고를 해댄다.


전문가 크리에이터 채널과 각종 교육 전문 서적으로 양육, 교육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나는 늘 같은 철학, 같은 태도라도 유지해보자 다짐하지만 어느새 아이의 반응에 따라 대응하고 때로 즉흥적이 되버릴 때도 있다. 제대로 약점을 잡혔을 때는 꼼짝없이 묵은 민원을 들어주며 새로운 공약과 사업을 소개하고 스스로 흥분해 버리기도 한다. 다만 절대 책임 못질 장밋빛 비전이나 새로 도입되는 정책에는 매우 보수적이다. 업무태도와 완벽히 동기화 된다고나 할까. 끝까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바에는 섣불리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으며 도입 초기 벌어질 부작용과 비용을 고려하여 새로운 정책을 사업화하는 것. 모든 대민 행정의 기본이 내 집 안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전문적 분석과 그럴싸한 말들,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자 어려운)은 한 가지 방향으로 흐른다. 온갖 것들에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가에게 맡길 것. 지금 당장, 서둘러 자녀들에게 뭔가를 제공하라고 나를 부추긴다. 안타깝게도 접하는 정보가 늘수록 자신감은 줄어든다. 심리적 지원도, 금전적 지원도 자신이 없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모두의 기초 자원, 즉 체력 또한 바닥나기 시작하니 앞으로 자녀와 내가 맞닥뜨릴, 혹은 부딪칠 하루하루가 어떠할지 사뭇 걱정스러울 뿐이다. 오늘 밤도 전 세계 모든 엄마들의 수고로움을 기억하며 파이팅을 전한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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