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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마인드셋

건강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즐겁게 사는 수단이다



내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라는 나무가 자라나는 토양을 만든다. 그 토양에서 뿌리가 자라난다. 이 뿌리는 내가 삶을 운영하는 원리나 원칙이다. 이 원리 원칙이 잠을 아껴 일을 하거나 그 반대로 수면 시간을 철저히 지키거나 하는 등의 생활 방식을 만든다. 생활 방식은 결과적으로 나의 식사, 운동, 술, 담배, 소비 형태와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낳는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노년내과 의사로 '저속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패러다임을 열었다. 전편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출간 이후 노화에 대한 회의와 오해를 해소하고자 책을 냈다고 밝혔다. 보통 새로운 개념이 우리의 인식을 깨기 위해 등장하면 많은 사람들의 반박과 거부반응이 있다. 그러한 반발을 이해시키고 '저속노화'라는 생활습관이 주는 부작용 없는 쾌락을 위해 그는 지금도 꾸준히 홍보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노화'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한국사회에서 건강하게 내 몸의 주도권을 잡고 살기 위한 마인드셋이다. 나는 가속노화의 삶에서 저속노화의 삶을 살게 된 저자의 현실감 있는 과거사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좋았고 의학적인 결론을 뒷받침해 주는 여러 사례와 문헌은 신뢰감을 갖게 했다.



일전에 읽은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의 핵심은 노화를 늦추게 하는 '내재역량' 키우기였다. 연령별로 노화를 늦추는 생활습관(식사, 수면, 운동방법)을 소개했다. 내재역량이란 신체, 인지, 정서, 사회, 감각기능 등 전반적인 내적 기능의 총합을 의미한다. 궁금하신 분은 일독을 권한다.



우리는 대부분 갱년기부터 '가속노화'가 시작된다고 알지만 '가속노화'는 30대 후반부터 시작된다. 이유는 기초대사량이 줄어드는 몸의 변화의 시기인데 반해, 식습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직장에 오래 앉아 일하기 때문이다. 대사 과잉은 체지방을 늘리고 인슐린 총량을 늘려 만성질환의 결승구간인 '노쇠'의 길로 빠르게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노화는 시간과 유전자,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생물학적 과정으로 '속도'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놓치고 있는 가속노화에 대한 진실을 하나씩 반박하는 글을 썼는데, 이 중에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어린이와 노화는 관계가 없다'는 반박 부분이었다. 이전 출판 이후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코로나 팬더믹 기간 이후 어린이와 청소년(20세 이하) 당뇨병 환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제2형 당뇨병의 주요 원인은 좋지 않은 생활습관이고 가속노화를 유발하게 한다. 아동. 청소년기의 가속노화는 성호르몬을 과다 분비시킨다. 성호르몬은 성조숙증으로 발전하고 얼마간은 키가 빨리 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성장이 멈추게 된다고 한다. 문제는 어린 시기에 성인병(만성 대사성질환)을 앓고 여성인 경우 생식계통에 문제를 일으켜 사춘기 후기에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앓을 수 있다고 한다. 끔찍하지 않은가. 쉽고 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던 배달음식의 결과물이다.



혈당 스파이크와 뇌 기능 사이의 관계는 당뇨 환자와 일반인 모두에게 여러 연구를 통해 그 결과가 보고됐다. 단순당과 정제곡물이 가득한 식사를 한 뒤 느끼는 브레인 포크(brain fog) 현상이 그 증거다. 즉, 식사 후 혈당 스파이크가 심하면 뇌가 일시적으로 에너지 부족 또는 과잉상태를 겪으며 집중력 저하나 의사결정 능력 약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빠르게 늙게 만드는 환경이 만연해 있다. 경쟁과 과로를 미덕으로 아는 문화는 젊음과 더불어 생산성만을 숭상하는 사회로 변질되었다. 빠르게 보상받고 빠르게 해결하려는 습관은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뇌'로 변질된 것이다. 한국인은 휴가도 '쉼'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각 보상형 행동에 익숙한 뇌 회로의 반복하는 습관에 의해 더 강화되고 끊기 어려운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저속노화는 말 그대로 노화를 지연하는 생활습관이라는 토양이 있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스토아적 삶이 떠올랐다. 저자가 렌틸콩 전도사라는 별명도 이해가 되었다. 스토아인은 과도한 편안함은 뇌에 영향을 주어 현실성을 잃게 하고 진실과 거짓의 사이를 모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발적 불편함을 실천했는데, 이는 본질을 소중하게 여기고 의존성을 줄어갔다. 간헐적 단식을 했으며 추위에도 맨발로 걷고 좋아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다행히 저자는 스토아적으로 강하게 몰아치듯 살라고 말하진 않았다. 건강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즐겁게 사는 수단이며 즐겁게 잘 사는 삶의 결과로 생각하자고 말한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고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습관이 쌓이면 된다.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음식을 몇 주만 줄이고 신선한 채소, 과일, 견과류 위주로 식사해 보자. 바쁘고 힘들어서 못하겠다면 시리얼과 콜라 같은 단순당과 정제곡물이 잔뜩 들어간 일부 초가공식품들만이라도 빼보자. 이것도 어렵다면 액체로 마시는 탄수화물, 특히 다량의 설탕이나 액상과당이 녹아 있는 탄산음료와 가공 주스 같은 청량음료라도 없애보자.




해로움을 명확히 알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초가공식품(단백질 파우더)이 근감소증을 앓는 사람에겐 도움이 된다. 무조건 해롭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좋지 않다.



공부하고 논문을 써도 세상이 바뀌지 않아 책을 썼고, 그래도 달라지지 않아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라는 저자는 1분 1초가 바쁜 한국인을 위해 '즉석 렌틸콩밥'을 기업과 협업하여 출시했다. 다 함께 즐겁고 건강하게 느린 삶이 주는 쾌락을 조금이라도 나누자는 그의 생각이 선순환이 되기를 바란다.



장수에는 '7대 3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3은 유전 등의 통제 불가능한 부분이고 7은 후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저속 노화적 생활습관(식사, 수면, 운동)을 하면 굵고 긴 삶을 만들 수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70퍼센트의 영역관리는 순수히 내 책임인 셈이다.




<저속노화 마인드셋 / 정희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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