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로 재래시장에 마실 가듯 자주 들리는 데요. 일반 마트보다 저렴하고 싱싱한 데다 상인과 즐거운 흥정과 인심을 느끼고 싶어서기도 하답니다. 어제는 수더분한 할머니 상인에게서 귀한 노지 고들빼기를 두 묶음 구입을 했지요.
노지 고들빼기는 뙤약볕을 견뎌내며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탓에 영양분이 뿌리로 내려가 실하고 인삼처럼 생겼답니다. 하우스 고들빼기에 비해 모양은 이쁘지는 않지만 김치를 담가 먹으면 오히려 연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고 쌉싸름하면서도 달달한 끝맛이 일품이랍니다. 서리 내린 가을 한 철에만 느낄 수 있는 보약 같은 반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지 고들빼기는 뿌리와 잎 사이에 새까만 부분을 깨끗하게 긁어내고 시든 잎 부분은 떼어낸 뒤에 살짝 소금에 절입니다. 집집마다 김치 담그는 방법이 다르지만 저는 완전히 푹 절이지 않고 성난 잎사귀가 조금 가라앉을 정도만 절이고 깨끗이 헹궈낸 뒤에 찹쌀풀에 양념을 넣고 무쳐냅니다. 양념 재료는 쪽파와 양파, 새우젓, 멸치액젓, 마늘, 고춧가루 정도입니다. 간은 세게 하지 않고 식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고 있답니다.
고들빼기는 영양면에서도 효능이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무엇보다 피토케미컬(Phytochemical)이 풍부한 뿌리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영양의 비밀'이란 책에서도 말하지만 피토케미컬은 식물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유기화합물이랍니다. 식물 스스로 각종 독소나 오염물질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물질이 바로 피토 케미컬이고 이 성분이 많은 식물을 섭취한 사람의 인체 내에서도 유사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뿌듯하게 담근 고들빼기김치를 식탁 메인에 올려놓고 저녁상을 차려놓으니 반찬이 온통 채소류입니다. 남편은 아내 잘 만났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식탁에 앉습니다. 한창 먹어야 할 젊은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가정의 권력은 부엌에 선 사람 마음이니까요.
나이를 먹으니 행복의 조건은 주어진 환경 내에서 만족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그 삶이 고달픔과 긴장의 연속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인생이 복잡하고 힘들어도 결국 따뜻하고 맛있는 밥 한 끼 먹고살려는 동기가 삶의 목적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화려하고 고급 별미라고 하는 세상 음식을 먹어봐도 늘 곁에 두고 먹는 일상의 소박한 음식이야말로 가장 맛있는 음식이란 사실을 깨닫고, 아무런 긴장 없이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좋은 만남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됩니다. 평범한 일상의 고마움의 시작, 가족입니다.
비릿한 밥냄새로 이끌려 찾아오게 만드는 집. 가족에게서 삶의 희망을 찾는 인생. 삶의 의미는 사실 별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 고들빼기김치 하나 식탁에 올려놓으면서 뻗어가는 아줌마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