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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착각

깔끔하게 분류되기에는 너무 복잡한 인간


의학적인 조언을 무작정 따르는 것은 솔깃한 일이지만, 사실이 계속 바뀐다면 그러기 어렵다. 이것은 과학의 오류가 아니다. 수많은 의학적 조건이 근거로 삼는 데이터는 여러 측면에서 불완전하다. 의학적인 조언을 무심히 따르고 싶은가? 그 조언이 근거로 삼는 데이터의 불완전성을 깨달으면 구미가 덜 당길 것이다. 건강 평가의 도구는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다. 당연히 완벽하지 않다.




2025년에는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가 넘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인구 5명 중 1명은 노인이란 얘기다. 지속되는 저출산 현상과 노인인구의 증가로 대한민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출산장려를 더 이상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멈추고 사회 및 제도적인 과감한 지원과 대비책이 절실하다. 또한 충분히 활동 가능한 노인들의 사회적 고용흡수도 병행해야 한다.


요즘은 노인의 나이를 제대로 가늠하기가 정말 어렵다. 관리를 잘한 젊은 노인이 있기도 하지만 반면 나이보다 훨씬 정신적, 체력적으로 무너진 노인들도 무시 못하게 많기 때문이다. 분명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을 텐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나는 약국에서 의사처방전을 내고 약을 두어 달 치 타가는 노인들을 보면 약의 분량에 입이 떡 벌어진다. 저 많은 약들이 정말 적당한 처방일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저 약들 중에 불필요한 약처방이 있어서 오히려 면역력이 약화되진 않을까 우려된다. 하지만 대부분 노인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식사는 걸러도 처방약만은 잊지 않고 챙겨 먹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과 중력의 도착지인 노화에 대해 현재의 의술에 의존하기에 앞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시작하고 있다.


노화 현상의 비밀을 풀고 싶다는 심리학자의 엉뚱한 계획은 먼저 요양원 거주 노인들 대상으로 1년 6개월간 실험을 했고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은 일상에서 도움을 받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실험을 하는 기간에는 방문객을 맞이할 장소, 요양소에서 보여주는 영화선택, 본다면 언제 볼 것인지 직접 결정토록 했고, 직접 돌볼 화분 선택하고 화분을 방안 어디에 둘지, 얼마나 물을 줄지도 직접 결정하게 했다고 한다. 실험기간이 끝난 후 그들은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쾌활하고 활동적이고 민첩해졌다.


저자 엘렌 랭어는 이 실험에 고무되어 1979년 70대 이상 노인 집단 대상을 공모하여 일명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를 하게 된다. 모집된 피험자 노인들을 20년 전인 1959년 세상으로 세팅을 한 뒤 일주일 간 사회와 격리된 수도원에서 살게 했다. 모든 환경(라디오, 텔레비전, 달력, 옷차림 등등)이 20년 전 상황이므로 그들 스스로도 20년 전인 몸상태로 인식하도록 요구했고 식사, 잠자리 모두를 해결해야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불과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청력과 기억력, 체중, 악력 모두가 현저히 향상되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노인에 대한 편견은 어떤가. 건망증이 있고, 행동이 느리고, 고집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대부분 활동적인 면하고 반대되는 단서들이다. 하지만 노력하면 완벽하지 않지만 개선할 수 있다. 그것은 본인이 스스로 노력해야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지만 말이다. 집안에 노인이 있다면 선택권을 드리도록 해야 한다. 과도한 보호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셈이다.


늙는다는 것은 명백한 신체현상이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중력의 영향이 누구나 똑같은 것은 아니란 점이다. 유전적 영향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처한 상황과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란 신체 건강에 분명한 영향력이 있다. 물론 반대되는 상황이라면 더 나빠질 수 있겠다.


우리는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짜 약제지만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진짜 약을 먹었다고 생각해 약효를 느낀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에서 보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의식의 집중이 노화를 늦추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확인되었다.


우리는 배움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미 배운 것, 이미 확인된 것, 이미 나타난 증상에 대해 빠르게 답을 찾고 전문의가 결정한 것에 쉽사리 수긍한다. 우리는 과학의 결론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만 던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하나의 진리가 지금껏 유지된 적은 없었다. 새로운 과학이 발견되면 이전의 과학의 진실은 과감히 쓰레기통에 던지는 것을 잊지 말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과학적인 조사는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확률을 산출한다. 확률은 연구원과 그들이 만든 교과서, 미디어, 교사, 부모, 친구, 사업 관리자의 손을 거쳐 설득력 있고 전달하기 쉬운 절대적 진술로 변모한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 진실일 수도 있는 것을 배우고 난 뒤 마치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진실인 양 적용한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경우에 확실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맥락 안에서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배운다면, 무조건적으로 무심코 받아들이는 경향이 줄어들지 모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된다면 의문을 품고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이 쉬워질 것이다.



의료계는 불완전한 데이터를 근거 삼아 그들 스스로 활용할 지식을 위해 환자들에게 결정을 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병명 앞에 붙여진 이름표에 우리는 스스로 몸의 통제권을 포기하고 의학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천천히 노화할 수 있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신의 몸을 관찰한다면 가능하다. 친절하고도 알기 쉬운 의학도서들이 많은 세상이다. 질병이 나타나기 전 우리 몸은 수많은 단서와 증상을 보여준다. 관심이 필요한 증상인지, 무시해도 좋을 증상인지 관심을 갖자.


이 책은 심리학자 관점에서 쓴 책이라 심리적인 면만 다루고 있다. 노화를 늦추는 방법은 긍정적 태도는 물론 식습관도 빠질 수 없다.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이란 책에서는 노화진행의 일등공신이 '동물 단백질(철분)'섭취를 줄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다섭취는 장 건강에도 영향을 주어 유해균을 증가시켜 장 투과성(장 누수)까지 높인다고 한다. 참고로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는 건초나 곡물사료를 먹지 않기 때문에 덩치가 있는데도 관상동맥질환이 없다. 건강한 식습관과 적당한 운동, 자신의 몸의 관찰이 세트가 되었을 때 노화는 천천히 느리게 진행될 것은 분명하다.


결론은 현대의학에 물리적으로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고 건강하고 지혜롭게 늙는 방향을 찾자는 뜻이다. 이 책은 의학적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안내서가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맹목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고 있는 의학의 결과물에 의존하지 말자는 뜻이다. 내 몸을 지키는 방법의 1순위는 병원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늙는다는 착각 / 엘렌 랭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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