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다움’이다. 노인은 언뜻 보기에 누구나 쉽게 단념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어른다움'이란 대국적 견지에서 스스로는 뒷전으로 물러서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에게 이득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하며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른다움'의 미학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누구든지 한 번은 젊고 누구든지 한 번은 늙는다. 이만큼 공평한 흐름을 시기하는 것은 탐욕이다.
본문 中
저자 '소노 아야코'는 돌아가신 시어머님과 같은 연배(1931년생)로 40세가 되던 해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름답게 늙고 싶어서 노년에 접어들면서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들에 대한 메모 형식으로 책을 출간했고, 일본에서 큰 반응을 일으켰다고 한다. 출간 후 대략 10년 단위로 세 번의 개정이 있었고, 세 번째 서문을 썼을 때는(1996년) 만년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불행의 집합체로 보일 만큼 어둡기 그지없다. 부모의 불화로 이혼을 목도했고 본인은 선천적 고도근시로 늘 어둡고 폐쇄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불행을 소설가의 꿈의 밑천으로 성장한다. 불행은 멈추지 않고 50대에 중심성망막염이 더해져 실명단계에 이르렀는데 다행히 희박한 수술이 성공하여 드디어 안경없는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녀의 밝은 세상을 맞이했을 때는 반늙은이가 되었을 때란 얘기다. 긍정의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존경스러운 분에게는 '어르신'이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고 어른답지 못한 사람에겐 '노인'이나 '늙은이'라는 호칭을 쓰며 간접적으로 인격 분풀이를 한다. 어느 분은 존경을 받고 그분의 말씀 하나라도 귀에 담고 싶어 찾아가고, 어떤 분에겐 나를 성가시게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누구나 존경받고 인격적으로 대접받으며 나이 들고 싶은 마음으로 살았을 텐데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은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이나 행동은 하지 마세요"라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온갖 핑계를 대고 멀리할 뿐이다. 신장개업한 음식점에서 기대하고 먹은 음식이 맛이 없을 때, 품평을 궁금해하는 주인장에서 맛있다고 덕담을 하며 값을 지불하고 나오지만 다시는 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느 날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외로운 이유는 누구의 탓도 아니다. 바로 내 인격의 문제다.
그러니 내 문제를 스스로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나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저 나이만 먹었느냐고 취급받는다면 그처럼 불행한 삶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이 들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로 경계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노년이 되더라도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노인이라고 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당연히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나는 우리가 노인에 대해 실망한 적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어머님과 30여 년을 함께 살면서 정말 많은 부분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와 겪었던 일상들이 떠올라 많이 웃었는데, 아래 인용문은 어머니와 나눈 대화 토시 하나까지 같았다.
"이렇게 매일 집에만 있는 것도 정말 따분해서 죽겠어."
"그럼 친구분 집에 놀러 가시지 그러세요?"
"빈손으로는 곤란하지. 차비도 들고 과자 한 봉지라도 돈이 드니까, 그리고 밖에 나서면 피곤도 하고…."
"그럼 친구분을 놀러 오시라 그러세요. 그분은 여전히 건강이 좋으시니까 꼭 와주실 거예요."
"그 사람 오기만 하면 갈 줄을 모르니까, 가라고 할 수도 없고 피곤해."
"좀 피곤하면 어때요? 할머니는 내일 꼭 뭘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피곤하면 그만큼 다음날 푹 주무시면 되잖아요."
"그렇지만, 그것도 힘이 드는 일이라니까."
돈을 쓰기도 싫고 피곤한 것도 싫고 혼자 조용히 있는 것도 따분하다고 하시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노년이 되면 모두가 불만투성이로 바뀌는 것인가. 어느 책에서처럼 노년이 되면 제2의 아동기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체처럼 누워서 하루를 보내도 그 고적함이 불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나갈 마음만 있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움직였기 때문이다. 녹초로 움직이든, 소처럼 잠만 자든 내 판단이었다. 내 행동에 대한 불평은 없었다.
저자는 노인이 되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다움'이라고 말한다. 몸이 늙어 기력이 없는데도 전성기 때 누렸던 혜택을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인이 되면 노인에 맞게 생각을 해야 하고, 어른답게 물러나줘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만년에 있어 갖춰야 할 네 가지는 허용(許容), 납득(納得), 단념(斷念) 그리고 회귀(回歸)라 말한다. 또한 노인이 되면 경계해야 할 세 가지는 노욕, 노추, 노망이라고 말한다. 남이 '주는 것'과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이러한 자세는 유아적 사고방식이자 노인이라는 증거기 때문이다. 노인이라고 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거나 당연한 생각으로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노년의 완숙미는 타인의 도움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며 고독감을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누구나 한번 젊은 시절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하게 된다. 젊은 시절만 화려하고 노년에 구차해지면 슬픈 것이다. 노년은 힘이 없고 자신을 찾는 사람도 줄어든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준비할 단계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내 노년에 대해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으니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평소 심리적 결재를 해두어야 한다. 또한 장수를 견뎌낼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준비해야 한다. 어른답게 나이 드는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