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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으로부터의 자유

내 감정의 정당성을 택할 것인가? 감정으로부터의 자유를 택할 것인가?

by 김경애

3월에 새로운 요양원 수업이 들어왔다. 15분 거리에 있는 다음 센터와의 시간간격은 단 20분이었다. 첫 주에는 어르신들의 인원, 인지정도, 요양보호사님들의 유무등의 살펴보았다. 수업은 보통 색칠과 종이접기, 오리기, 붙이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색칠작업만으로도 1시간이 부족했다. 작업을 도와주실 요양보호사님도 없었고 첫 주에는 다음 수업에 늦기까지 했다.


그래서 작업을 간소화해야 했다. 그런데 마지막 주차에 담당자가 여기는 색칠밖에 안 하느냐며 다른 업체에서는 오리고 붙이고 물감도 불고 그랬다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오리고 붙이는 작업이 있는데 어르신들이 하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우선 해봐야 아는 거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급히 색지를 나눠드리고 접는 방법을 설명했다. 담당자가 지금 접는 거냐 색칠하고 접는 거냐 따져 묻기에, 색칠한 뒤 접는 거라고 말했다. 그럼 색칠한 뒤에 설명을 드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색칠 다하길 기다리다간 또 다음 수업에 늦을까 봐 끝나기 20분 전에 설명을 했다. 담당자는 천천히 다시 설명해 달라며 짜증 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것이었다.


50분 수업을 25분씩 2개의 층에서 나눠서 하는 센터에서도 이런저런 요구가 있어서 조율하는 일을 겪은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수업에 관여하며 비난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는 자신감이 급하락 하며 무시당하는 모멸감을 느꼈다.


4월부터 그 센터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소속업체에 연락을 취했다. 나보다 더 능력 있는 강사님이 들어가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으나 이미 공단에 신고가 들어가서 변경이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새로 들어가는 수업에서 일 년에 2~3번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다. 수업할 재료를 미리 다 재단해서 가 달라는 것이었다.


수업재료를 미리 재단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업체에 내 수업계획을 이미 알렸는데, 그때 미리 언질을 주었다면 그런 갑질은 당하지 않았을 걸 하는 아쉬움과 함께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수업을 쉽게 하려고 그랬다는 오해를 양쪽 모두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감정은 처음엔 자신감하락과 모멸감에서 다음엔 돈을 벌어야 하는 '을'입장의 서글픈 마음으로 우울해졌다. 그리고 오해받는 억울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내 이전 글 '자유'에서 나는 감정으로부터의 자유를 얘기했다. 그러나 이렇게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난 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마음 챙김 영상을 듣다가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억울함이 평생 가더라도 함께 가겠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라는 유튜버의 말을 들었다. 나도 그렇게 각오하고 억울함을 끌어안았다. 물론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열흘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감정에 휘둘리던 나는 조금씩 감정이 놓여나는 것을 느꼈다.


감정을 충분히 느끼 그 감정이 평생 가더라도 함께 가겠다는 각오를 하고 그 감정을 끌어안는 것, 그것이 감정으로부터의 자유로 가는 첫 번째 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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