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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요리가 즐겁다

무엇이 소중한지 알았다


"엄마, 맛있어요!"


리액션 좋은 용희의 엄지가 치켜올리면 나는 괜히 우쭐해지며 웃음이 터진다. 이제는 방송에서 솔깃한 요리 소개가 나오면 메모를 굳이 하지 않아도 나만의 레시피로 변형해서 가족의 입맛으로 구성할 줄 안다. 입맛 까다로운 남편도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허세는 아닌 것 같다.


친정엄마는 딸을 셋이나 낳으셨음에도 딸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심지어 결혼하면 질리도록 할 일을 미리 예습하듯 해 갈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며 요리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단무지만 썰어놔야 하는 막막한 사태에 이르러서야 안일한 해석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입맛 까다로운 시어머님과 남편은 그나마 고민 끝에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품평하며 나를 궁지에 몰기 일쑤였다.  맛이 있을 리 만무였겠지만 정성을 생각해 먹어주면 좋으련만 시어머님과 남편은 너무 심하게 음식에 대한 구박을 했다.  시어머니가 짜다고 하시면 남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짜다고 맞장구를 치는 식이었다. 어찌나 둘이 밉던지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분노가 일어나 반찬통을 번쩍 들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 식구들 모두 놀라 입을 벌리게 한 적도 있었다.


그들은 워킹맘이었던 당시 나의 고충은 아랑곳하지 않는 깐깐한 고객일 뿐이었다. 반찬을 사 오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셨다. 당시 나는 퇴근시간이 되면 또 다른 끼니 걱정으로 두통이 밀려와 힘들었다. 피할 수 없는 무게감이 고통스러웠지만 어찌 되었든 그들도 나의 요리의 희생양이 되기로 결의를 다진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였던 셈이다.


예상하다시피 수많은 도전과 실패가 있었다. 무엇보다 많은 요리프로그램이 등장한 혜택을 받았다. 지금은 외식보다 집밥이 더 맛있다고까지 해줘서 기쁘다. 나는 요리에 소금을 가급적 맨 마지막에 넣는다. 식재료의 맛을 우선시하고 싶어서다. 이제는 음식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안한 마음이나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를 꺼내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든다. 가족이 먼저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친정엄마가 요리를 가르쳐 주셨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랬다면 친정엄마를 더 빨리 이해하고 삶의 소중함을 체험했을 것이다. 친정엄마는 삶의 목표가 돈이었기에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사치로 생각하셨다.  지독하게 돈만 모으셨고, 치열하게 모았던 그 돈을 제대로 당신에게 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돈 때문에 형제들은 싸움이 났다.  


내가 중년이 돼 보니 가장 중요한 일은 먹고사는 일, 그것도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밥 먹는 일이 가장 소중한 것 같다.  오늘 나는 연한 열무 물김치를 담갔다. 주말엔 열무물국수를 해먹을 생각에 미소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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