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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인생문답

강요하지 않는 부드러운 설득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고등학교 상급반쯤 됐을 때는 문학적인 건 좀 읽었으면 좋겠어요.  정서적으로 나를 키워주고, 이다음에 문장을 쓸 때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 얘기는 60대 이상에게는 독서하고 안 하는 것이 인생의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는 거예요. 60세가 넘어서 독서하는 사람들은 성공하고요. 그렇지 않고 책을 놓는 사람은 암만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그걸로 메마르고 말아요.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메마르고 말거든요. 

(중략)

나이 들어서 책 읽는 사람은 존중을 받고, 나이 들었다고 해서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그라들고 말아요.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독서가 나의 행복의 원천이 되고 우리 사회를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본문 中



이 책은 103세 김형석 철학자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31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는 형식의 글이다. 20~60대 일반이 100명에게 궁금한 점을 받아 공통된 질문 31가지를 추리고, 노철학자의 답변을 녹취해 육성을 최대한 살려 기록했다고 쓰여있다. 질문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며 생각하는 궁금증들이었고 그 대답을 백 년 넘게 살고 있는 노철학자에게 듣는 것이 최선이라 느끼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마주 보고 듣는 듯한 편안함이 전달되고 언제고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책장 한가운데 꼽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그는 어느 질문의 답이든 강요가 없었다. 노철학자는 '내가 쭉 살아보니까..'로 시작해 '.. 같아요'로 끝맺으며 확신하지 않았다. 강요가 없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내가 백 년을 살아보니 이렇거든, 그러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라고 했다면 결론일지라도 독자들은 감동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힘든 인생의 사막을 건널 때 책을 덜 쳐 오아시스 같은 자신만의 답을 찾으리라 생각한다.


읽다 보면 그는 인간다운 삶, 만족한 삶을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은 혼자 살 수 없는 공간이기에 더불어 행복한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내가 가진 것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 혼자의 힘으로 이뤄낸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라. 내 목숨도 부모가 만들어 주었고, 잘난 내 지식도 선배나 스승을 통해서 얻었고, 내가 가진 소유물들도 남의 도움 없이는 얻을 수 없었다. 무인도에 있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자만할 잣대는 없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기주의자란 뜻이다.


우리가 김형석교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나를 위한 행복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성공을 권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인격의 그릇을 독서로 채우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사회는 상대를 존중하고 이타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기 때문에 따뜻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요. 그래서 인격을 못 갖춰요. 인격은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예요.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거예요.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묻는 질문이 꽤 있었는데, 기존의 종교인들의 설교와 다른 해석으로 신선한 시간이었다. 종교를 믿어야 하나, 믿지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동물하고 뭐가 다르냐면, 동물은 본능적인 욕망으로 끝나요. 하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나 자신을 완성시키고 나를 초월하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그걸 종교라도 보면 개인은 종교심을 다 가지고 있죠. 종교의 영역이 좁아졌다고 해서 종교적 신앙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인간적 실존근거로서의 종교적 기대가 근절될 수도 없다고 봐요.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종교 없는 사회는 안 오고, 종교다운 종교를 가지는 사회가 희망이 있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중략)

인간도 호수와 같아요.  자기 자신을 믿을 때는 달그림자가 비치지 않아요. 자기 한계를 깨달을 때 비로소 성실이 경건으로 바뀌어요. 그때 신앙이 생겨요.  왜 그럴까요? 내 인생의 짐은 내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성실을 지나 경건으로 마음을 열겠다.  그게 신앙입니다 



100년을 넘게 산 노철학자답게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평가는 넉넉하게 잡았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50세가 되기 전에는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인격의 완성은 그만큼 경험의 세월과 시행착오로써 다듬어진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그 나이대가 되어야 어떤 스승을 만났고, 어떤 친구와 같이 살았고, 어떤 배우자를 만나 지금의 완성된 인격체가 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또한 꾸준한 자기 수양인 독서와 일기(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성숙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는 나 역시 경험하건대 독서와 글쓰기는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라 확신하고 있다.


마지막 질문은 역시나 100년 넘게 살고 계신 노교수에게 궁금한 죽음에 대한 의미였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참 신선하게 느꼈는데, 현재 닥친 자신의 대답이 아닌, 아직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권하는 '죽음의 질'이었다는 점이었다.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가진 사람들은 죽음이 행복하고요. 복수심이라든지 원한 같은 걸 많이 가지고 산 사람들은 만족하게 죽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그건 두 가지예요. 용서를 받았으면 좋겠는데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뉘우치는 마음이고요. 또 하나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에요. 미국의 어느 유명한 정치가가 "내가 그놈보다 먼저 죽다니."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하잖아요. 결국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었느냐가 죽음의 질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죽음의 질은 어떻게 나뉠까. 그는 죽음에 대한 가치는 '목적 있는 삶'이었는지 여부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내가 혼자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나 자신도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고, 스승으로써 최선을 다하고, 더 나아가 민족을 위해 살았다면 더욱 가치 있는 삶의 보답이란 얘기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될 텐데, 사는 데까지는 열심히 살다가 그때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가능하면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어요. 죽음이란 게 마라톤 경기에서 결승선에 골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라톤을 시작했으니 결승선을 통과해야죠.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그다음이 무엇일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선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게 아닐까요? 동물과 같이 죽음을 모르고 산다면 최선의 인생을 못 살지도 모르지요.



솔직 담백하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진실된 대답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우리네 삶은 평탄하기만 하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각오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안 되는 것처럼,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을 위해 고생을 기꺼이 받아내며 살겠다는 각오가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노철학자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삶의 목적이 느껴지는 책이다.


<김형석의 인생문답 / 김형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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