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걷고 싶은 거리가 진짜 도시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이름처럼 가로수가 아름답게 있는 거리도 아니고, 인도 폭이 좁아서 걷기도 어려운 거리이다. 그런 가로수길이 지금의 보행자들이 찾는 거리가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지하철 3호선 신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한강 고수부지 공원이다. 대중교통 정류장과 자연 요소, 이 두 요소를 연결하는 거리는 사람들이 걷기 좋아하는 거리가 된다. 미국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고급 쇼핑 거리를 찾는다면 보스턴의 뉴베리 거리가 있다. 뉴베리 거리의 서쪽 끝에는 지하철역이 있고 동쪽 끝에는 보스턴 코먼이라는 도심형 공원이 있다.

(중략)

사람들은 지하철을 이용해서 한쪽에서 쏟아져 나오고 그 사람들은 공원을 향해서 걸어가면서 거리를 즐긴다. 일반적으로 가고 싶은 목적지 없이 걷는 사람들은 피곤하다. 하지만 쉴 수 있는 공원을 향해서 걷는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신사동 가로수길이 변화하게 된 데는 한강 고수부지로 들어가는 토끼굴의 위치가 가로수길과 같은 축선상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본문 中



도시와 건축물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유현준 씨의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표현과 전달력이 좋아 그의 생각이 깊이 궁금해져 책을 읽게 되었다. 최근에 '오징어게임'리뷰를 건축학적 해석을 해주는 유튜브방송이 있는데 꽤 재미있게 봤다. 그것은 건축학자로서의 주관적인 해석을 떠나 미쳐 놓치고 있었던 진실들을 알게 해서 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환경,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 건축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유와 해석은 그래서 꽤 흥미로웠고,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발견이라면 적당할까 싶을 정도다.


우리는 사막이나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서는 그 어떤 공간도 느껴지지 않는다. 공간은 오로지 건축물이 세워졌을 때 휴식을 보장받는다. 저자는 그러한 건축물이라는 공간들이 결국 인간의 삶, 욕망, 권력이 반영되어 세워졌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주에 명동거리를 걸을 기회가 있었다. 평일인데도 많은 보행자들이 걷고 있었다. 나는 그 보폭에 맞춰 주변 상점들과 거리들을 이곳저곳 구경하며 목적지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한 명동의 거리를 '걷고 싶은 거리'로 표현했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거리는 휴먼스케일의 체험이 제공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무실만 빼곡히 들어찬 고층 건물이 많은 거리는 특별한 볼일이 없으면 굳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사동 가로수길'이 사람들이 사랑받는 거리가 된 이유는 '대중교통'과 '공원'을 잇는 토끼굴이 있어서였다는 대목은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었다.(위 인용문 참조)


동양과 서양의 건축물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동양은 개미집으로 서양은 벌집으로 문화적 배경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극동 아시아 건축은 땅과 연결된 개미처럼 관계성이 중요시되는 건축의 성격을 띠었고, 반면 유럽은 기독교에서 중시하는 사후세계를 중시해서 이데아의 세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원칙을 중요시하여 기하학적인 건축인 피라미드, 황금비율, 판테온 같은 건축 문화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설명과 더불어 건축물 사진을 보여주는데 참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저자는 빼곡히 아파트로 채워진 우리나라의 건축물에 대해 답답한 마음이 큰 듯 보인다. 나 역시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아파트를 떠나 한적한 곳을 찾게 된다. 그런 현대인의 대부분 감정들을 저자는 아파트내부 구조의 결함에서 찾고 있다. (아래 인용문 참조)


만약에 거실이 마당에 지붕만 써진 구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최초의 건축가는 안방에서 거실을 향해서 창문을 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보다도 심리적으로 더 넓게 느껴지는 아파트 평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창문을 거실이 아닌 바깥으로만 내었기 때문에 아파트에서는 일단 방에 들어가면 거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관계의 다이어그램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나뭇가지 같다고 해서 '수목적'관계라고 말한다.



저자는 수많은 도시 속 건축물(학교, 아파트, 빌딩, 공원 등)들의 이야기를 펼치면서 그 안에서 연결되지 못한 공간의 부재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수많은 힌트들을 모조리 무시한 채 오로지 대량운송이나 차량의 편리함만을 추구한 결과물 같아 나 역시 마음이 안 좋았다. 자연과 어우러져 설계되는 건축물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가 서울에서 가장 맘에 들고 칭찬하는 '잠수교'처럼 말이다.


잠수교 위를 걸어 보면 물이 가까이에 있어서 마치 조선 시대 때 건축된 중랑천의 살곶이 다리를 걷는 듯한 휴먼 스케일을 느끼게 해 준다. 잠수교는 추후 유람선을 위해서 아치 구조를 만들어서 가운데를 들어 올렸다. 이 아치는 사람이 다리를 건널 때 물과의 거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게 해 준다. 이러한 경험은 항상 일정 간격을 유지해서 지루하기만 한 다른 다리보다 더 낭만적이다. 잠수교는 진입부에서 강 건너편이 안 보였다가 아치 꼭대기기에 서면 높은 데서 내려다보게 되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한다. 이뿐 아니다. 잠수교는 한강 수위가 올라가면 끊어진다. 거의 모든 건축은 자연을 극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하지만 잠수교는 자연에 져 주기도 한다. 마치 시골에서 물이 불어나면 없어지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강물이 불어나면 사라지지만 가운데 올라간 아치 부분은 남아서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경험이 잠수교를 더 멋지게 만든다. 지금은 2층으로 반포대교가 만들어져서 2층의 직선과 1층의 곡선의 대비 또한 아름답다.



결국 모든 건축물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가. 저자는 대단한 철학적인 사고가 없더라도 그 시대의 한계와 적용 가능한 기술, 그리고 사람들 동선의 편리함을 갖춘 건축물과 도시를 만든다면 충분히 그 시대의 전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 의미를 찾았으면 좋겠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매거진의 이전글 오십에 읽는 순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