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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잎과 된장찌개를 차리면서..

집밥의 고향으로


행복은 결국 나에 관한 것입니다. 정확히는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관한 문제이지요.

거기에는 나태한 시간을 다루는 것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철이 들고 나서부터 나태한 시간을 제대로 가진 적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오십이 되어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지요. 나태해질 것인지 적절하게 분주해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개인의 선택에 따를 뿐입니다. 다만 이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중요합니다. 여전히 자기 이야기 없이 오직 남의 이야기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셈이니까요.


- '오십에 읽은 장자' 中




멸치육수를 낸 국물에 시골에서 얻어온 된장을 푼 뒤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깍둑썬 두부 넣고 약간 짭짤하게 찌개를 끓입니다. 한쪽 불에는 찜통 속 연한 호박잎이 맛있게 쪄지고 있지요. 식탁 위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호박잎이 올려지고 된장찌개 냄새가 퍼지면 싱글벙글한 남편이 식탁의자에 앉습니다. 된장찌개에 호박잎 푹 찍어 입안 가득 채워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그렇게 맛있어?'


생각해 보면 결혼 전엔 즐겨 먹지 않았던 것들이, 이젠 늘 밥상에 올려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입맛이 바뀐 거지요. 결혼 전에 친정엄마가 차려주셨던 밥상과 현재 제가 준비하는 밥상을 비교해 보면 180도 바뀌었답니다. 친정엄마는 항상 마감시간에 들려 식재료를 떨이로 왕창 사 오셨고, 그 식재료가 없어질 때까지 우리 식구들은 아무 말 없이 며칠이라도 물리도록 먹어야 했습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되면 그제야 우리는 떨이식재료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 리턴되는 밥상으로 이어졌죠.


당시 친정이 엄청나게 어려운 살림이 아니었다는 전제로 이해한다면 엄마는 대외적인 시선이 아닌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절대가치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외출을 하실 때면 이쁜 정장으로 치장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집밥의 부재가 주는 쓸쓸함은 제가 결혼을 서두르게 한 원인 중에 하나였습니다.


결혼하니 시댁문화는 정 반대였습니다. 먹는 것이 제일 중요했죠.  처음 시어머님과 생활을 할 때 하루 세끼 걱정만 하시는 것을 보고 질릴 정도였으니까요. 반찬을 하나도 못 만드는 잼뱅이 며느리를 보셨으니 그 걱정을 탓할 입장은 못되었지만 극과 극을 마주한 저로써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답니다. 매일 하루 세끼 부딪쳐야 하는 익숙한 것과 아닌 것에 대한 충돌. 그것은 양보를 떠나 고문과도 같았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호된 질책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방법을 찾으려 했던 힘듦이 내가 찾고자 했던 집밥의 고향으로 가게 된 수고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세상의 흐름은 점점 양립을 지키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건강한 간편식이 집으로 배달되고 여자들은 사회적 활동도 자유로워졌으니까요. 아니면 저처럼 모든 경험을 하고서 소박한 밥상준비하며 이렇게 회고하는 생각으로 미소 짓기도 하고요. 행복은 결국 나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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