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편견은 합의만 미룰 뿐



전구들이 밝기로 경쟁해야 한다면 승자는 단 하나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가장 밝은 전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작고 은은한 전구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없다고 말하는 건 사회가 가하는 일종의 폭력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빠르게 진화하는 현대사에 있어 지난 7개월의 시간은 한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현대의 역사는 시간이 지난 후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이루어진다는 박구용교수(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저자)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사건의 참여자는 대다수의 시민이었다. 특히 '빛의 혁명'의 주역이 우리 청년들이었다는 사실은 광장의 모습을 활기차게 달구었고 80년대 독재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희망과 고마움이 교차되는 시간들이었다. 경험의 각성은 왜 중요한가. 정치가 이제는 관망이 아닌 참여로 바뀌기 때문이다.



빛의 혁명을 거치며 21대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군대를 동원해 의회를 폐쇄하려 했던 대통령에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윤어게인(YOON AGAIN)을 외치는 사람들은 보수가 아니라 극우다. 대통령 통치행위라고 주장하기 전에 불법을 저지른 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조주의에 끌려 다니는 무책임한 추종자들로 잘못된 믿음을 장착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강한 적대감을 보인다. 협의의 대상으로 자격 미달이다.



그들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은 보수와 진보 진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알게 모르게 표현한다. 이 책의 공동저자(최강욱, 최강혁)는 대다수의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두 진영(보수와 진보)에 대해 의미를 잘 알고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고 말한다. 출간의 계기라고 말했다.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란 책 제목을 정말 절묘하게 뽑아냈다. 양 진영의 편견들은 알게 모르게 두터워져서 책 제목처럼 합의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필요한 생각들일뿐이다. 우리가 부모를 바꿀 수 없듯이 자라온 환경에서 정립된 관점이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우리가 보수와 진보의 의미를 잘 알고 사용하는지 묻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역사 그리고 우파와 좌파가 왜 생겨났는지 알고 사용하자고 말한다. 보수와 진보가 우리한테 주는 함의(含意)를 알고 있다면 두 진영이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선명해질 거라 보았다.



새롭게 출범한 21대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민의 힘이 버리고 떠난 보수의 책임을 민주당이 지겠다며 '중도보수'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확실한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보수라고 선언한 의도를 나는 당시 실용에 따라 선택하는 중도성향의 표심을 노린 전략으로 이해했다. 이미 보수는 의기소침해졌고 진보성향의 시민은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니 영리한 방향이라고 보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정권 출범 후 미국과의 관세협상, 경주 APEC 그리고 어제 끝난 한중 정상회담까지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을 최우선하려는 민족주의적 행보를 지켜보면서 실용을 중시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다면 '개혁보수당'에 가깝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좌파와 우파의 차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와 진보 그리고 우파와 좌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책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프랑스혁명의 무질서 폭력을 비판한 '애드먼드 버크(영국 정치가)'는 아래의 말로 설득력 있게 보수주의를 주장했다. "혁명을 원하는 사람이 국가의 결함을 다룰 때는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하는 심정'으로 경건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혁명을 기존질서를 파괴하고 추상적인 원리에 기반을 둔 사회를 만들려는 폭동으로 본 것이다.




반면 그의 라이벌 관계인 '토마스 페인(프랑스 사상가)'는 기득권 세력의 이기심을 믿지 않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주장하며 사회변화와 개혁은 과감하고 전면적으로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주장의 특징이라면 시대적 변화는 인정하되 '속도'가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필요한 사회개혁이라면 빠르고 과감하고 전면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천천히 하자는 주장은 수용하기 싫다는 거부에 가까운 핑계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 알고 있는 '프랑스혁명'은 '인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벌어진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의 동학농민운동과 유사하다고 보면 좋다. 봉건적 특권을 없앤 후 시민계급이 정치권력을 잡는 사건이었다.



아무리 깨어있는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켜도 자신의 기득권을 놓기 싫어하는 왕과 귀족 그리고 주변 왕정국가들(프랑스 평민시민 vs 반프랑스 연합군)의 위세는 만만치 않았다. 시민들은 힘으로 누르는 거대한 권력에 저항하지만 패배했고 평민들은 이후 굉장히 과격해진다. 시민들은 한껏 강경해진 위세로 '국민의회 입헌 군주제'를 끝내고 국민공회의 '공화정'을 시작하게 된다. 왕정을 정말 폐지한 것이다.



공화정시대가 열리고 프랑스는 대의민주주의가 시작된다. 프랑스혁명을 주도해 온 강력한 두 세력이 있었으니 이때 '지롱드파'와 자코뱅파'다. 의장석에서 바라보는 시점에서 지롱드 파는 오른쪽(우파), 자코뱅파는 왼쪽(좌파)에 앉아있다고 해서 생긴 어원의 탄생 배경이다(우파와 좌파 어원이 너무 싱겁게 들린다). 루이 16세는 죽이지 말자는 우파와 '국왕이 무죄면 혁명이 유죄가 된다'는 좌파가 갈리게 된다. 이때 과감한 개혁을 외친 자코뱅파가 이겨 이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9월 대 학살'로 루이 16세는 단두대로 향하게 된다.



현대의 우파와 좌파의 차이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차이로 보면 된다. 경제와 국가의 역할 토론 시 대립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인정하고 전제한 뒤에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장점'과 사회주의의 '단점' 쪽에 조금 더 내 관심이 가면 우파입니다. 자본주의의 '단점'과 사회주의의 '장점' 쪽에 조금 더 내 관심이 가면 좌파입니다.


시장에 국가의 개입이나 역할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쪽이 우파, 국가의 개입이나 역할이 좀 많아질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 쪽이 좌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좌파는 독재국가 러시아, 북한, 중국이 아니라 스웨덴, 핀란드 같은 국가를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독재국가다. 우리나라 보수는 진짜 보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진보와 좌파라고 말하는 가짜보수의 말투에는 과격과 불온의 설익은 이념이 묻어 있다.



진짜보수의 가치는 법과 질서를 지키며 전통과 권위라는 품격이 있고 애국심과 안보를 강조한다. 도덕과 윤리적이며 자립을 요구하고 근면성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원칙의 가치다. 편견을 가졌던 진보가 당황할 수도 있겠다.



자본주의 체제가 점령한 이 사회는 보수주의가 맞을까, 진보주의가 옳을까. 국가의 개입이 많아야 좋을까, 적어야 좋을까. 내가 살아오며 정립된 정치성향을 믿고 일편단심 지지하는 것이 옳을까, 시대가 변했으니 상황에 맞게 변해도 괜찮은 걸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건강하게 공존해야 잘 살 수 있다. 한쪽이 기울어지면 언젠가는 다른 한쪽도 쓰러진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늘 다양한 생각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하고 타협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빵을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망언으로 유명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은 부자가 가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알 수 있는 말로 유명하다. 타고난 환경이 나쁜 사람은 불우한 환경 때문에 삶을 헤처 나갈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는 부유한 계층과 가난한 귀족의 격차가 커지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다음 세대에게 가난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불평등이 세습되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본주의의 허상 중에 하나인 능력주의에 대한 허상도 버려야 한다. 누구나 성공할 수 없다. 앉을 의자는 한정되어 있고 누군가는 서서 가야 한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불과 7개월 전만 해도 어떻게 3년을 더 참냐고 생각하던 힘들었던 시간들이 아니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과감한 개혁과 불필요한 제도를 없애며 움직이고 있다. 우리의 삶이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 존중을 바탕으로 살아간다면 양보할 부분이 보일 것이고 그렇게 합의하다 보면 살아갈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욱, 최강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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