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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진화

인간의 욕망은 진화적으로 형성된 본능이다



투자를 더 많이 하는 성, 즉 암컷의 기호가 종이 진화하는 방향을 잠재적으로 결정하며, 그 영향력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언제 누구와 짝짓기 하고 얼마나 자주 짝짓기 할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암컷이기 때문이다.


- 세라 블래퍼 하디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는 나이로 접어들다 보니 인문학보다 자연과학서(교양서에 불과하지만)에 눈길이 더 간다. 사실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란 책을 읽고 나서 큰 위로를 받았었다. 문과는 물질세계를 몰라도 당당한 세상이라는 위안이 뒷받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계기였든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겸손한 당당함은 배우는 마음으로 책을 접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인문학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럴법한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반면 인류학, 진화심리학, 생물학, 과학은 옳다고 믿는 이론이 분명하다. 수많은 논증과 반박을 거쳐 세상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배움의 기쁨은 나이 불문이다.



이 책은 인간의 성적 행동과 연애 전략이 단순히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진화적으로 형성된 본능임을 제시하고 있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인 진화적 변화의 핵심이론을 인간의 욕망에 대비하여 설명하는데 엄청난 양의 데이터(전 세계 1만 47명 대상으로 조사)가 근거다. 저자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이르러 완성된 이 책을 통해 심리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새로운 이론적 접근을 제시했다. 이른바 진화 심리학의 탄생이다.


꽤 오래전에 출간된 책임에도 인간 진화의 역사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인간 본연의 본능(욕망)의 근원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배우자의 특정한 자질들에 대해 남녀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선호경향과 남녀 간의 각기 다른 욕망에 깔린 진화적 논리를 제시하고 사람들이 일시적인 연애에서 상호 헌신적인 애정관계로 목표가 바뀔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탐구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인간은 '우수한 문화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자의식'이 있기 때문에 포유동물의 진화와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다윈의 '성선택 이론'의 핵심이론인 암컷들이 배우자를 능동적으로 선택한다는 이론은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한다.



생존상의 이득이 아니라 번식상의 이득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어떤 형질이 선택되어 진화하는 현상은 '다윈'은 '성선택'이라고 이름 붙였다.




종의 번식만을 위한 생존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려면 붉은 사슴은 추운 겨울 더 많은 음식 섭취가 필요한 몸집이 필요가 없었고 큰 뿔 역시 포식자가 추격 시 도망치기에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날개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생존의 위험이 되는 성전략이 오직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에서 이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즉 '짝짓기'의 목적은 '생존'이다. 생존을 위한 선택압보다 성선택의 선택압이 더 효과적으로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생명체의 가장 큰 목적이 '번식'이라면 암컷의 임신(독박투자)은 가장 확실하게 자기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넘겨줄 방법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면 남녀 모두 충족하는 성전략을 제도적으로 계약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바로 결혼이다. 남성은 생애주기 전체에 걸쳐 여성을 지켜야만 부성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었고, 여성은 자신과 자식의 생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여성은 여러 명의 일시적인 섹스 상대를 두는 것보다는 한 명의 남편에게 의지함으로써 자식들에게 투자할 자원을 훨씬 더 많이 얻어 냈을 것이다.





여성은 난자라는 자원(번식능력)을 내주기 위해 어느 남자와 짝짓기 할지 신중하게 이 문제를 심사숙고하기에 이르렀고 자기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쓰려는 자원을 획득하고 통제할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을 평가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남성과 여성이 원하는 것이 다르게 비교되는데 꽤 흥미롭다. 암컷과 수컷의 성선택 이론과 비교하여 읽으면 재미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여성이 원하는 것

- 높은 지위(자기와 아이들을 위해 쓰려는 자원의 획득 가능성이 높음)

- 적합성(비슷한 성향)

- 헌신성(사랑- 귀한 난자를 내주기 위한 문제이므로)



남성이 원하는 것

- 어린 나이 (신체적 건강 / 여성의 허리 vs 여성의 엉덩이 비율 = 번식 가능성)

- 정신적 성숙함(결혼이 주는 번식의 이점)

- 성적인 충실성(부성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필수 조건임) --> 남성의 질투가 여성보다 강한 이유



또한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진화의 일환으로 성충동(번식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은 쿨리지 효과(Coolige effect)로 유명하다. 이는 포유동물에게서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형질이다.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일화

닭장의 수탉이 하루에도 수십 번 교미하는 모습을 본 영부인이 닭장 주인에게 대통령에게 전하라고 하자, 쿨리지 대통령은 '항상 같은 암탉과 교미하냐'라고 질문하고 닭장 주인은 매번 다른 암탉과 한다고 말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번외로 기혼자들의 외도이유도 진화심리학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남성은 캘빈 쿨리지 효과로 설명이 가능하고, 여성은 배우자 교체가설이 꽤 설득력 있게 읽혔다. 여성은 현재의 결혼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라는 것이다. 유전적 질 향상(사망, 사고 시)과 즉각적인 자원 확보라는 것이 대체적 이유였다. 외도가 진화적 본능의 일환이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이때 발각 시 큰 손실이 발생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남성들은 여성과의 결혼(연애)의 사유 중 정절이 가장 중시되기에 성적 문란은 배우자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그 결과에 대한 대가는 클 것이 자명하다. 남녀의 외도이유가 다른 것도 재미있고 이 또한 수십만 년에 걸친 생존과 번식의 결과란 점이다.







인간이 문화적인 종이라는 점은 '호모 사피엔스(조지프 헨릭 저)'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자연의 다른 곳에서 관찰되지 않은 생소한 진화경로를 거치며 매우 남다른 종(새로운 종류의 동물)으로 진화되었다. 엄청나게 큰 뇌에도 불구하고 우리 종은 그다지 총명하지 않지만 문화 공진화(타인에게서 배우는 학습과 역량) 덕에 인간세상을 주도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종은 몸도 침팬지나 고릴라에 비해 약하고 느리고 신체 기관도 조리한 음식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또한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우리 종은 생식 능력이 멈춘(폐경) 뒤로도 한참 있다가 죽는다. 왜 인간은 난자의 생산수량이 제한적(평생 400개 정도)일까. 이러한 궁금증이 풀리는 내용을 책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할머니 가설'을 이야기한다. 생애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번식하는 것과 평생 동안 장기간 번식하는 것 사이에 일종의 타협이 존재하였다고 본 것이다. 여성의 번식은 일찍 서둘러 번식함(침팬지는 5~6년마다 한 마리씩 낳아 번식)에 따른 부작용으로 해석했다. 할머니가 주양육자인 부모이상으로 손주를 돌봐주는 마음은 진화론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편이 변하리라 믿으며 결혼한다.

남자는 아내가 변치 않으리라 믿으며 결혼한다.

둘 다 틀렸다.


- 무명 씨




진화는 말 그대로 진화한다. 이 책이 집필과 출판 당시 과학적인 데이터였을지 몰라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가독성 있는 것은 근본적인 진화적 본능을 다뤘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인간의 성선택의 최종 합의는 결혼이라는 제도다. 물론 요즘은 동거도 빈번하지만 아이를 낳고 한평생 행복하게 살 욕망은 크게 진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해 서로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적 지식차원에서 남녀의 엇갈린 본능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욕망의 진화 / 데이비드 버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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