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류는 양치질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매일 양치질을 한다. 양치질이라는 새로운 습관이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양식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10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명상 수행도 곧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양치질이 인간의 건강에 큰 도움을 준 것처럼 명상도 현대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큰 도움을 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으로 많은 독자층이 있는 김주환교수의 새로운 책이다. 회복탄력성이란 말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만 실은 김주환 교수가 대중에게 각인시킨 용어다. 회복탄력성은 어떠한 역경이나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 힘으로, 불굴의 의지나 집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는 이를 한층 발전시켜 마음근력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인 명상수행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과 함께 과학적인 명상 훈련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대단한' 책 한 권을 완성해서 세상에 내놨다. 당연히 엄청난 벽돌책이다.
우선 그는 이론적인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명상 효과에 대한 최신 뇌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뇌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에 관해 설명한다. 그 방대한 내면소통의 이론적 기반의 핵심을 설명하는 논리적 근거를 읽다 보면 저자의 방대한 지식의 양에 입이 벌어진다. 완성도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그는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뇌과학의 논문이 새로 발표되면 추가하여 완벽에 기했다. 뇌과학, 심리학, 물리학 등 문외한에 가까운 입장에서 나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책에서는 주로 명상을 내면소통의 한 형태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내면소통 이론은 단지 명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 아니다. 내면 소통 이론은 인간의 의식과 자의식의 본질을 내면소통 과정으로 파악함으로써 모든 형태의 소통 과정과 효과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해당된다. 저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보스턴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역임한 수재다. 따라서 내면소통에 관한 한 지식의 끝판왕인 셈이다. 믿고 읽어도 좋단 얘기다.
원시인의 뇌로 살아가는 현대인
내면소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전에 인간의 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는 지난 200만 년 전부터 3만 5000년 전까지 천천히 진화화면서 별문제 없이 잘 작동해 왔지만 인류의 생존방식이 통제가능한 '농업혁명'의 시대(고작 1만 년 전)가 전개되면서부터는 급격한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진화론적으로 적응하기에 시간이 너무 짧음에 따라 문제가 발생했다. 불안정하기만 한 현대사회는 원시인의 뇌로 살아가야만 하는 부적응의 뇌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우주에서 지구와 같은 별이 지구밖에 없듯이, 지구의 존재 자체가 우주의 먼지와 운석의 파편이 뭉쳐 우연으로 생성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 호흡을 통해 공기 분자들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가 완벽한 우연이라는 사실이다. 인류에게 삶은 원래 우연적인 것이었다. 수렵. 채집으로 먹고사는 삶에서 농업혁명 이후 예측할 수 있게 되자 미래를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이 탄생한 것이다.
인간의 뇌는 어떠한 실체나 현상에 대해 믿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아의식의 기본 작동 방식은 인과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텔링인데 그러한 스토리텔링 안에 맞지 않는 지점을 우리는 우연이라 느끼게 된다. 자아의식은 우연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그러한 인간의 마음이 종교를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편도체 기능
편도체는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을 유발하는 중심축이다. 분노나 짜증, 무기력이나 우울감 등의 부정적 감정은 두려움이 지속될 때 나타나는 좌절감의 표현이다. 모든 부정적 감정의 근원이 두려움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반복적으로 활성화되는 편도체는 자그마한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는 공포 회로를 형성한다.
. 전전두피질 기능
끈기와 과제지속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입장과 나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하기도 하며,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 생존이 위협을 받는 위기 상황에서는 이러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천천히 생각하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현대인의 생물학적 구조가 기본적으로 3만 5000년 전의 크로마뇽인(구석기인)과 유사하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 원시시대에서는 근육의 힘을 강화해야 생존을 할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는 전전두피질 중심으로 뇌가 움직이는 게 더 알맞은 사회 시스템이다. 현대인의 삶에서 목표해결은 대부분 해결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는 일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예: 대학입시 수험생, 취준생, 사회인의 프로젝트 등) 만약 집안마저 편안하지 않다면 거의 매일 사자와 붙어 다니는 수준으로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즉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몸은 항상 긴장상태에 놓이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긴장하면 식욕이 생기지 않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우선 필요한 것이 근육의 힘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으로 뇌가 판단하여 소화기관과 면역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 에너지까지 끌어와서 근육에 집중시킨다. 어깨근육, 목근육, 특히 이를 악물 때 사용하는 턱근육 등 일련의 근육들을 수축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전전두피질이 중심이 되어 수행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문제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전전두피질의 인지 기능은 평화로운 시기에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음근력을 강화하려면 편도체 안정화와 전전두피질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과 특히 mPFC를 중심으로 하는 신경망의 기능적 연결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뇌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현대인의 삶에서 발생하는 불일치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마음근력 훈련이다.
편도체를 가라앉히는 것이 '내 몸과 내면소통' 훈련이라면,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하는 것은 '내 마음과의 내면소통'훈련이라 할 수 있다.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 자신의 현재 상태를 되돌아보는 자기 참조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타인에 대한 긍정적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다.
내면소통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 안에 '자아'가 여러 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경험자아 - 지금 여기서 특정한 경험을 하는 자아
. 기억자아 - 경험한 것을 일화기억으로 축적하는 자아(자아정체성, 개별자아 혹은 에고 ego)
. 배경자아 - 경험자아나 기억자아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자아
자기 참조과정이란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돌리는 인지적 과정'을 폭넓게 일컫는 말이다. 인식대상을 외부에서 나의 느낌이나 감정, 생각 등에 주의를 집중하면 뇌는 자기 참조과정 상태로 전환된다. 훈련의 핵심은 진정한 자아인 배경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자기 참조과정 훈련을 세 단계로 나누어 알려주고 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조금만 의식하면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1. 나 자신과 거리 두기 - 자신의 이름을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해 객관화한다. 자기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다.
2. 알아차림과 디폴트모드 네트워크의 활성화 - 멀티태스킹은 마음방랑이다. 온전한 몰입에 방해한다.
3. 격관 명상 - 대상 없는 알아차림 - 배경자아는 경험의 대상이 아니기에 발견이나 추구의 대상이 아니다.
이 중에서 종소리 격관 명상은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명상수행이라 느껴졌다. 대상 없는 인식의 경험 상태로 이끄는 효과적인 방법은 종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울림이 오래가는 좌종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방법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앚히고 그저 종소리라는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다. 종을 치는 순간 종소리는 시작되고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종소리가 사라지면 나의 주의는 '대상 없는 주의'가 된다. 계속 듣고 있는데 듣기의 대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제 나는 고요함을 듣게 된다. 침묵을 듣는 상태다. 대상 없는 인식이다. 대상이 사라진 그 순간, 남는 것은 인식의 주체뿐이다. 배경자아만 남는 것이다. 고요함을 듣는 상태에서 나의 의식은 나 자신으로 향하게 된다.
종소리라는 대상으로 향하던 나의 의식이 나의 내면으로 자연스레 되돌아오는 강력한 자기 참조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화공반조回光返照의 순간에 우리는 '지금-여기'에 현존하는 배경자아를 느끼게 된다. 사실 '배경자아를 느낀다'라는 표현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배경자아는 인식주체이므로 느낌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배경자아는 그래서 항상 텅 빈자리다. 무(無)다. 알 수 없는 대상이다.
*소리: 고요함 = 사물: 공간 = 경험자아 : 배경자아
참고로 김주환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영상도 있으니 경험해 볼 수 있다.
마음근력은 인간이 어떠한 일을 해내기 위한 기본적인 성취역량이다.
몸에 근력이 붙으면 체력이 좋아지는 것처럼 마음근력도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물론 성취 역량과 수행능력이 높아진다. 마음근력의 대표적 훈련방법으로는 명상 수행과 저자가 지난 10년간 준비하여 완성한 과학적인 마음근력 강화훈련 프로그램(바마움 프랙티셔너)이 있겠다. 그는 고대와 현대의 소매틱 운동들로부터 정신건강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움직임을 개발했는데 일명 '소매틱 통합 움직임 명상(타이치, 알렉산더테크닉, 펠덴크라이스요법, 고대진자운동)'이다.
책에서는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 호흡 명상법은 물론 한국불교의 수행명상 이론과 과정 등을 많은 부분 자세히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마음근력의 일환인 수행이 뇌의 습관적 작동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뇌의 신경세포간 네트워크인 신경망을 훈련시키면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나이 불문이며 뇌를 훈련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경가소성'으로 이해했다.
'회복탄력성'이란 책에서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지속적으로 할 때 신경가소성의 효과를 제대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 일기'를 짧게나마 매일 쓰는 것도 효과적이다. 뇌는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꼼꼼히 회상하게 되고 신경가소성을 기반으로 하는 뇌 신경망의 변화는 잠을 자는 동안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뇌는 다음날도 감사한 일을 찾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는데 이때 '모두 내가 노력해서 이뤄낸 것이다'라는 마음을 사라지게 된다. 이는 '수용'의 마음이다. 내면소통 명상은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하는 수행인데 '수용'도 해당된다.
많은 뇌과학 연구들이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면 행복감을 증진시키며, 인지기능을 높이고, 면역력을 강화한다는 긍정적 효과를 보고하고 있다. 뇌과학 관점을 떠나 많은 자기 계발서나 교양심리서를 보더라도 내면소통에서 강화하는 6가지 마음의 요소인 용서, 연민, 사랑, 수용, 감사, 존중은 삶에 중요한 가치라 하겠다. 나는 '수용'이야말로 신경가소성을 활발하게 훈련할 수 있는 명상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마이클 싱어 저)'에서 저자는 마음 훈련의 가르침을 '내맡기고, 받아들이고, 저항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수용이다. 명상이 명료한 의식의 깨어 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뇌의 신경세포들이 활동하는 뇌파의 전기신호가 활성화되었다는 의미다.
받아들인다는 것의 핵심은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싫다고 밀쳐내려 하지도 말고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진정한 수용을 '완전한 항복'이라고도 표현했다. 안 좋은 일이 내게 오더라도 내 삶에서 그냥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명상훈련에 관련된 책들의 네트워크망에 걸린 듯 스르르 책의 핵심이 풀리는 시간이었다.
명상을 하게 되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마음해방(곽정은 저)'에서도 읽었지만 그 해방감이 어떨지 글로써 읽었음에도 이완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충족감과 만족감이 차오르면서 마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풍요로움도 느껴진고 표현한다. 오유지족의 상태다.
명상은 무엇을 얻고자 고통을 참아가며 애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잠시 시간을 내어 명상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애쓰지 않는 애씀(effortless efforts)'이라 말한다.
경험자아인 내 마음이 곧 진짜 나라고 믿는 착각에서 집착이 일어나고, 이 집착에서 두려움이 생겨난다. 경험자아인 마음은 온갖 느낌과 감정과 생각과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시끄럽다. 그 소음을 넘어서 진 나를 발견하려면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 한다. 경험자아가 만들어내는 온갖 이야기들은 일종의 꿈과 같은 것에 불과함을 확연히 깨우치는 것이 명상의 즐거움이며 수행의 목적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 명상이다.
우리는 얼마나 경험자아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로 밤잠을 설치고 괴로워하는가. 인간의 의식과 기억이 만들어낸 허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시끄러운 경험자아에 대한 신뢰를 떨쳐내야 한다. 많은 지식이 함축되어 있는 책이다. 여러 번 읽어도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