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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련 Mar 11. 2024

욕을 맛있게 먹는 방법

조선일보_희망편지_칼럼_2024.3.9(토)

 대한민국 1호 여성 대통령경호관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탓에, 전업(轉業) 후 배우가 된 지도 비등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내게는 ‘청와대를 떠난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이름 자체로 인정받기를 소망하는 연기자이기에 매번 따라오는 수식어가 불편했던 때도 있지만, 이제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한 평가이려니 동제(同題)의 책을 냈을 만큼 전보다는 한결 따뜻한 마음으로 이름 앞 수식어를 받아들인다. 한편으로는 그 수식어 덕에 탓에 ‘꿈, 도전, 설렘’과 같은 소재로 다양한 강연에 초청받게 되는데, 이맘때는 특히 새로운 시작을 앞둔 대학 새내기들을 청중으로 한 강의 의뢰가 많다. 풋풋함을 마주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강의를 나간 설렌 발걸음이 무색하게 요새 20대들이 털어놓는 고민의 주제는 그리 가볍지 않다.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나요?”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서는 게 너무 겁나고 힘들어요.” 


 새롭게 마주한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두려워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두려워하는 고민들이 의외로 많다. MZ세대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동시에 숫자상으로 불혹의 나이인지라 스스로도 어른인지 청춘인지 어중간하게 느끼는 탓에 그저 내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쟤 번개맨이야! 가슴에 벼락 맞은 흉터 있어!” “조폭마누라다. 가슴에 칼빵 살벌하네!” 



 내가 처음 마주한 마상(마음의 상처)은 초등학교 시절 남자아이들의 놀림이었다. 선천성 심장병 환아로 태어나 가슴 한 복판에 성장과 더불어 길게도 늘어난 17cm 길이의 심장수술 자국이 있는 탓에 온갖 별명을 달고 살았다. 애정만이 가득한 가족 안에서는 내 가슴에 있던 것이  흉터인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던 탓에 남자아이들의 조롱은 꽤 깊은 비수가 되어 철이 들기까지는 목 아래부터 시작되는 수술자국을 되도록 감추며 살았다. 대학생이 되어 살던 환경이 넓어지니 또 다른 종류의 말들을 마주했다.


 “너는 어떻게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어?” 

 “우리 이번 여름방학에 유럽여행 가는데, 넌 이번에도 안 갈 거야? 부모님이 안 보내줘?” 

 “어떻게 넌 요새 인기 있는 브랜드도 아예 몰라?” 


 경험해 보지 못 한 물질적 풍요와 너무도 다른 살아온 환경에서 온 또래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은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비로소 내 진짜 꿈에 도전할 수 있는 심리적, 경제적 여유가 되어 경호관으로서의 10년을 뒤로하고 배우를 시작하고는 더욱 날이 선 부정적인 의견들을 많이도 마주해야 했다. 


 “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빨리 아기나 낳으시지, 무슨 배우를 한다고? 본인이 뭐 엄청 예쁘거나 특별한 줄 아시나 봐요?”

 “안정적인 공무원 그만두고 배우를 하겠다고? 꿈이 밥 먹여주는 줄 아나, 분명히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발을 들이민 세상에서는 내 설렘이 무색하게도 ‘잘 될 거다. 잘하고 있다.’는 응원보다는 부정적이고 폄하하는 말들이 먼저 나를 반겼다. 출연작품이 쌓여가며 배우로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진 지금은? 쏟아지는 말들의 범위는 더 커지고 수위는 더 높아졌다. 이제는 내가 직접 마주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온라인에서 스스럼없이 비난과 평가를 늘어놓는다. 가족과 학교라는 친밀한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는 더욱 많은 그리고 더 높은 수위의 부정적인 시선과 비난을 마주해야 했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안전한 집 안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마주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만의 삶을 누리면 된다. SNS 속 세상도 궁금해하지 않고, 어딘지도 모를 누군가가 쏟아내는 나를 향한 의견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된다. 어떠한 관계로부터도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로부터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세상을 좁히는 것만큼 손해 보는 계산이 또 있을까? 나는 배우의 길을 택했다. 나를 알리고,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연기를 통해 나의 세상을 넓히고 싶다. 내가 나아가는 길에는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부산물이기에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 내가 걷는 길에 쏟아지는, 혹은 쏟아질지 모를 부정적인 의견이 두려워 으레 먼저 포기하거나 나의 세상을 좁힐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나는 기왕 먹을 욕, 맛있게 먹기로 했다. 

 ‘맛있게 욕먹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군가 내게 부정적인 의견을 던지면 생각한다. 비난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인지,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인 주관적인 비난인지, 들어서 내가 고칠 점이 있는 귀중한 의견인지? 둘째, 그것을 판단하기 위한 합리적인 주관을 갖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 마냥 수동적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마땅한 판단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사회적으로 학습된 겸손을 선택해서 불합리한 비난에도 숙이고 맞출 필요는 없다. 또한, 내게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공들여 건넨 새길만한 이야기에 경계하며 귀를 닫는 것 또한 스스로의 성장을 방해하고 고립시키는 나쁜 길이다. 끝없이 열린 마음으로  안 해본 것들을 겁내지 않고 경험하고 배우면서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시킨 합리적인 주관을 바탕으로, 마주하는 의견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진다. 비판은 새겨들어 약으로 삼키고, 그저 나를 주저앉히는 것이 목적인 비난은 웃고 흘려버린다. 지나고 보면 면전에서 내어놓는 쓴소리야말로 남다른 애정과 관심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오히려 그러한 비판을 바탕으로 더 깊고 오래가는 관계를 맺게 되는 때도 많다. 

 당장 내 앞에 비난이 너무나 크게 느껴질 때는 이렇게도 생각해 본다.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고, 그다음 중요한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조연이라면, 내게 부정적인 대사 한 마디를 던지고 가는 이들은 대부분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깊이 관계 맺을 일 없는 잠시 스쳐가는 단역들이다. 하나하나 공들여 리액션하기에 내 인생이라는 영화에 러닝타임은 한정적이다. 내 시간을 어떤 장르의 어느 정도 퀄리티의 영화로 만들어 나갈지 방향을 결정하는 감독이자 작가, 제작자는 나다. 

 이쯤 되면 학생들은 강의 시작 때보다 한층 신뢰가 짙어진 눈이 되어 다시 묻는다. 


 “늘 1호라는 타이틀로 걸어오는 길에 의지하고 따를 선배가 없어서 외롭고 막막하진 않나요?” 


 그랬다. 다만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따뜻한 관계들이 있어 나름 잘 딛고 지나왔다. 나는 요즘도 쉴 새 없이 흔들리고 넘어지고 누가 볼까 후딱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다만 그 와중에 단단히 자리 잡은 내 뿌리가 조금 더 깊고 굵어져 후딱 일어서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러한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막연하고 으레 그런 잔소리 말고 진짜 내가 겪은 이야기로 힘이 되어주는 진짜 어른 사람이 되어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려 한다.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처럼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자기들 하고픈 대로 하는 것일 뿐이니 열린 마음으로 받아 좋은 연기를 위한 자산으로 삼는다. 정치, 연예, 스포츠 하다못해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의견이 갈리게 마련인데 당연히 세상이 나에게만 호감일리 없지 않은가? 

 그래도 여전히 관계에서 오는 상처가 불편하고 어려울 때는 그냥 이렇게 생각해 버린다. 

 다 내가 귀여운 탓이려니.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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