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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조림을 하다가..

할머니와 적양파


우리 아파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소규모 장이 선다.  재래시장만큼 싸지는 않지만 한 두 가지 식재료가 필요할 때는 구경삼아 한 바퀴 채소, 과일, 건어물, 생선, 푸드트럭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파트주민들의 줄이 길고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단번에 구매해서 먹을 수 있는 돈가스나 족발을 파는 푸드트럭이다.  돈가스 튀기는 냄새와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김이 나는 족발코너를 보면 잠시 나도 갈등을 하지만 결국 걸음을 멈추는 곳은 야채파는 매대 앞이다.   


나는 주로 계절채소를 구입한다. 그게 가장 싸기도 하지만 신선하기 때문이다.  흙 뭍은 기다린 우엉줄기가 두 개에 3천 원이란다.  우엉조림은 남편이 좋아하는 최애반찬이라 기분 좋게 손길을 뻗었다.


"적양파가 어디 있어요?"


우엉을 고르던 나는 할머니 음성에 뒤를 돌아봤다.  채소매대를 지켜야 할 상인은 다른 사람들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구석에 있는 적양파를 찾아 할머니 실버카(노인유모차)에 올려드리며 '하얀 양파보다 조금 비싸요'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해버렸다.  


할머니는 당연히 안다는 표정으로 웃으셨다.  말실수를 한 것이다. 주머니사정까지 관여한 내 오지랖을 덮으려 할머니가 먼저 구입하신 채소류까지 계산대에 옮겨다 드리니 미안해 말라는 듯 웃어주신다.  


말수가 적으신 분이셨다. 할머니는 내게 또다시 눈인사를 하시곤 상인이 검은 봉지에 담아준 애호박, 적양파, 두부를 실버카에 올려놓은 뒤 천천히 내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집에 돌아와 우엉등을 칼로 긁고 얌전히 채를 썰었다. 참기름에 1분간 코팅하듯 볶아주다가 설탕, 간장, 물을 붓고 뿌리채소가 익고 물이 쫄아들 때까지 식탁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마지막에 올리고당을 적당히 섞어주고 깨를 뿌렸다.  


남편이 한 젓가락 입에 넣으며 맛있다고 웃는 모습이 그려졌다.  문득 오전에 만났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아마도 할머니의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을 것이다.  단출한 장바구니가 증거다.  그날 밤 할머니는 아픈 허리를 대신해 싱크대에 배를 의지삼아 남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일 것이다.  


식탁에는 씹기 편한 애호박볶음과 두부 전 그리고 된장찌개다. 할아버지는 변함없는 된장찌개맛을 칭찬하시겠지.  혹시 오늘 어떤 아줌마가 당신이 적양파 하나 살 돈이 없을까 봐 걱정했던 내 얘기를 꺼내며 할아버지랑 웃지 않으셨을까.  그냥 상상을 하며 나는 조금 웃었다.


이번 주 내내 작은애가 지방출장으로 집을 비운다.  한 달에 두 주는 비우는 것 같다. 큰애는 일찌감치 천안에 내려간 지 오래다.  작은애가 간간히 눈치를 보며 독립얘기를 꺼낸다. 나는 그 암시가 주는 의미를 안다.  떠나고 싶은 것이다.


시어머니와 살 때는 다섯 식구가 식탁에서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부부만 식탁에 앉는 횟수가 는다.  시간의 문제일 뿐 그 할머니와 나는 똑같은 처지인 것이다.  내가 그 할머니보다 조금 젊을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노후를 잘 지낼 준비를 해야 한다.  외로움과 허탈감을 극복하는 것은 어느 타인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차근차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배우자와 잘 지내야 한다.  물론 영원히 함께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우엉조림이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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