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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부모가 나에게 끼친 영향부터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오줌을 싼 그날

"괜찮아..... , 괜찮아."

괜찮아의 의미는 용서의 의미라고 한다.
용서는 어떤 잘못을 한 사람에게
'아, 그랬구나, 그럴 수 있었구나....'
라고 한 뒤 다음에 그러지 않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날 오줌을 싼 자신을 용서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잘할 기회를 주었고
기저귀를 차고 강연을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그는 더 이상 오줌을 싸지 않게 되었다.
두려웠던 무대에 스스로 익숙해질 시간을 준 것이다.


당신의 삶이란 무대에서
당신은 지금 어떤 문제를 만났는가.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실수하고 불완전한 자신을 미워하거나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괜찮아"라는 한 마디 일지 모른다.





솔직히 아무 기대 없이 읽은 에세이집이었는데, 넓은 공백 속에 의도적으로 천천히 읽게 만든 저자의 글들을 접하면서 지나온 나의 시간도 멈춰 바라보게 만든 여운이 긴 책이었다. 위에 인용한 글은 이 책 속에서 수없이 거론하며 당신은 충분히 괜찮다며 격려하는 대표적인 글이기도 해서 옮겨봤다.



우리가 삶에서 지칠 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실수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괜찮아'라는 말이 아닐까.



저자가 소개한 위 일화는 어느 유명한 작가의 이야기다. 그 작가의 유년시절은 불운했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실수에도 그에게 크게 폭력을 휘둘렀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밤에 화장실을 가던 중에 아버지가 쌓아 놓은 피규어 장난감을 넘어뜨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고 뛰쳐나와 작가의 머리채를 끌고 화장실로 데려가 주먹으로 머리를 계속 때렸다고 한다. 참을성이 많은 작가였지만 그날은 머리를 맞다가 앞이 보이지 않았고 턱이 떨리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 머리 말고 몸을 때려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말대꾸에 더욱 폭발해 화장실 바닥 닦는 솔로 작가의 입을 계속 때렸고 작가는 소리 내면 더 세게 맞을까 봐 숨을 죽인 채 맞았다고 한다.



트라우마는 '감정의 재연'이다. 작가는 그토록 원하던 작가로 성공하고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강연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죽음에 준하는 공포를 느끼게 되었고 두려움에 오줌을 쌌다고 한다. 처음으로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한동안 숨어 강연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큰 기회를 놓치고 실수한 자신을 그렇게 미워하다가 어느 날 깨닫게 된다. 그날 장난감을 넘어뜨린 날 아버지가 나오셔서 '괜찮아, 그거 괜찮은 거야, 별거 아니야'라고 말해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날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해 주었다고 한다. 괜찮아.. 괜찮아.. 이겨 낼 수 있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유년시절이 얼마나 중요한가.


불완전한 아이에게 주워진 환경이 어른이 요구하는 방향대로 수행해야 한다면 그 아이는 자신에게 너무나 엄격할 수밖에 없고 늘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감추고, 상처를 감추고, 성장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가 어른이 되고 봉합되었다고 믿었던 유년시절 속 무의식이 어느 날 갑자기 분출된다는 점이다. 이때 그 어른은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이 몸만 자란 아이일 뿐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은 부모님이 나에게 끼친 영향을 아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을 정립하고 자기 객관화에 이르려면 무언가에 매여 있는 마음의 근거를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 번개처럼 타당하지 않게 판단했던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사랑 가득하고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불편함이 없고 따뜻한 부모가 있는 완벽한 가정은 드물다.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온전히 자신뿐이다. 자신만이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격려해 주고 응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스스로의 감옥에서 벌을 주지 말자.



예전에 나는 형제들에 비해 늘 후순위로 밀려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하며 자랐던 것 같다. 부모의 말씀에 절대적 복종을 하며 착한 아이로 지내도 부모님은 형제들에 비해 나를 열등하게 대하셨다. 나를 구원한 것은 부모도 형제도 아니었다. 책은 혼자인 나에게 다정했고 내 마음을 다독여줬다. 나를 열등하지 않은 괜찮은 아이로 대해줬다. 답답한 삶에서 나를 당당하게 만나게 해 줬다.



나는 나 자신으로써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란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보여주는 모습을 만들 필요가 없으며 압박에서 자유로운 '나'로써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나로서 나답게 그냥 편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 충분하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 글배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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